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릴레이 ⑨ 이창섭 MBC 드라마국 부장

치명적인 병 진단을 받은 내게 아내는 말했다 “당신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살아”

다음 버킷리스트는 최현주(코디 최/예술가 겸 문화이론가)가 이어갑니다.
10여 년 전 가을, 나는 의사와 마주 앉아 간호사가 진료기록을 찾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 앞에는 나의 병명이 적힌 진료의뢰서가 놓여 있었다. 의사는 잠시 무언가를 끄적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결혼하셨습니까?” “네.” “자녀도 있습니까?” “네, 아들이 둘 있습니다.”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제가 병이 나아서 이 병원을 나갈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그때 나는 방금 병의 진단을 받았고, 서른을 갓 넘긴 아내와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두 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 병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아들을 포함한 우리 가족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매우 위험한 병이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소원했을까? 내가 건강을 되찾고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원고 청탁을 받고 나니 그때 일이 다시금 떠오른다. 아내는 병상에 누워 있는 내게 약속했었다. “당신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맘껏 하고 살아.” 지금은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1 세계 일주하기

늘 여행을 꿈꾸었다.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구체적으로 세계 일주를 계획했다. 건강이 회복되면 휴직하고 집도 팔고 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제자리로 돌아와보고 싶었다. 스물네 시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다양한 세상의 모습들을 보고 다양한 삶을 체험하며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고 느끼고 싶었다.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여기저기 조금씩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세계 일주는 아직 하지 못했다. 이루지 못한 꿈, 꼭 해보고 싶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막내가 대학에 가면 할 수 있으려나?


2 개인 도서관 만들기

대학을 졸업할 때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리하다가 서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면서 생계도 꾸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서점을 차릴 돈이 없어 꿈(?)을 접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일본에 갔을 때 가정집 건물에 도서관 간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일본에는 그런 식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 꽤 많다고 했다. 그때부터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생겼다. 시골 마을에 조그만 도서관을 꾸미고 책과 함께 마을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다.


3 집 짓기

집을 직접 지어서 살고 싶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아닐지라도 자연과 어우러져 구분이 가지 않는 집을 짓고 싶다. 그 집에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들고 그렇게 살고 싶다. 남으로 창을 내고 손님들이 묵을 방을 마련해서, 멀리서 반가운 벗이 찾아오면 뒷산의 나물과 텃밭에서 손수 가꾼 푸성귀로 대접하고 싶다. 누구라도 찾아온다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예전에 우리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무엇이라도 싸서 들려 보내고 싶다.


4 도 닦기

죽기 전에는 도를 닦아야겠다. 득도까지는 못하더라도 삶의 의미는 한번 캐봐야 하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면 늘 이리저리 밀려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이만큼 살아낸 것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아리다.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지. 사랑과 원망과 아쉬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들, 죄책감, 꼭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일들, 이루지 못한 꿈까지 다 풀고 싶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웃으며 떠나고 싶다.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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