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①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 낸 엄마 박선미, 쌍둥이 이건희・대희

엄마는 글을 쓰고, 쌍둥이 형제는 그림을 그렸어요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 엄마가 되는 것은 축복이자 멍에다. 한 여자가 엄마가 된 순간, 그 여자는 삶의 지축이 바뀐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더 이상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누구의 엄마’라는 문패가 따라다니고, 생의 의미와 목표 또한 대대적으로 수정된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상은 기쁨과 감동, 안타까움과 눈물이 점철된 드라마다. 여기 그 일상의 드라마를 자녀와 함께 책으로 엮어 낸 두 엄마가 있다. 여덟 살짜리 쌍둥이 아들과 그림책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를 낸 박선미씨와 서른 살 딸과 함께 생애 일기책 《엄마라서 예쁘지》를 낸 이행내씨다. 재주 많은 두 엄마는 출산과 함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다른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기자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이가 있다. 우리 모자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서 눈물의 이별식을 한다. 4년째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으니 적응시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건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한다. “엄마, 가지 마” 하며 엄마를 꼭 안은 채 보내주지 않고, 가까스로 뒤돌아서 회사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엄마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아이도, 엄마도 울먹일 때가 많다.

건희와 대희가 그린 <슈퍼스타K3>의 최종 우승자 ‘울랄라세션’. 박선미씨 블로그에 있던 그림을 <슈퍼스타K3> 담당자가 트위터에 올리면서 순식간에 퍼졌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메인 연예기사를 장식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워킹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 나왔다. 엄마가 글을 쓰고, 쌍둥이 아들이 그림을 그린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 “내 이름은 별이에요. /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 친구들이 집에 다 돌아간 후에도 / 나는 유치원에 남아 있어요”로 시작하는 이 동화는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함께 어루만진다. 회사에 다니느라 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모여서 곰 인형이 생겨나고, 별이는 엄마의 분신 같은 곰 인형과 늘 함께해서 행복하다. 그리고 엄마도 엄마 나름의 꿈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씩씩하게 지낸다.

엄마를 그린 초상화.
이 가족을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자택에서 만났다. 엄마 박선미씨와 초등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형제 이건희・대희, 마침 아빠 이동혁씨도 있었다. 건희와 대희는 독서삼매경이다. 학교에서 추천받은 교과연계 도서 수십 권이 도착한 날이라 인사만 꾸벅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눈이 커서 블로그 아이디가 ‘빅아이’인 엄마 박선미씨는 “아이들이 수줍음이 많아요”라고 속삭였다. 쌍둥이지만 둘의 성격은 딴판이다. 그 성격 차는 그림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 건희는 대범하고, 동생 대희는 섬세하다. 건희는 과감한 터치로 인물을 그리고, 대희는 책상이나 책꽂이, 놀이터 등 배경을 꼼꼼하게 그린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에 맞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어요. 주인공 별이를 중성적으로 표현했더라고요. 머리는 단발 같은데, 옷은 늘 바지를 입혔어요. 아이들이 스케치하면 제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색깔을 입혔죠.”

워킹맘의 심경을 기막히게 집어낸 이 책의 저자는 당연히 워킹맘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박선미씨는 전업주부다. LG텔레콤에서 7년간 근무하다 2005년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이 책은 한 워킹맘의 요청으로 탄생했다. 박선미씨까 운영하는 엄마표 육아일기 블로그에 “직장맘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어주세요”라는 글이 장문의 사연과 함께 올라온 것. 그에게 이 일은 어렵지 않았다.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만드는 건 마음먹고 해야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박선미씨가 쌍둥이 아이들과 만든 ‘엄마표 그림책’만 열 권이 넘는다. 피자만 좋아해 영양 불균형으로 몸이 약해져 쓰러진 피자마왕을 각종 영양소가 균형을 이룬 김치두부야채밥전맨이 물리친다는 《김치두부야채밥전맨》, 수고하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영양갱, 돋보기 등을 선물로 주는 《산타 할아버지, 선물 받으세요》, 동생에 대한 질투병이 걸린 형 건희를 위로하는 《내동생》, 할아버지도 아빠의 아빠라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담은 《할아버지도 아빠였단다》 등 이야기의 소재가 다채롭다.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녀요》도 엄마표 책으로 먼저 만들었다가 출판사의 의뢰를 받고 정식 출간했다.

엄마표 책. 이제까지 아이들과 함께 열 권이 넘는 책을 만들었다.
엄마 박씨에게 그림책은 육아일기이자 교육도구이고, 쌍둥이 형제에게 그림책은 감정일기이자 정서의 놀이터다. 쌍둥이는 말보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걸 더 편해한다. 박선미씨가 만든 ‘엄마표 명화공부책’에 쓴 두 아이의 감상평이 놀랍다.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보여주고 제목과 내용을 쓰게 했다. 대희가 일곱 살 때 썼다는 글은 이렇다. “제목 : 축복, 내용 : 이 사람은 늙고 가난하지만 세 개의 축복이 있다. 생명과 큰 마당, 그리고 친절한 마음.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말수 적은 두 아이는 그림과 글을 통해 속마음을 드러낸다. 둘이 자주 싸워서 엄마가 속상해하는 걸 보고 《엄마 마음에 구멍이 났어요》라는 그림책을 만들어 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둘이 함께 하나의 책을 완성한 것이다. 쌍둥이 형제의 그림 실력과 감정 표현 능력은 어떻게 길러졌을까? 박선미씨에게 물었더니 “몸으로 놀아주기가 너무 힘들어서요”라며 웃는다.

개업 선물. 신사동 가로수길에 도시락 가게를 연 엄마 친구를 위해 아이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엄마가 채색해 그림액자로 만들었다.
“남자아이들이라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이 아이들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꺼지지 않는 무한작동 모터가 장착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니까요. 세 살쯤이었나? 종이에 숫자를 큼지막하게 써주고, 숫자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그렸더라고요. 그림 그리기를 진심으로 좋아했고요, 그리면서 성격이 많이 침착해졌어요. 그림을 보면 아이의 일상과 고민도 알 수 있어요.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궁금한데, 우리 아이들은 열 마디 물으면 한 마디 겨우 대답하는 정도거든요.”



유치원 미술시간에 그린 ‘새’ 그림. 첫째 건희는 선이 굵고 과감한 반면(왼쪽), 둘째 대희의 그림은 섬세하다(오른쪽). 자연관찰책에 있는 새를 따라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건희와 대희는 스토리를 입혔다.
박선미씨 역시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중학교 때에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그 대가로 장국영이나 왕조현의 사진을 받기도 했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전공으로 살리지는 못했다. “여자는 선생님 되는 게 최고지”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대로 사범대를 갔지만, 졸업 후 진로를 바꾸었다. 그가 졸업한 1997년은 PC통신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 제작과 콘텐츠 기획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했다. 임용고시는 뒷전이었다. 컴퓨터에 빠져서 전국 홈페이지 경연대회 대상, 한국인터넷대상 베스트 50에 선정됐다. 이 경력을 바탕으로 LG텔레콤에 입사해 콘텐츠 기획을 신나게 했다. 그에게 아쉽지 않은지 물었다.

엄마표 명화공부책. 명화를 보여주고 제목, 느낀 점을 자유롭게 쓰고, 이어지는 다음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아이들의 의외의 발상에 엄마도 놀랄 때가 많다.
“전혀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이랑 그림을 그리다가 작가가 됐잖아요. 이 길을 택하지 않았으면 작가가 되지 못했겠죠. 육아를 위해서 엄마가 희생하는 건 반대예요. 엄마도 엄마의 시간과 일이 필요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과 맞아떨어졌으니 운이 좋은 경우죠. 저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세상 변하는 속도가 빠르고, 트렌드도 자주 바뀌니 그 와중에서 재미난 걸 찾으면서 살아왔어요.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도 남편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성장과정과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거든요.”

LG전자에 근무하는 남편 이동혁씨 역시 육아에 있어서 베테랑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와중에 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아이를 업고 논문을 썼다고 한다. 이씨는 “건희와 대희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따로 없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다가 그 일이 직업으로 연결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부부는 대학교 1학년 때 CC(캠퍼스커플)가 되어서 10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20년 동안 곁에서 지낸 둘은 교육 철학이 같았다.

거실 기둥에는 엄마의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일하며 살자”

사진 : 김선아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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