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버스기사 고창석씨

음악과 이야기를 싣고 달리는 버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일탈’의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갑갑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단꿈도 잠시, 그들은 일터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고창석(58)씨가 운전하는 중부고속 603번 버스에 탄 사람들은 흠칫 놀란다. 나직이 울려 퍼지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때문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버스기사라는 걸 눈치채자마자 능숙한 곡 소개와 함께 여덟 평 남짓한 버스가 노래로 채워진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같은 곳을 돌고 또 돌지만, 그의 버스는 흐르는 노래처럼 매 순간이 새롭다.
비 오는 금요일, 그가 운전하는 버스를 탔다. “안녕하세요.” 운전석 유리창 너머에서 그가 싱긋 웃는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처럼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생각나는 노래가 있죠?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들려드릴게요.”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등에 업은 아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린다. 노래와 함께 버스는 달리고,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그의 멘트와 함께 버스가 선다.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내리는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타는 손님이 손잡이를 잡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디제잉이 안전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17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모범 운전수’다. 칼같이 지키는 그만의 철칙 덕분이다. “저는 버스가 신호 대기 중이거나 잠시 정류장에 설 때만 디제잉을 해요. 차가 움직일 때는 음악을 틀죠. 그리고 뉴스 시작 20초 전에는 음악을 끄고 뉴스를 틀어요. 승객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까요.”

세 시간가량 운행이 끝나고 버스는 처음 출발한 신월동 차고지로 돌아왔다. 여전히 흥이 남았는지 연신 콧노래를 흥얼대며 그는 자신만의 ‘보물상자’를 보여주었다. 색깔별로 묶인 종이에는 손글씨로 적은 멘트들이 주제별로 정리돼 있었다. 커다란 사진첩에는 팬들에게 받은 선물이 가득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초등학생 팬의 편지부터 열아홉 열성팬에게서 받은 시집, 오며가며 손님들이 남긴 짤막한 쪽지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가 버스 DJ가 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처음에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버스에서 틀다 노래 중간중간에 가수나 곡을 소개하는 멘트를 곁들였다. 좋아하는 승객들을 보고 용기를 얻어, 200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꽂고 디제잉을 하기 시작했다. 가요, 팝, 샹송, 라틴음악, 러시아음악, 팝페라, 판소리에 동요까지 흘러나오는 603번 버스는 달리는 음악 박물관이다. 그는 음악 마니아인 친구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해 책을 사서 틈틈이 음악공부를 했다. 매일 최신 가요도 1~100위까지 mp3로 내려받아 듣는다. 빅뱅의 노래 ‘BLUE’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근처 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학생들이 버스에 탈 땐 최신 가요를 쭉 틀어줘요. 그러면 학생들이 내리면서 창밖에서 ‘창석오빠, 창석오빠’ 그러죠.”(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중년 부부와 있었던 일이다.

“큰 소리를 치면서 타는 걸 보니 부부가 싸운 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순간 ‘음악으로 저 부부를 감동시켜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러브스토리, 로망스, 타이타닉 OST 같은 사랑 노래를 틀면서 중간중간에 사랑에 관한 멘트를 했죠. 그랬더니 남자분이 슬쩍 다가와 부인 손을 잡는 거 있죠.”

그는 어린아이처럼 키득거리며 웃었다. 눈가에 번지는 주름마저 그의 웃음을 닮아 있었다. “내릴 때 남자분이 제 옆으로 와서 말하길, 이혼서류를 쓰고 다음날 법원에 가기로 했었대요. 그런데 노래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자기가 부족한 게 많았다는 거예요. 최고의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죠.”

“버스기사가 천직인 것 같다”며 웃었지만, 버스기사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가 선택한 임시방편이었다. 회사 영업부장, 관리부장, 지사장 등을 지냈지만 회사는 부도를 거듭했고, 집안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다. 일단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 운전을 시작했다.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 중국과 대만을 오갔지만, 번번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7년이 흘렀다.

사업과는 인연이 없다는 확신이 들자 ‘버스기사로서 남은 생을 살 거라면 이 직업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새로운 의욕이 생겼다. 버스에 타는 손님마다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라는 인사가 주는 감동을 실감했다. 회사 중역으로 넥타이를 매고 일하던 때보다 운전대를 잡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사람을 만나면 늘 무엇을 얻을지 고민했어요. 무언가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까요. 이 일을 하면서는 조건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됐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그 사실에 즐거워하는 거죠.”

조건 없는 행복을 나눈 사람들은 그와 친구가 됐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는 바빴다. “어디세용?” 하는 스무 살 친구의 문자부터 오늘은 언제 운행하는지 묻는 30대 친구의 전화까지. 전화를 끊은 그는 ‘친구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직접 과일을 갈아서 매일 버스를 탈 때마다 과일주스를 한 잔씩 들고 와요. 버스 순번까지 다 알고 기다렸다가 주고 가죠.”

몇 해 전 세상을 등진 버스기사였던 동생이 생각난다며 그의 버스를 탄다는 여자 승객,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의 버스에 오르는 고등학생은 모두 그의 친구다. ‘친구’들을 위해 그가 준비하는 선물은 노래다.

“자주 타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다 꿰고 있어요. 김종국 노래, ‘라스트 크리스마스’ ‘원 서머 나잇’ ‘홀리데이’를 좋아하는 분까지 다양하죠. 컴퓨터에 그분들 폴더를 따로 만들어놓고 버스에 오를 때 틀죠.”


그는 뛰어오는 승객을 태울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단다. 출발하려는데 뛰어오면 귀찮지 않냐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날 만나려고 저렇게 뛰어온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기뻐요. 손님이 버스에 올라와서 ‘고맙습니다’ 하면 ‘뛰어서까지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하죠.”

DJ 버스기사 이야기는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그의 이름과 버스 번호만 치면 그를 만난 누리꾼들의 즐거운 경험담이 가득하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그는 6년째 서울시 교통회관에서 신규 버스기사들의 친절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언제까지 버스 DJ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는 속삭인다. “이 입 닫힐 때까지요”라고. “평생을 사랑해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 음악이니까요. 음악은 그 사람의 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잖아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의 일일 DJ를 자청했다. 603번 버스 승객이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을 찾아 읽어주기로 한 것이다. “아, 좋다!” “그 부분 참 좋네요!”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짧은 감탄사와 함께 그의 눈빛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10년 동안 음악과 이야기가 흐르는 버스를 몰며 그가 느낀 행복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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