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에 숲학교 프로그램 ‘여우숲’ 만든 김용규

숲에 가면 뭇 생명들을 느끼며 천천히 걸으세요

연두에서 연초록, 초록으로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가는 ‘기적 같은 계절’, 충북 괴산의 숲 속에 살고 있는 한 사내를 찾아갔다. 충북 괴산군 사은리 ‘여우숲’을 찾았을 때 안개를 베일처럼 쓰고 있는 숲은 짙어가는 잎들과 희고 붉은 꽃들로 점점이 수놓아져 있어 점묘화를 보는 듯했다. ‘여우숲’의 주인 김용규씨는 숲에서 발견한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2009년 《숲에서 길을 묻다》를 펴내 열성 독자층이 생겼던 그는 최근 두 번째 숲 이야기 책 《숲에서 온 편지》를 펴냈다.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찬찬히 관찰해서 전해주는 숲 속 생물들의 세계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뭇 생명들 앞에서 경이로움과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그를 숲으로 인도한 것도 한 그루의 나무였다.

“벤처기업 CEO로 있던 시절 주말마다 혼자 수락산을 올랐습니다. 그 산에서 바위를 뚫고 자라는 소나무를 만났습니다. ‘쟤는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나무 공부를 시작했어요. 신은 모든 생명에게 형벌과 선물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나무들의 형벌과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형벌이에요.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뿌리내린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요. 자신이 태어난 자리를 불평하는 나무는 없어요. 산꼭대기 바위틈이든 거목의 그늘 밑이든, 강가 자갈밭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수용하면서 생명은 시작됩니다. 그 환경에서도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나무의 분투를 보고 있노라면 가엽기보다 숭고하게 느껴져요. 나무가 받은 선물은 햇빛과 바람, 물만 있으면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살 수 있는 우리와는 다르지요.”

바람이 불어올 때 그는 ‘민들레 씨앗이 삶의 기회를 얻으라고 바람이 장하게도 불어오시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타고 수직으로 4000m까지 올라가 멀고 먼 곳까지 날아간다. 싹을 틔우기 어려운 곳에 떨어질 때도 있는데, 또 다른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삶이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어야 할 때 우리는 ‘견디고 기다려야 한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단단한 껍질을 깨고 붉은빛이 감도는 뿌리를 내린다. 두 쪽으로 갈라진 씨앗을 떡잎으로 이용해 줄기를 키우고 잎을 내면서 어린 참나무로 태어난다. 도토리라는 한 알의 씨앗 속에 수백 년을 이어갈 참나무의 삶이 이미 담겨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주체로서 살 권리와 능력을 이미 그 씨앗 안에 부여받고 태어납니다. 그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는 데 큰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길을 잃을까 두려워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을 졸졸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연리목과 혼인목에게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연리목은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비켜설 곳이 없을 때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한 것이다. 이들은 각자의 나무껍질을 벗고 세포와 세포를 합치고, 서로의 맨 살 위에 새로운 살을 만들어 덮는다. 자신의 살을 내어주지 않고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다. 혼인목은 상대를 향한 날선 가지를 떨어뜨려 서로의 공간을 열어준다. 나무들은 이렇게 양보와 배려, 공생의 삶을 이어나간다.

김용규씨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다 보면 ‘나무에게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그는 어떻게 숲에서의 삶을 택했을까? 충북 괴산 심신산골인 화양계곡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그. 고등학교는 청주, 대학교는 서울에서 다니면서 한동안 그는 위로, 중심으로 향하는 삶을 살았다. 명문대를 나와 연봉 높은 회사에 다녔고, 그 회사가 새로 만든 벤처기업 CEO를 맡았다. 30대에 CEO가 되었으니 누가 봐도 빠른 성공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워할 만한 삶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지치고 황폐해졌다.

“새로 만든 회사를 7년 동안 키워 안정시킨 후 물려주고 나왔습니다. 2000년 봄 CEO가 되었는데, 2년 정도 지나고부터 오십견에 시달렸고, 마음은 늘 불안하고 불편했어요.”


그의 원래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을 했던 그는 유학 자금이 모이면 공부하러 떠날 계획이었다. 회사에서는 ‘돈을 많이 받는 게 미안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런 와중에 외환위기가 왔고, 직원들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자 먼저 사표를 냈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새로 만드는 자회사의 대표로 임명했다. 벤처 열풍이 불던 때, 그는 새로 만든 회사가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책임감이 강했기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컸다. 회사가 안정궤도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40대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교수가 되겠다는 원래의 꿈을 잃고 나니 부러진 날개로 날고 있는 것 같았어요. 클라이언트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늦게 술에 젖어 들어가곤 했는데, 어느 날 딸이 ‘아빠, 오늘은 좀 일찍 놀러와’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라는 회의가 들었지요.”

그는 MBTI, 애니어그램 등 성격유형-심리 검사를 하면서 스스로를 점검했다. 그리고 극히 내향적인 성격에 완벽주의, 이상주의자인 자신을 발견했다. 내향적이라는 것은 자신도 몰랐던 사실. 어릴 때부터 반장, 학생회장을 하고 군복무는 장교로, 또 기업 CEO까지 하면서 그는 항상 남을 이끌고 배려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다. 사람들도 그 자신도 외향적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그러나 사회적으로 훈련된 것일 뿐 자신의 기질과는 다른 것이었고, 그 때문에 삶이 더욱 피곤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흔을 앞두고 ‘나다운 삶’을 모색하던 그는 도시를 떠나 자연에 들어가 살겠다고 결심했다. 돈이나 출세 때문에 비굴해지지 않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삶. 그리고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는 데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숲에 들어가 자연을 노래하고, 안내하고, 더러 가르치며 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숲에 대한 공부를 하고 틈틈이 귀농학교를 다니며 농사를 배웠다. 그는 자신이 깃들 숲을 찾아 헤매다 2007년 여우숲으로 들어왔다.

“몇 년 동안 제가 이곳에 깃들어도 되는지 서울에서 이 숲으로 부지런히 내려와 인사를 건넸어요. 움막 같은 조그만 집을 짓는 데 또 그만큼 시간이 걸렸고요. 집은 함부로 지으면 안 돼요. 바람길을 막아서지는 않는지, 다른 생명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숨듯이 조용히 깃들 곳에 자리 잡았지요.”


도시의 삶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왔을 때 경제적으로는 물론 어려워졌다.

“‘나는 지금 겨울로 들어간다. 저벅저벅 걸어서 들어간다. 나의 겨울은 추울 것이다. 그 겨울을 기쁘게 껴안고 지낼 것이다’라고 써놓고 들어갔죠. 겨울을 자각하고 준비한다면 그리 견디기 어렵지 않아요. 가을에 나무가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낙엽을 떨어뜨리는 것은 잎이 가진 양분을 회수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가장 가벼운 몸으로 버티기 위한 것입니다.”

혹독한 겨울 동안 고이 지켜낸 눈이 통통하게 물이 오르고 톡톡 터져 잎을 내고 꽃을 내면서 어김없이 봄은 온다. 그의 꿈은 하나하나 결실을 맺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책을 내면서 유명세를 얻은 그는 이제 전국을 다니며 숲에서 얻은 지혜를 전하는 ‘숲 교육자’가 되었다. 여우숲은 흙과 나무로 지은 게스트하우스와 캠핑장, 카페, 체험장 등을 갖추고 이번 봄부터 숲학교 프로그램, 휴양과 치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을 맞는다.

“발 아래 안개가 자욱한 풍경을 바라보며 ‘참 좋다’고 감탄하다 ‘나 혼자 즐기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으로부터 무수한 은혜를 입어 저라는 사람이 있듯이, 꿈을 잃은 사람들의 꿈을 되찾아주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사람이라면 숲에 대한 그리움을 DNA 속에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을 믿는다. 강이나 산이나 자연이 보이는 곳을 좋아하는 것도 그 DNA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숲에 가면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숲길을 걷는데, 발밑에 있는 무수한 생명들이 느껴져 발끝을 조심하게 된다. 그가 지은 ‘여우숲’이란 이름은 1960년대 말 인간의 욕망 때문에 멸종된 ‘여우를 기다리는 숲’이란 의미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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