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호 ‘인문학카페’ 대표

독서 모임에서 시작해 사회적 기업이 됐죠

토요일 오후, 인문학카페의 고전읽기 강좌 ‘신화, 인간을 말하다’가 열리는 강의실. 후드티에 캡을 쓴 대학생,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 나란히 앉은 부부 등 나이도, 하는 일도 제각각인 20여 명의 사람들이 강의에 푹 빠져 있다. 강연을 맡은 김원익 교수는 그리스의 도기 그림, 영화 <타이탄> 등 시각매체를 동원하면서 수강생들의 이해를 돕고, 여섯 남매를 키우던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신화와 대비해 설명하기도 했다. 1교시는 강연, 2교시는 학생들과의 활발한 토론으로 진행된다. 재미와 활기가 가득한 강연 현장이었다.
인문학카페는 ‘인문학을 생활 속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인문학 강의와 답사를 진행한다. 현재 인문학카페의 공식회원은 350명 정도,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2000명 정도다. 복지재단, 도서관 등과 함께 진행하는 오프라인 강의 이외에 웹사이트에 개설된 e러닝 강좌를 통해 취약계층은 인문학 강의를 무료로 접할 수 있다. 이 카페는 2010년 시민단체로 등록됐고, 2011년에는 서울시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다.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단체 중 유일한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해 가을에는 ‘더 착한 서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실 밖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인문학카페 이관호(40)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요즘 부쩍 바쁘다. 올해 1월 ‘고(古)독(讀)클럽-행복한 고전읽기’라는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권씩, 1년에 6권의 인문학 고전을 8년 동안 인문학자와 함께 읽어가는 장기 프로젝트다. 올해는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시작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공자의 《논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차례로 읽어나갈 계획이다. 강좌와 토론을 50대 50으로 진행하며, 운영자 측에서 강좌의 의제를 정하는 게 아니라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카페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있지만, 30~40대 직장인이 가장 많다. 그 이유를 이관호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문학은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꼭 필요해요. 모두 성공을 갈구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의미는 다 달라요. 직장인들이 저희 강의를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 자신이 원하는 성공에 대한 그들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카페의 또 하나의 간판 프로그램인 ‘삶의 혁신을 위한 인문학 트레이닝 10’ 또한 자신만의 분명한 철학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사유의 힘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지난해 9월, 서울시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심리, 리더십, 행복, 혁신, 생명, 소통, 정의, 성공, 창의력, 상생의 10가지 키워드를 선정해 인문학자들과 함께 깊이 사유해보는 시간이다. ‘답사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삼척 죽서루, 예산 추사고택 등 국내의 문화유적을 인문학자의 설명을 들으며 여행하는 프로그램으로 1년에 4회 진행한다.


이관호 대표는 “인문학은 마음 깊이 스며드는 학문”이라며 “자신을 돌아보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게끔 도와준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깁니다.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도 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도 많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신 분도 있고, IT 분야에서 근무하다 사진 쪽으로 방향을 트신 분도 있죠.”

인문학카페의 시작은 직장인 10명으로 구성된 한 독서 모임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모임이었는데 당시 금융계에서 일하던 이 대표를 비롯해 의사, 연구원, 신문기자 등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이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 일에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행복한 걸까?’라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들었다. ‘목요회’라는 독서 모임을 결성해 인문학 고전을 차례차례 읽어나갔다. 하지만 고전읽기는 녹록지 않았다. 심오한 질문은 쌓여갔지만, 속 시원히 해결해줄 사람이 없었다. 야심차게 결성한 ‘Thursday Discussion Meeting’은 ‘Thursday Drinking Meeting’으로 변해갔다.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 회원들은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해 한 달에 한 번씩 인문학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 책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조촐한 모임은 1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결성 당시 친구들 대부분은 여전히 인문학카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운영을 돕는다.

인문학은 이 대표의 삶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소설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인문학 도서를 즐겨 읽었다. 연세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애정이 커졌고, 졸업 후에도 계속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금융계에 취업했다. 경제적으로는 안정을 찾았지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결핍감이 밀려왔다. 회사에 월차를 내고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고, 목요회를 결성해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이 시절 그가 철학서적을 들춰보며 일기처럼 남긴 메모들은 후에 《생각의 연습》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출판사에서 2년간 인문학서적 출판기획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때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단체 설립을 구상한 것이 인문학카페의 시초가 됐다.

인문학카페는 삶을 바꾸는 인문학의 힘이 사회적 취약계층에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무료 인문학 강좌에 대해 ‘먹고살기도 바쁜데 인문학은 무슨’이라는 반응도 있다. 그럴 때 그는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라고 말한다.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토대를 다지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문학카페의 프로그램은 회원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이 대표는 회원들이 의논해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하던 독서 모임 때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교수가 강의하는데 모여라’가 아니고 ‘우리가 이게 필요한데 교수님이 오셔서 좀 해달라’는 게 저희의 기본 메커니즘이에요. 학계에서 중요시하는 이슈가 아니라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주제를 다루죠.”

이런 특징은 인문학카페의 강좌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인문학카페의 강의실은 늘 시끌시끌하다. 학생들은 학자와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인문학카페의 수업방식이 고전읽기 강좌로 깊이가 얕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깊이는 텍스트 자체의 깊이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깊이예요. 고전의 개념이나 이론을 삶에 적용해보고, 삶 속에서 느끼는 깊이를 공유하는 거죠.”

사회적 기업이 된 지 10개월, 이 대표는 이 시간을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기”라고 말한다. 앞으로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어떤 신발을 신으면 더 빨리 가는지까지 일일이 가르쳐주는 기업이 아니라, 뛰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갈 건지 생각하게끔 돕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 201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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