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MC’ MC 딩동(허용운)

카메라가 꺼지면 방청객과 하나 되는 무대 주인공

‘사전MC’ MC 딩동(본명 허용운)은 박수 칠 때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프로그램 녹화 시작 30분 전, 술렁이는 무대에 그가 선다.
“오늘 오신 분들 연령 테스트 한번 해볼까요?”
“10대만 ‘세이 워’, 20대만 ‘1박2일’, 30대만 ‘무한도전’, 40대 이상만 ‘전국노래자랑’!”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와 눈을 맞추고, 객석엔 서서히 웃음이 번진다.
30분 후, 스태프의 손짓에 아쉬운 표정을 감춘 그가 짧은 인사를 끝으로 무대를 내려간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메인 MC 유희열씨가 등장한다.
찢어질 듯한 박수와 함성 소리. 무대 아래에 선 그는 웃고 있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녹화가 한창인 스튜디오. 그는 대기실이 없었다. 특집 방송이라 평소보다 많은 가수들이 초대됐기 때문이다. 대기실 대신 바깥 로비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전MC’란 말 그대로 프로그램 시작 전에 MC를 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녹화 전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방청석의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임무다. 이전에는 ‘바람잡이’, ‘비방용(방송되지 않는) MC’ 등으로 불렸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역할을 담당했던 김제동씨가 ‘사전MC’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전MC’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나서도 이들은 늘 세트 뒤편을 지킨다. 녹화 도중 밴드를 교체하거나 테이프를 가는 경우 텅 빈 무대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음향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들은 현수막 등 시각매체를 동원하거나 마술을 보여주며 관객의 시선을 끈다. “초반에는 현수막 제작비만 300만원이 들었어요. 현수막에 쓰는 멘트도 다양해요. ‘엄마, 저 이제 뭐하는지 아셨죠?’부터 ‘언젠가 가고 싶다, 인지도’까지.”(웃음)

그가 만든 작은 코너도 있다. 일명 ‘스케치북 나눠주기’ 코너다. 녹화 전, 그는 스케치북 한 권을 들고 대기실을 돌며 출연자들의 사인을 받는다. ‘특이한 이름 가지신 분’ ‘가장 멀리서 오신 분’과 같은 문제를 내서 호응이 가장 높은 방청객에게 그만의 스케치북을 선물한다. 방송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는 녹화 내내 웃고 뛰며 즐긴다.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면 무대 아래로 내려가 방청객과 함성을 지르며 춤을 춘다. 무대 구석에서 스태프와 블루스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약 세 시간에 걸친 녹화가 끝나고 화려한 조명장치도, 음악도 없는 곳에 그는 다시 선다. 방청객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안녕히 가세요. 멀리 안 나갑니다.”

그는 방청객의 등을 바라보며 연신 손을 흔든다. 현재 그는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1대 100>의 사전MC를 맡고 있다. 두 프로그램의 성격이 다른 만큼 그가 하는 일도 다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방청객은 즐기러 오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재미있는 멘트나 선물을 준비해 방청객을 더욱 즐겁게 해드리려 노력하죠. 반면 <1대 100> 방청객은 문제를 풀러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주는 데 역점을 둬요. 버튼 테스트도 하고, 구호 연습도 미리 하죠.”


자리에 앉자마자 특유의 유머를 섞어가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그. 그러나 어릴 적 그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그러던 그가 무대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재학시절 연극부 활동을 통해서였다. 많은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내던 순간의 희열이 그를 감동시켰다. MC의 꿈을 꾼 건 레크리에이션 강사 출신의 후임병을 만나면서였다. 오랜 시간 함께 근무를 서면서 후임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제대 후 이벤트 업소에서 일하며 레크리에이션 강사들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메인 MC로 발탁된 뒤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처럼 전국의 행사장을 누볐다.

“한번은 행사 중에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데 ‘가위바위보슬보슬’ 하고 장난을 쳤어요. 그랬더니 앞에 계시던 분이 제 얼굴에 침을 뱉으시더라고요. 잠깐 음악을 틀어놓고 무대에서 내려와 이를 닦았어요. 이를 닦으면 울어도 티가 잘 안 나거든요. 그때 결심했죠. 힘들더라도 더 큰 세계로 나가보자고.”

그 후 그는 서른 살까지 대학로에서 개그 공연을 했다. 월급이 아닌 연봉 30만원을 받고 일하던 시절이었다.

“친구가 제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었어요. 음식물 반입이 안 되는데 커피를 마시고 있더라고요. ‘미안한데 커피는 여기 두고, 가서 공연 재밌게 봐’ 하고 표를 끊어주고는 친구가 두고 간 커피를 마셨어요. 커피가 정말 먹고 싶었는데, 사 마실 돈이 없었거든요.”


그는 큰맘 먹고 2007년 SBS개그맨선발대회에 도전해 대상을 탔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시 대학로 무대로 돌아와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윤도현의 러브레터> 사전MC 오디션을 보게 됐고, <이하나의 페퍼민트>를 거쳐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4년째 사전MC 자리를 지키고 있다. MC로서 자신의 매력을 물었다. “아, 이거 민망한데”라며 운을 뗀 그는 “정보력”을 꼽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모든 목소리가 선생님이라는 생각으로 늘 귀를 기울여요. 거리를 지나다가도 행사장에서 MC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서서 들어요. ‘저렇게도 말을 하는구나’ 하면서. 그렇게 하나 둘 머릿속에 쌓인 말들이 자라 제 멘트가 되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건 MC라는 직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 장점은 곧 이 직업의 최대 단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을 웃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 두 개란다. 하나는 무대 아래에서의 마음, 다른 하나는 무대 위에서의 마음이다.

“무대 아래에서는 힘든 일도 많죠.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단 한 번도 ‘짜증난다, 힘들다, 목 아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최근 그는 케이블방송 두 프로그램에서 코너 진행을 맡고 있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리포터로도 활약하고 있다. 매니저를 자청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배우려 하는 2명의 후배들도 생겼다. 한 명은 출연하던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나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다른 한 명은 1년 전 목포에서 무작정 상경해 그의 집 앞 고시원에 살고 있다. 이제 그가 다른 이들의 꿈이 된 것이다. 그에게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거요. 나이 들어서 노인대학 미팅도 진행하고 싶어요.”(웃음)

이번엔 그가 질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뭐예요?”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침대를 뒤적거려 휴대전화를 찾는다고.

“전 왼쪽 가슴에 살며시 손을 얹어봐요.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면서 ‘오늘은 누굴 만날까’ 상상하죠.”

코르사주를 단 그의 왼쪽 가슴에 분홍 꽃잎이 하늘거렸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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