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도서관 ‘책꽂이’ 운영자 장웅

책을 돌려 읽기 위해 공동 책장 만들었어요

언제부터인가 동네서점이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기 위해 대형서점에 가거나 집에서 클릭 몇 번을 할 뿐이다. 동네서점의 실종은 귀갓길에 잠시 들러 책 냄새를 맡곤 하던 낭만이 사라졌다는 것 말고도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책이 절판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팔리지 않은 책이 오래 남아 있을 동네서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불편해하던 한 인터넷서점 운영자가 있었다. 작은 인터넷서점을 운영하는 장웅씨는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절판된 책을 찾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혼자 운영하다 보니 책의 품절, 절판 여부를 재빠르게 반영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사정을 모르는 고객들은 왜 주문한 책이 절판되었냐며 항의하기 일쑤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절판된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의 생각은 ‘그 책은 누군가의 책장에는 꽂혀 있을 것’이라는 데 미쳤고, 무릎을 쳤다. 장웅씨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절판된 책을 보고 싶으면 그 책을 가진 사람이 책을 빌려주면 될 것이다. 일종의 ‘도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상한 그는 ‘국민도서관 책꽂이(이하 책꽂이)’를 개발했다.

‘책꽂이’는 회원들이 위탁한 책으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이용방식은 간단하다. 회원가입을 하고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듯 ‘책꽂이’ 검색창에서 원하는 책을 검색한 후, 책을 대여한다. 주문한 책은 택배를 통해 집으로 배송된다. 기본 대여기간은 두 달, 택배비만 내고 읽고 싶은 책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던 책을 ‘책꽂이’에 위탁하는 만큼 더 많은 책을 한 번에 빌려 볼 수 있다.

“직장인이 책을 쉽게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직장인은 평일에 도서관에 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보고 싶은 책을 다 사서 보자니, 한번 읽고 마는 책이 많아 아깝고 책을 꽂아놓을 장소도 넉넉지 않아 고민스럽죠. 공동서가를 만들어 서로 산 책을 돌려 읽으면 각자 따로 공간을 마련할 필요 없이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죠.”

‘책꽂이’를 오픈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2월 초 현재, 회원 수 300명 정도이지만 보유 장서가 1만권이 넘는다. 회원들의 열정 넘치는 위탁 릴레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장웅씨가 2000권 넘게 위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웅씨는 책과 인연이 깊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딱히 책을 읽지 않았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했고, 연세대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공대생 특유의 이미지가 싫었다고 한다.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서 ‘공대생’ 하면 딱 떠올리는 이미지 있잖아요. 책 잘 안 보고, 상식 부족하고, 계산만 잘하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저 역시 부족한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시작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공대생이었지만 인문사회 계열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며 책 읽는 모임에 들락날락했다. 신촌 일대 대학교수들이 모여 조직한 ‘작은 대학’이라는 모임에 들어가 인문사회과학 계열 고전도 탐독했다. 빡빡한 공대 학사일정에도 시간을 쪼개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어나간 그는 이상하게도 그 ‘재미없는’ 고전들이 잘 읽혔다고 한다.

“숫자나 계산보다 글이랑 더 친했나 봐요(웃음). 취업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도 성적은 안 좋지만, 인문학적 지식 덕에 면접관들이 좋아했어요. 그래서 면접에선 항상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건설회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와 공부할 때였다. 책을 많이 읽고 싶었지만 학생 신분에 도서 구입에 큰돈을 쓰기 어려웠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 전공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이용했던 아마존에서 힌트를 얻어 공짜로 책을 얻는 ‘꼼수’를 생각했다. 도서소개 사이트를 만들어 출판사에 홍보 목적으로 책을 받기로 한 것이다. 1996년, 신간도서들을 읽고 간단한 내용과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신간도서 웹진 다빈치’가 만들어졌다. 이 웹사이트는 나중에 국내 인터넷서점의 맹주 ‘예스24’로 발전한다. 다빈치가 예스24로 바뀌기 직전 손을 뗐지만, 장웅씨는 국내 인터넷서점의 산파역 중 하나였던 것이다. 다빈치의 성공으로 당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준비하던 삼성물산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여기서도 그의 독서 습관은 빛을 발했다.

“그때 사카모토 료마에 관심이 있어 여러 책을 읽고 있었는데, 마침 면접관 중에 한 분이 료마 팬이었던 거예요. 료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 물어볼 것도 없다면서 뽑아주시더라고요.(웃음)”


삼성물산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인터넷 쇼핑 서비스가 시행착오를 겪던 시대라 맡은 업무에 착오가 생기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잠시 낭인생활을 하던 중, 교보문고에서 연락이 왔다. 책으로 얽힌 또 하나의 인연이다.

“삼성에서 일할 때, 교보문고에서 사장 공모를 낸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책도 좋아하고 하니, 겁도 없이 사장을 해보겠다고 지원했죠. 물론 떨어졌지만, 그때 저를 좋게 봐주셨던 분이 나중에 교보문고 사장이 되셨더라고요. 교보문고 사이트 개편 작업에 절 불러주셨어요.”

인터넷 교보문고 리뉴얼 작업에 기획자로 참여하면서 최연소 부장 타이틀을 달았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가진 못했다. 스스로 인터넷서점을 운영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교보문고를 나와 ISBNShop.com이라는 인터넷서점을 만들었다. 이것이 장웅씨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던 그 문제의 인터넷서점이다.

“출판업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요. 일단 책이 잘 안 팔리고, 작은 서점도 사라지다보니 절판 속도도 빨라졌죠. 요즘은 블로그를 통해 책이 자연스럽게 홍보되기도 하는데, 그 책을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출판업계에서 ‘책꽂이’가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꽂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 존재 가치는 확실히 증명해가고 있다. 마케팅 분야 베스트셀러 《총각네 야채가게》를 집필한 김영한 교수가 제주도로 이사하면서 집에 쌓인 책을 무상으로 보내겠다는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장웅씨는 바로 연락해서 김영한 교수의 책 536권을 ‘책꽂이’에 가져왔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ISBNShop.com으로 문의가 왔어요. 절판된 《역발상 투자의 법칙》이라는 책을 찾는데, 혹시 구할 수 없냐고. 그래서 ISBNShop.com에는 없지만, ‘책꽂이’에는 있으니 빌려 가시라고 말씀드렸죠. 저도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책꽂이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한 날이었죠.”

장웅씨는 한국 인터넷서점계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당연하고 일상의 일부가 된 현재 인터넷서점은 그와 같은 이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발전해왔다. ‘책꽂이’도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다. 걸음마 단계지만, 새로운 방식이기에 장웅씨는 설렌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는 스스로를 패스파인더(Pathfinder)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없던 길을 뚫고 가는 사람이죠. 아쉽게도 뒤로 붙어주는 사람은 몇 없어서 외로울 때도 있지만요(웃음). ‘책꽂이’도 새 길을 찾는 과정에 있습니다. 저를 이렇게 다시 설명할 수 있겠네요. 언제나 새 길을 찾는 도서관장.”

사진 : 김선아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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