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사랑 人] 천안함 수병 생환 기원 시(時) 쓴 김덕규 교수

“해마다 이맘때면 가슴이 아파요”

2010년 3월 29일, 바다를 지키던 해군 함정 772호(천안함)가 침몰돼 구조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해군 홈페이지에 기도문 형식의 시 한 편이 올라왔다. 수병들의 생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담긴 이 시는 네티즌에 의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 많은 사람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시를 쓴 사람은 동아대 의대 김덕규 교수. 2년 전 일이지만 김 교수에게 천안함은 여전히 현재이고, 우리가 북한의 무력도발 위협 아래 살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지표다.
김덕규 교수는 ‘772함(艦) 나와라’로 시작되는 시에서 46명 병사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이렇게 썼다.


‘(전략)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전선(戰線)의 초계(哨戒) 임무는 이제 전우(戰友)들에게 맡기고/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命令)이다.//대한민국을 보우(保佑)하시는 하나님이시여,//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救援)하소서//우리 마흔여섯 명의 대한(大韓)의 아들들을/차디찬 해저(海底)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生還)시켜주소서/부디/그렇게 해주소서.’


침몰된 지 3일째,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온 국민이 구조 과정에 귀 기울이고 있던 당시 수병들을 향한 이 간절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전 진료가 없던 날이었어요. 아침에 출근해 신문을 읽는데, ‘수병들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그래픽 기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천안함을 그려놓고 수병들이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자리에 이름을 적어놓았더군요. 그걸 보니 그 안에 갇혀 있을 46명의 군인들이 생각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 안타까움을 써내려갔지요. 사실 시라기보다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쓰는 내내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서 ‘오후 진료를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그는 자신의 글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다만 수병들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읽혔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이전에도 시를 쓴 적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재미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 흔한 중고등학교 문예반 활동도 해본 적이 없고, 백일장 같은 데 나가본 적도 없어요. 대학시절, 교지 편집일을 하는 친구를 도와 학생들의 글을 손보거나 지면이 부족하면 제가 직접 써 메우는 일을 몇 번 했던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특별했어요. 큰 슬픔에 빠져 있던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이 마음을 글로 풀어놓고 싶더라고요. 흔히 ‘영감’이라고 표현하는데, 독실한 신앙인인 제게는 그게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어요. 즉석에서 수정 한 번 없이 그런 글을 완성한 경험은 그전에도 후에도 없기 때문에 저는 그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천안함 조사 결과 불신은 사회병리현상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착잡하다. 가슴의 통증도 느낀다. 심장을 옥죄는 듯한, 협심증과 유사한 증상으로 검사까지 받았다. 차가운 바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스러져 간 젊은 목숨들이 안타깝고,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탓이다.

“그런데 저를 더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아직도 조사 결과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연평도 포격 후 줄어들기는 했지만 천안함 선체 발굴 직후에는 우리나라 성인의 30%가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우리나라 성인을 3000만 명이라고 한다면 엄청난 숫자 아닙니까? 합동조사단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전문가가 포함된 다국적 조사단이었어요.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조사한 내용을 믿지 못한다는 건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이걸 ‘사실인정거부증’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사회학자들이 한번쯤 연구해볼 필요가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955년생인 그는 6・25 전쟁 후 태어났지만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뒤편까지 침투했던 1・21 사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대한항공기 납치사건 등 심심치 않게 일어난 북한의 무력도발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특히 1・21 사태 때 현장 근처인 청운동에서 살고 있었다는 그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북한의 도발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도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것들을 교훈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시작한 6·25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루지 않고는 이와 같은 비극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죠. 그나마 천안함 폭침에 끄떡도 않던 상당수가 연평도 포격을 목도하고 나서야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희생을 치렀죠.”

“결국 통일이 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고 단언한 김 교수는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지성인들이 이제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아, 질병, 인권 유린 등 한계점을 넘어선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요즘 그의 기도 제목은 ‘통일’이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통일을 통해 강력해진 국력으로 아시아 평화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좀 거창한 비전이긴 하지만 저는 많은 사람이 이 꿈을 함께 꾸기를 원합니다.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천안함 46용사의 바람이기도 할 겁니다.”

2010년 3월 26일은 온 국민을 분노로 떨게 만들었던 천안함 폭침이 발생한 날입니다. 북한은 서해 백령도 해상에 있던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했고, 이로 인해 46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이후 애타는 마음으로 단 한 명의 전우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던 UDT의 전설, 한주호 준위가 잠수병으로 사망했습니다. 늠름한 모습으로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던 46명의 용사들과 뜨거운 전우애를 보여준 한주호 준위를 영원히 기억하며, 북한이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 하나 된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국가보훈처 제공)
사진 : 하지영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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