나의 버킷리스트 릴레이 ⑪ 김홍주 화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

다음 버킷리스트는 우순옥(미술가)이 이어갑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죽음은커녕 먼 미래조차 상상해본 일이 거의 없다. 칠십 해 가까이 내 삶은 촘촘한 ‘오늘’의 연속이었을 뿐, 내일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았다. 버킷리스트 원고 청탁을 받고 적잖이 망설인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너무 생경해 내 살갗에 닿지 않아서. 좀더 현재에 가까운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로 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아래의 글은 죽음을 앞둔 미래의 나보다는 두 발 땅에 딛고 선 오늘의 나에게서 얻은 답이다.


1 산에 올라가보기

코앞에 닥친 일에 급급하며 달려온 인생이다. 내게 보이는 건 캔버스와 그 앞에 선 나였고, 나머지 것들은 그를 둘러싼 배경일 뿐이었다. 좁은 세계에서 안달복달하며 살다 보니 이제는 먼 곳을 조망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산을 오르는 일은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네 어딜 가든 야트막한 산 하나 정도는 쉬이 발견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 내게 산을 오르는 일은 꿈처럼 다가온다. 바삐 뛰던 심장이 제 리듬을 찾고, 편안한 리듬 속에서 산을 굽어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얼마나 크고 넓을 것인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내 작업실은 또 얼마나 작아 보일 것인가.


2 전원생활 하기

제법 오랜 시간을 도시에서 살아왔다. 새들의 지저귐보다는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가, 폭신한 흙길보다는 단단한 보도블록이 익숙하다. 익숙해진 것이라 무심해질 거라 예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나는 가끔씩 소란한 도시의 길을 걸으며 시골의 오솔길을 홀로 걷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바람을 스치는 나무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골길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이 전부인, 빈둥대고 게으름을 피우며 보내는 일과. 완전한 고요와 약간의 고독 속에서 지내는 삶도 썩 괜찮을 것이다.


3 맛있는 것 많이 먹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바람은 가장 소박한 것이자 가장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일 날이 없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 때마다 가려야 하는 음식도 따라 늘어난다. 혼자 있을 때 문득 술 한잔이 떠올라도 선뜻 마실 마음이 나지 않는다. 몇 번 망설이다 보면 마시고 싶었던 마음이 이내 달아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정갈하게 차린 한정식이다. 그러나 가끔 한정식을 먹으러 가도 마음껏 먹을 수가 없다. 남겨진 음식을 보면 속이 쓰리지만, 몸이 많은 양의 음식을 받아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흡족하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꼬박 이틀을 고민하며 얻어낸 답이 이 정도다. 쓰면서도 너무 먼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친다. 죽기 전은커녕,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것에도 마음을 쏟을 수 없는 타고난 현재형 인간이라서일까.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보다는 하고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게 내게 더 맞는 방법인 듯하다. 도시 한켠에 있는 작업실에서 그림과 씨름하고, 때때로 한 줌의 밥과 국으로 빈속을 채워도 나는 내 손에 온전히 닿는 오늘이 있어 행복하다.

정리 : 라일락 인턴기자(이화여대 3)
그림 : 배진성
  • 2012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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