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우동가게》 글 쓰는 주인 강순희씨

이야기꾼이 된 우동가게 아줌마

12월 31일 밤, 우동가게를 찾은 어머니와 두 아들이 우동 1인분을 시킨다. 그들 몰래 1.5인분의 우동을 끓여낸 주인은 식사 후 돌아서는 그들에게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한다. 2년 후, 어린 아들은 말한다.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에게 한 해 마지막 날 우동가게 주인의 인사는 “힘내세요. 살아갈 수 있어요!” 하는 위로로 들렸다고. 일본소설 《우동 한 그릇》 이야기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우동에 사랑을 담아 끓여내는 곳이 있다. 글 쓰는 주인 강순희씨가 운영하는 충북 충주의 ‘행복한 우동가게’다.

식당 안에서는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인사를 건네자 손님과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녀가 반갑게 맞아준다. 늘씬하게 큰 키에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허리에 두른 앞치마를 보고도 ‘우동가게 아줌마’라는 타이틀이 낯설다. 가게의 풍경은 이색적이다. 한쪽 벽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고, 구석에는 통기타 하나가 놓여 있다. 벽지 대신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건 손님들이 써놓고 간 각양각색의 쪽지다. 붙인 지 얼마 안 된 뽀얀 쪽지부터 잘 익은 열매처럼 노란 쪽지까지, 자연스러운 명과 암을 이루는 쪽지들은 이 가게의 역사다.


글 쓰는 우동가게 아줌마

가게 문을 연 지 올해로 18년째다. 처음엔 간판도 없이 테이블 네 개만 달랑 놓인 가게였다. 어느 날, 가게를 찾은 한 시인이 종이에 시를 한 편 써서 벽에 붙였다. 벽에 붙은 글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빈 그릇과 함께 쪽지를 두고 갔다. 그녀는 손님들이 남긴 쪽지를 하나 둘씩 붙이기 시작했고, 작은 우동집은 이야기방이 됐다.

5년 후, 이야기방의 주인은 이야기꾼이 되기로 했다. 손님들의 쪽지를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동을 끓이면서 틈틈이 식당 한켠에서 글을 썼다. 시끌시끌해서 집중이 안 될 텐데 어떻게 글을 썼냐는 물음에 그녀는 대답한다. “저잣거리의 철학이라고 하잖아요. 저잣거리 이야기니까 저잣거리에서 써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쓴 글들이 모여 책이 됐다. 그녀의 첫 번째 에세이집 《행복한 우동가게》다. ‘저잣거리의 철학’이라는 표현답게 그녀의 글에서는 배고픈 이들이 먹는 따끈한 우동 향이 난다. 아끼는 동료를 해고해야 하는 직장인, 병으로 제자를 잃은 초등학교 교사, 장사가 안돼 시름에 싸인 상인들의 사연이 그들이 남긴 쪽지와 함께 담겨 있다. “슬퍼서 행복한 사람들 이야기를 썼어요. 행복에는 웃음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눈물도 함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죠.”


올해 3월에 낸 《행복한 우동가게 두 번째 이야기》는 우동가게를 거쳐간 여직원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눈으로 그린 소설이다. 책에서 주인여자로 지칭되는 그녀는 편한 언니, 냉정한 관찰자, 고마움의 대상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직원을 구할 때 ‘가족처럼 따뜻하게 지내실 분 구합니다’라고 공고를 내요.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정말 가족처럼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가게 손님들은 그녀를 ‘시인’이라 부른다. ‘시인’이 우동을 끓여내는 가게답게 가게에는 예술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충주가 고향인 신경림 시인을 비롯해 여러 문인들이 모여 시를 읊고, 음악인들은 기타를 친다. 가게 앞 공원에서 시를 읊는 게 어떻겠냐는 그녀의 제안에 시인들은 시낭송회를 열었고, 그 공원은 ‘시인의 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소기업 사모님에서 우동가게 아줌마로

작가는 그녀의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작가를 꿈꾸며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중소기업 사장을 만나 결혼했고, 꿈을 숨긴 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다. 경제적으로 안락한 생활이었지만, 외로움이 순간순간 그녀를 덮쳐왔다. 문학에 대한 못 다한 열정 때문이었다. “몰래 글을 써서 묶고 표지에 내 이름 석 자를 써보곤 했어요.”(웃음)

잘되는 듯하던 남편의 회사는 부도가 났고, 가족의 생계가 오롯이 그녀 몫으로 남겨졌다. 삶의 나락으로 몰린 그녀의 선택은 우동가게였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싫었다. 홀에 나가는 게 창피해 그녀는 주방에서 우동만 끓이고, 친구들이 일을 도왔다. “딱 6개월만 얼른 지나기를 바랐어요.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을 테니까요.”


먼저 손을 내민 건 손님들이었다. “아줌마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나네요”라며 운을 뗀 사람들은 그녀 앞에 이야기 보따리를 서슴없이 펼쳐놓았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은 재미와 보람을 안겨주었다. 카운슬러 역할을 하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한참을 웃던 그녀가 말한다.

“똑 부러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게 복이 된 것 같아요. 저와 이 가게 모두 부담이 없으니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기 쉬웠나 봐요.”

한순간에 사모님에서 우동가게 아줌마가 된 그녀, 후회는 없을까. “후회라뇨. 제 물을 만난 거죠.” 우동가게를 열기 전에도 종종 봉사활동을 했지만, 그땐 돈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전부였다. 지금은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더 행복하다. 문학과의 만남도 그녀에겐 큰 선물이다.

“문학과 작별하려던 순간, 집을 나와 문학을 다시 만났죠.”


행복한 우동가게

그녀는 낭만이 넘친다. 한 발은 구름 위에 얹었다고 상상하고, 다른 한 발로 서서 우동을 끓인다는 그녀. 그녀에게 우동가게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장소다. 지난 밤, 우동을 내오다 꽃망울이 톡하고 터지는 걸 봤다며 자랑하던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한다. “가게 앞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이코프스키의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연주가 들리는 듯해요.”

종일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일하는 사람들. 마음이 고픈 그들은 수시로 ‘행복한 우동가게’의 문을 두드린다. 갓 끓인 우동처럼 따뜻한 그녀의 마음이 그리워서다.

“우동은 안 먹고 이야기만 하다 돌아가시는 분도 있어요. 오랜만이라며 잠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시는 분도 있고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우동가게가 허름하지만 아름다운 공간이 되길 바라는 그녀는 오늘도 가게 한켠에서 글을 쓴다. ‘행복한 우동가게’에는 매일 뽑는 우동 가락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쉼 없이 흐른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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