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② 그림일기책 《엄마라서 예쁘지》 낸 이행내・조장은 모녀

딸 덕분에 30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꿈을 이뤘어요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엄마가 되는 것은 축복이자 멍에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된 순간, 그 여자는 삶의 지축이 바뀐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더 이상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의 엄마’라는 문패가 따라다니고, 생의 의미와 목표 또한 대대적으로 수정된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상은 기쁨과 감동, 안타까움과 눈물이 점철된 드라마다. 여기 그 일상의 드라마를 자녀와 함께 책으로 엮어 낸 두 엄마가 있다. 여덟 살짜리 쌍둥이 아들과 그림책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를 낸 박선미씨와 서른 살 딸과 함께 생애 일기책 《엄마라서 예쁘지》를 낸 이행내씨다. 재주 많은 두 엄마는 출산과 함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다른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1958년 줄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여름날, 엄마는 부산에서 4남 2녀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 어느 날 무심히 엄마 일기들을 들춰보는데, 거기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있었고, 나도 있었습니다. 엄마의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 《엄마라서 예쁘지》 조장은의 프롤로그 중에서

“올해 여든일곱이신 우리 엄마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하고 즐거우시단다. 나도 그렇다. 내 딸이 곁에 있어줘서 늘 든든하고 행복하다. 딸이 있어 내 삶이 더 풍요롭다.”
- 《엄마라서 예쁘지》 이행내의 글 중에서



내내 행복하라고 아버지가 ‘행(幸, 행복할 행) 내(乃, 내내)’라고 이름 지어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난초보다 예쁘고 어떤 꽃보다도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신여성이었던 외할머니, 패셔니스타였던 어머니를 둔 여자 역시 예쁜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이화여대 도예과를 졸업해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다. 일곱 살 연상의 듬직한 노총각. 여자는 새우튀김정식을 네 번이나 얻어먹은 것이 부담스러워 교제를 시작했고, 스물네 살 때 얼떨결에 결혼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면서 공부의 꿈은 날아갔다.

전업주부가 된 여자는 꿈을 접지 못해 틈틈이 그림을 그렸고, 딸은 엄마 옆에서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가지고 놀았다. 엄마를 닮아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딸 역시 이화여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팝아트 작가가 됐다. 전시회도 하고, 책도 내면서 인지도가 커져갔다. 어느 날 딸은 출판사에서 그림일기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딸은 엄마의 일기장이 생각났다. 거기에는 엄마의 일생은 물론 외할머니와 자신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여자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딸은 엄마에게 제안했다. “엄마의 일기장으로 책을 내면 어떨까?” 엄마는 케케묵은 일기장을 꺼내 추억을 더듬으며 살을 입혔고, 딸은 엄마의 글에 어울리는 가족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해서 《엄마라서 예쁘지》가 출간됐다. 엄마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친구들이 나더러 성공했단다. 딸이 너보다 진화했으면 된 거란다. 내 인생에 이보다 더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어디 있냐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엄마 이행내씨와 딸 조장은씨. 모녀를 방배동에 있는 조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옥탑방이 작업실이고, 바로 아래층이 가족이 사는 집이다. 또 하나의 가족인 슈나우저 ‘마린이’도 인터뷰 내내 옆에 있었다. 조 작가는 직접 구웠다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내왔다. 달지 않으면서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엄마 이씨는 “우리 조 작가가 만든 케이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 쿠키는 또 얼마나 잘 굽는다고” 했다. 딸을 ‘조 작가’라고 부르냐고 묻자, 엄마는 대답 대신 웃었다. 이씨의 말투는 수줍음 많은 소녀 같았다. 나긋나긋하고 간드러졌다. 딸이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요. ‘너희 엄마 집에서도 저렇게 말씀하시니?’ 하고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또 빙긋이 웃는다.

이씨는 방배동에서 여덟 평짜리 옷 카페 ‘후르츠마마’를 운영 중이고, 조 작가는 그림일기책 《골 때리는 스물다섯》을 낸 후 5년간 20~30대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하는 팝아트 작가가 되어 팬 층을 넓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가족의 탄생’을 테마로 초대전을 가졌다. ‘후르츠마마’는 이씨의 놀이터이자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중년여성을 위한 스타일리시한 옷을 팔면서 한쪽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벽면에는 조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원래 커피와 과일주스도 팔았는데, 가게에 하루 종일 매이게 되어 더 이상 팔지 않는다. 요즘엔 멀리서 단골손님이 찾아오면 “우리 문 닫고 밥 먹으러 갈까요?” 한다.

《엄마라서 예쁘지》는 한 여자의 생애 일기다. 꼬마시절 뽑기의 고수였던 그를 출입금지시킨 뽑기집 주인, 언니한테 죄(?)를 덮어씌운 오줌싸개 여동생, 위문편지를 받고 학교로 찾아온 국군 아저씨, 입시철에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던 엄마, 대학교 때 만난 첫사랑 이야기 등 한 여자의 소소한 추억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수대에 걸친 여자의 일생이기도 하다. 구한말 정미소집 딸로 태어나 한학자에게 과외를 받은 신여성 외할머니, 오빠의 친구한테 시집가 평생 큰살림을 꾸리면서도 늘 멋쟁이인 어머니, 재기발랄하면서도 거침없는 딸, 그리고 공부의 꿈을 접고 전업주부의 길에서 행복을 찾은 이씨 등. 이들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낸 한국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딸이 책을 내자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평생 가슴에 품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었으니까요. 가끔 자다가도 벙글벙글 웃는다니까요.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 따뜻한 추억담을 엮어 언젠간 꼭 책으로 내고 싶었죠. 특히 열한 살 많은 큰집 언니는 제게 마음의 고향 같아요. 추울 때도, 더울 때에도 늘 저를 업고 뛰어다녔는데, 추울 때에는 열이 나라고, 더울 때에는 시원하라고 뛰었대요. 또 아버지를 비롯해서 주위 분들이 만날 예쁘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제가 사실 예쁜 편은 아니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라다 보니 자존감이 커진 것 같아요. ‘사람은 다 귀하니 누구라도 예뻐하고 사랑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됐죠.”

이씨는 “행복 바이러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가 운영하는 ‘후르츠마마’는 사람이 들끓는다. 동네 아줌마는 물론,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다. 딸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놀러와 수다를 떤다. 딸은 “친구들이 남자친구를 자기 엄마한테는 안 보여주면서 우리 엄마한테는 데리고 와요”라며 질투 섞인 자랑을 한다. 책을 낸 이후에는 교육상담도 한다. 그 어떤 교육 전문가의 말보다 피부에 와 닿는다는 평이 많다. 그는 “엄마와 딸 입장에서 쓴 건데,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좋아해요.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 특수학교 선생님이요”라고 말했다.

그만의 교육방식이 있다. 첫째, 자유방임이다. 자녀의 선천적인 능력을 철저히 믿고 지켜만 보는 것이다. “마라톤 선수 뒤에서 초시계를 들고 함께 뛰는 페이스메이커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조용히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거죠. 같이 뛰면 지쳐요. 힘을 비축해야지 아이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어요. 다만 ‘네가 열등감 없이 세상을 살아낼 수 없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할 부분이라면 꼭 해’라고 말해요.” 딸은 “엄마, 가만히 내버려둬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죽 부탁드려요”라고 말한다. 자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저 내버려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씨는 늘 “우리 아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다”고 한다.


두 번째로 그는 ‘감정의 교통신호’를 꼭 지킨다. 누군가 한쪽에서 빨간불이 켜지면 더 이상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것. 대신 초록 불 사인으로 바뀌면 마음에 있던 말을 꺼내면서 소통한다. 그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특히 가족끼리 더 잘 지켜야 하는 것이 감정의 교통신호”라고 말한다.

조 작가의 그림은 개성이 강하다. 한국화를 전공한 팝 아트 작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의 작품은 이 둘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강렬한 색채를 입은 재기발랄한 캐릭터에서는 민화와 신윤복 그림에서 풍기는 고전미가 느껴진다. 익살스러운 표정은 다층적이다. 발랄한 표정 이면에는 묘한 비애감이 흐르고, 잔뜩 찡그린 얼굴은 오히려 해학적이다. 자화상도 마찬가지다. 자화상에서는 엄마의 얼굴이 보이고, 엄마의 그림에서는 딸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맞다. 그게 바로 작가의 의도”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이야기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제 이야기가 됐어요. 엄마의 과거를 보면서 제 미래를 본 거죠. 책을 만들면서 ‘엄마도 여자였구나, 평범한 한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엄마는 그저 엄마로만 보였거든요. 엄마를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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