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마림바 연주자 전경호

건반을 볼 수는 없지만, 음악은 보입니다

시각장애 1급인 전경호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2012학년도 입시부터 도입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형’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유일하게 합격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머릿속엔 마림바가 그려져 있다는 그는 “시각장애인은 마림바를 연주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3m 정도 길이의 마림바(장미나무로 만든 건반을 스틱으로 연주하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속악기)는 실로폰과 비슷한 타악기로 실로폰보다 2배 정도 크다. 건반이 모두 61개인데 건반 크기도 3~4배가량 차이가 나서 비장애인도 연주하기 힘든 악기로 꼽힌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한빛맹학교를 찾았다. 연습실에서는 마림바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마림바는 건반 밑에 공명통을 붙인 대형 실로폰 같았다. 마림바는 실로폰보다 울림이 크고 부드러우며 둥근 느낌의 소리가 난다. 5옥타브의 음역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울림통에서 나는 음색은 풍부했다. 마냥 신기해하는 기자에게 전경호씨는 마림바의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마림바는 실로폰을 뜻하는 아프리카어의 여러 명칭 중 하나로 원래 아프리카의 민속악기였다고 한다. 흑인 노예들에 의해 미국으로 반입되었다가 이어 멕시코, 중남미에 보급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민속악기로 정착됐다. 1950년 초 오케스트라 악기로 쓰이기 시작해 현재 독주 악기로서는 실로폰보다 많이 쓰인다.


그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 1급이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그는 미숙아망막증(조기출산아에게 일어나기 쉬운 망막 이상증)으로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일곱 살 때 한빛맹학교에 입학한 그에게 음악은 가장 큰 기쁨이었다. 밴드부 활동을 하던 중학생 시절, 그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관현악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듣다 타악기 소리에 강렬하게 이끌렸다.

“강렬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아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타악기 연주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그. 그러나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제까지 타악기를 전공한 시각장애인이 없는데다,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자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여러 타악기를 연주해야 하는데, 시각장애인은 그게 어렵기 때문이죠. 그 선입견을 깨고 싶어 노력을 거듭했지요.”

현실의 장벽은 한없이 높았는데, 그런 그에게 희망이 생겼다. 한빛맹학교가 2년제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음악 전공과를 신설하면서 타악기 교사를 영입한 것. 그 교사는 “함께 도전해보자”며 용기를 북돋워줬다. 그는 타악기 중 가장 어렵다는 마림바로 시작했다.

“실로폰 연주도 쉽지 않은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마림바의 울림관에서 전해지는 소리에 매료되어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는 악보를 달달 외워 연주하기 시작했다. 건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각각의 건반 위치를 하나하나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지도교사가 뒤에 서서 그를 끌어안은 채 양손을 잡고 건반 위치를 확인해줬고, 그는 교사의 몸동작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감을 먼저 익혔다. 그렇게 하루 8~10시간씩 반복 연습하며 익혀나갔다.

2006년 그는 한빛예술단의 제2회 정기연주회에서 사라사테의 ‘치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줬다. 한빛예술단은 한빛맹학교 재학생들과 2년제 전문대학인 음악 전공과 학생, 그리고 일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연주단체다. ‘마림바를 연주하는 최초의 시각장애인’으로 관심을 모은 그는 2007년 KBS교향악단과 협연하고, 2010년에는 KBS <열린 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부족한 실력으로 좋은 무대에 설 수 있어 영광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제 연주를 통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도 끈질기게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직업으로 택할 수 있는 일은 안마사 정도밖에 없어요. 물론 좋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서 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제한돼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싶기도 하고요.”

연주를 하다 실수로 다른 건반을 쳤을 때는 당황스럽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2007년 음악 전공과를 졸업할 무렵 지도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는 바람에 큰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모든 게 멈춰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동안 선생님이 동작 하나하나 세세하게 지도해주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했지요.”

그 후 2년 동안 그는 방황했다. 그럼에도 손에서 말렛(마림바에서 사용하는 고무나 천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스틱)을 놓을 수 없었고, ‘이제 한번 자립해보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대학 편입을 생각했다.

“2009년에는 낙방했어요. 주위에서 ‘넌 아직 연주할 때가 아니야’라고 따끔하게 충고해주시는 분도 많았죠. 기본기도 많이 부족했거든요. 기초부터 다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도 선생님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으로 마림바를 연주하는 건 전경호씨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2년여의 준비 끝에 한예종 특별 전형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악보도 없이 마림바의 건반을 두드려 연주하는 그를 보며 그동안 얼마만큼 노력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연주할 때는 한 곡을 마스터하는 데 4~5개월이 걸렸는데, 지금은 2주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가 마림바 연주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은 희망이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음악, 지칠 때 편안함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이 음악을 연주한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받기보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제 연주를 들으러 와주셨으면 해요.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세계적인 음악가,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자신과 같은 마림바 연주자로 키워내는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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