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 이영호

최연소로 데뷔해 랭킹 1위 지킨 ‘최종병기’

최종병기, 갓(god)영호, 끝판왕, 테란원톱…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 이영호(KT롤스터)의 별명들이다. 별명만 들어도 알 수 있듯 그의 주종족은 테란이며 역대 최강의 테란 계보를 잇고 있다. 2007년 중학교 3학년 때 프로 리그에 최연소로 데뷔해 첫 경기를 승리로 마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최연소・최초 타이틀을 대부분 거머쥐고 각종 기록을 갈아치워왔다. 스타크래프트 랭킹 1위 역시 장기간 그의 몫이다. 그런 이영호가 지난 4월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게임에서 지고 눈물을 보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우승을 놓친 것이 분했던 걸까.

“이기고 나서 기쁜 마음에 운 적은 있어도 지고 나서 운 적은 없었어요.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경기장을 나갈 때 팬들이 한목소리로 ‘이영호 파이팅’ 하고 외쳐주시더라고요. 그 소리에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났어요.”

프로 데뷔 5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스물한 살 청년이다. 앳된 외모와는 달리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그는 “사회생활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빨리 철든 것 같다”고 했다.

그가 프로 게이머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초등학생 때부터 형이 게임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는 거셌다. 아들이 게임을 하겠다고 하자 컴퓨터를 아예 없애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입학 후 다시 들여온 컴퓨터로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고 실력은 빠르게 늘었다. 방학이 되자 본격적으로 프로 게이머가 되기 위해 숙소 생활을 시작했다.

“연습생으로 팬택이라는 프로팀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참 재미있었고 힘들기도 했어요. 무려 20명분의 설거지를 했거든요. 빨래도 해야 했고, 라면 끓여 오라고 하면 라면도 끓여야 했죠. 게임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한편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그는 부모님께 딱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다. 한 달 안에 준프로 게이머 자격을 따지 못하면 깨끗이 포기하고 공부를 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다른 스포츠 종목과 같이 e스포츠도 아마추어와 프로 간 실력 차이가 매우 크고 경쟁률도 높기 때문에 아마추어 게이머가 프로 게이머가 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한다. 약속한 한 달이 거의 지날 무렵 그는 극적으로 프로 자격을 따냈다. 프로 데뷔 이후 부모님은 그의 가장 열렬한 팬이 됐다.

그는 15세에 KTF매직엔스(현 KT롤스터)에 입단했다. 처음부터 팀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 기대에 부응해 그는 곧장 팀의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승승장구했다. 주목받는 신인으로서 각종 상을 휩쓸고 13회 연속 스타리그 진출과 세 차례의 우승, KeSPA(한국e스포츠협회) 랭킹 12개월 연속 1위 등 다양한 기록들을 쌓았다. 2011년에는 MSL, 스타리그, WCG 세 개 대회에서 동시에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프로 게이머 최초로 골드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그는 프로 게이머가 된 이후 그때가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한다.

자신을 노력형 인간이라고 밝힌 그는 연습 시간을 딱히 정해놓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연습한다고 했다. 심지어 샤워를 하고 밥을 먹을 때조차 머릿속에서 진 게임을 분석하며 패배의 원인을 찾는다고 한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노력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잘된다고 하는데 전 타고나는 부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누가 더 노력하느냐에 따라 갈리는 것 같아요.”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연습량이 지나쳐 손목에 무리가 가서 수술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2011년 9월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 1등을 하고 있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니… 몇 달 동안의 공백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불안했어요.”

프로 게이머는 공백이 길어지면 도저히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프로 게이머는 마우스의 감도에 매우 민감한데 1주일만 쉬어도 감이 떨어져서 손의 움직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영호는 시합 전 30cm 자를 들고 키보드와 마우스의 위치를 확인할 정도로 예민하다. 다행히 그가 수술과 재활을 거치는 동안에는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재활 직후 개막전에 참가해 1위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가 고도의 집중력과 빠른 두뇌 회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바둑과 비슷하다고 한다. 거기에 체력까지 요구된다.

“게임을 하다 보면 땀을 정말 많이 흘리는데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기 때문이에요. 한 게임을 하고 나면 마치 운동한 것처럼 힘들어서 그날 다른 일은 못해요. 밥 먹고 바로 자야 해요. 후반에는 체력이 달려서 진 적도 많아요.”

스타 팬들 사이에서 이영호는 정신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큰 경기에서도 잘 긴장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사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신인 때만 해도 너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애도 많이 태웠지만 상대방에게 긴장하고 있다는 약점이 노출될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뷔 5년차인 지금은 긴장과는 거리가 멀어진 대신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1등을 하다 보면 목표가 사라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 팬들을 위해 꼭 우승하겠다고 말하고 지키려고 노력해요. 먼저 말을 뱉고 나중에 ‘내가 이런 말을 했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거죠.”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1인자 자리에 올라 억대 연봉을 받는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있을까. 프로 게이머의 수명은 보통 군대 입대 전까지로 본다. 그의 제2의 인생이 궁금했다. 그는 프로 게이머 생활이 끝나면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펀드 매니저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 외에 다른 걸 구체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현재 그의 목표는 오직 스타리그 우승뿐이다.

“어릴 땐 게임에서 이기면 프로 게이머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팬들이 응원해주는 맛에 경기를 해요. 지난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확실히 느꼈어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지더라도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팬을 위한 선수가 될 거예요.”

사진 : 하지영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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