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4989시간 봉사 ‘연세대 봉사상’ 수상한 주민서

동정이 아닌, 꿈을 지원하는 밝은 봉사문화 일구고 싶어요

올해 연세대를 졸업한 주민서(27)씨는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의 최다 봉사시간을 기록해(4989시간) ‘연세대 봉사상’을 받았다. 그는 신입생 때부터 세브란스병원의 멘토스 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린이 암 환자들의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었고, 소로티와 우즈베키스탄에서 체육과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누구나 다 하는 봉사활동인데 지나치게 칭찬을 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그는 “누군가를 돕는 일만큼 값진 일은 없다”며 활짝 웃었다. 눈물과 동정에서 비롯된 봉사가 아닌, 밝은 미래를 만드는 방법으로의 봉사문화를 일구고 싶은 것이 그가 희망하는 삶이다.

“제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은 이후로 제가 마치 테레사 수녀님처럼 비춰지는 것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거든요.”

주민서씨는 지난 2월 졸업과 함께 ‘연세대 봉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연세대 자원봉사센터 설립 이후 역대 최다 봉사시간인 4989시간을 기록해 받은 것으로, 그는 대학시절 내내 틈틈이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활동에 그토록 열심인 사연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거절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누구나 하는 봉사활동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4989시간, 날짜로 환산하면 208일이 넘는 시간을 누군가를 돕는 일에 썼다면 ‘누구나 하는 봉사활동’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기숙사에 살다 보니 주말에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 주말마다 장애인 복지시설에 갔어요. 그게 제 인생 최초의 봉사활동이었어요. 당시 했던 일은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아이들과 장난치고 노는 정도였어요.”

소로티에서 주민서씨는 한 달간 체육교사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봉사 동아리인 세브란스 멘토스 클럽에 가입했다. 그는 “봉사활동에 대한 거창한 계획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보다 고등학생 때부터 해오던 일을 변함없이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이 봉사 동아리에서 그는 연세의료원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고, 마술이나 연극 등을 준비해 보여주기도 했다.

“병에 걸렸지만 공부를 계속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저는 주로 수학을 가르쳤고요. 또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이 대학생 언니, 오빠들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하루 종일 병실에 있다가 저희가 가면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어린 암 환자들과 함께 2년간 시간을 보냈다. 그는 “시험 공부에 집중해야 했는데, 아이들이 눈에 밟혀 만나러 간 적도 많다. 종종 학점이 안 좋게 나오면 봉사활동 탓인가 의심한 적도 있지만, 사실은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안 한 탓”이라며 웃었다. 그에게 “봉사활동을 할 때 그 대상에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 무슨 특별한 감정이 있겠어요? 상대방이 아프다고 해서, 혹은 가난하다고 해서 우리와 다른 사람은 아니니까요.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의 꿈은 유엔이나 유니세프 같은 국제기구나 우리나라의 여러 봉사단체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다녀온 대학생 해외봉사단 활동이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대학생 해외봉사단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저 45만원만 내면 아프리카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봉사단원으로 선발된 후 ‘소로티의 문화와 주의할 점’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요. 인천공항에서 두바이로 갔다 다시 케냐행 비행기로 갈아탔고, 케냐에서는 1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우간다와 르완다의 국경 지역인 소로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쳤어요.”

209번 학교에서 주민서씨에게 한국어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 물을 길러 반나절 동안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한 달 동안 그가 느낀 것은 그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전에는 난민이라면 모두 불행하게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지를 다녀온 후 그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올바른 봉사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뼈가 앙상한 갓난아이의 슬픈 눈동자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눈물샘을 자극해서 사람들의 후원금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 방법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확실히 전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지금보다 한층 밝은 봉사-기부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당장은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그 아이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줄 수 있는 희망에 동참하자고 설득하는 거죠.”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그는 2006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학생 봉사단에 지원, 우즈베키스탄 카라수 구의 209번 학교에서 한국어 원어민 교사로 2년간 활동했다. 209번 학교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학교에 붙여진 숫자라고 한다. 이곳에서 그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이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아요. 귀엽고 또 놀기를 좋아하죠. 우리나라로 치면 영어 원어민 교사 역할처럼 한국어 원어민 교사를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스승의날에 아이들이 칠판에 ‘주민서 사랑한다’고 썼을 때예요.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배우기 전이었기에 반말 아닌 반말을 쓴 거죠.(웃음)”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에서 한글 백일장에 참가한 제자들과 함께.
209번 학교에서 지낸 날들을 이야기하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도 그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중 한국 유학을 계획 중인 경우도 상당하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 열풍은 한국 대학 진학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인기라고도 했다.

“전공은 경영학인데, 부전공으로 정치외교학과 노어노문학도 했어요. 아직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써야 하는 입장이라 많이 죄송스럽죠. 하지만 부모님께서도 제가 하는 일을 응원해주실 날이 오리라고 믿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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