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단독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책 펴낸 윤태근

“도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요트 한 척을 몰고 세계 일주를 떠나는 일. 지난해 6월 윤태근(50)씨는 장장 605일 동안 28개국 100여 곳의 도시에 머무르며 인도양과 대서양, 태평양을 건넜다. 그는 오랜 기간 키워온 꿈,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다녀왔다. 총 항해 거리는 5만7400km로,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조금 더 남는 거리다.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그의 다음 행선지는 알래스카다.
“꼼꼼하고 완벽한 사람은 세계 일주 못하지요. 이것도 챙기고 저것도 챙기고 확인한 것 또 확인하느라 떠날 수가 없다니까요(웃음).”

마산역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위치한 구복요트장에서 윤태근씨를 만났다. 이곳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요트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새끼 진돗개가 꼬리를 흔들고, 사무실로 사용 중인 컨테이너 박스 몇 채가 바다를 바라보며 놓여 있다. 바다 가까이에는 크고 작은 요트와 작은 나무배 몇 척이 놓여 있다.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서너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무인도도 많다. 그는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높지 않은 것이 구포의 특징이다. 요트를 타기에 좋은 조건이다”며 부산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에는 소방관으로 일했어요. 사람 돕는 일이라 자부심도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요트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는 7년 동안 소방관으로 일했고, 그 후 요트 딜리버리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요트 딜리버리는 말 그대로 요트를 운반하는 일. 요트를 바다 건너 목적지까지 직접 운항해 가져가는 일이다.

“일본의 요트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50년은 앞서 있어요. 그만큼 중고 요트도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우리나라로 수입되고요. 지금까지 123차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요트를 가져왔어요. 제가 받는 보수는 거리에 따라 달라요. 사실 위험하기도 하죠. 중고 매물로 나온 요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운반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의 멋스러운 은발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그는 세계 일주를 함께한 ‘인트레피드 호’ 옆에 서서 “사진은 바다에 나가서 찍자. 작은 배를 타고 따라오라”며 바다에 정박 중인 요트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가 요트의 곳곳을 살펴보더니 “깨끗하지 않아서 신경 쓰인다”고 했다. 요트 겉부분에 이물질 자국이 약간 묻어 있었다. 그는 사진기자가 사진 보정 작업을 통해 그 부분을 하얗게 만들겠다고 하자 닻을 올렸다. 곳곳에 연결된 굵은 밧줄을 풀고, 요트 위의 잡다한 물건들을 치우며 시동을 걸기까지 10여 분이 걸렸다. 그가 잔잔한 구복 바다로 요트를 몰고 나간 다음, 취재진은 그의 문하생 최기섭씨의 안내를 받아 작은 배에 올라탔다. 그는 대학 휴학생으로, 요트를 배우기 위해 윤태근씨를 찾아왔다.

한국인 최초로 단독 세계 일주에 성공한 윤태근 선장.
작은 배에서 내려다본 구복의 바다는 무척 맑았다. 물고기 떼가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윤태근씨는 자유자재로 요트를 움직였다. 아름다운 구복의 바다와 작은 섬들을 배경으로 그의 요트가 유유히 흘러갔다. 잠시 후 그는 “이리로 올라오라”며 취재진을 그가 탄 요트로 갈아타게 했다.

“요트는 불침선이에요. 가라앉지 않아요. 여기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자유죠.”


아내와 함께 세계 일주 떠나는 것이 다음 목표

나무로 만든 요트의 키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그가 요트 키를 순식간에 기자에게 쥐여주었다. 요트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며 요트 키를 안팎으로 계속 움직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얼결에 요트 키를 잡은 채 그가 지난해 성공한 세계 일주 얘기를 들었다. 장장 605일간 28개국 100여 곳을 다녀온 그의 항해는 한국인 최초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는 “외국에는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이 흔하다”고 했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로 한 날이 제 생일 전날이더라고요. 가족들과 미리 생일 파티를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많았죠. 아들이 셋인데, 모든 짐을 아내에게 지우고 가는 것만 같아서요. 세계 일주를 하는 동안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이 가족, 특히 아내였어요. 고마운 사람이죠.”

윤태근 선장이 세계 일주 항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위스키에 직접 건진 빙하를 녹여 마신 일이다.
그는 2009년 10월 11일 인트레피드 호를 타고 부산에서 일본・대만・홍콩을 거쳐 인도양을 건넜다. 또 해적들이 출몰해 위험했던 소말리아 해협과 홍해, 수에즈운하, 지중해, 지브롤터 해협, 대서양, 남아메리카 최남단을 돌아 태평양을 항해했다. 이는 그가 요트 딜리버리로 일하며 갖게 된 꿈으로, 7년 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일이었다. 세계 일주는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요트를 마련하는 등 세계 일주에 필요한 비용에 가족의 생활비를 합해 총 2억여원이 들었다. 그는 “가족의 생활비 문제만 해결된다면, 요트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여행가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가장 오랫동안 바다에 머문 기간은 39일이에요. 중간에 타히티의 작은 부두에 정박해 부품을 수리한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바다에 있었어요. 김치와 된장 덕을 톡톡히 봤죠. 한국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 김치에 된장찌개를 먹으면 든든하게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는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에 90일간 우리나라의 섬들을 항해했고, 업무상 123차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항해한 경력이 있다. “특별히 위험한 일이나 아픈 적은 없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며 신나했다.

“3달러 주고 산 위스키에 빙하를 녹여 마셨어요. 태어나서 마셔본 술 중 최고였어요. 낚시도 많이 했는데, 참치를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 것도 별미예요. 참치를 동그랗게 잘라 겉은 바싹 익히고 속은 살짝 덜 익혀 먹는 거죠.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빵이나 찬밥으로 끼니를 해결했고요. 제가 웬만한 요리사보다는 실력이 나을 겁니다.”

그는 세계 일주를 하면서 먼 타지에 사는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정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먹을거리 정보 등을 얻기도 하고, 세계 일주를 하는 중간중간 동포를 만난다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 그는 “30년 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분인데,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하고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니 그분은 위독한 상태였고, 결국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일을 돕고 왔다”며 세계 일주 중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항해기록을 바탕으로 세계 일주의 생생한 기록을 담아 《꿈의 돛을 펼쳐라》 《요트로 세계일주 뱃길을 열다》 《윤 선장, 한국 전역의 섬을 항해하고 요트 뱃길 지도를 그리다》 등을 펴냈다. 그는 “요트 항해술에 대한 입문서를 준비 중이다. 추억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남기는 일도 요트 항해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요트로 항해할 때는 그저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 느껴집니다. 제 요트 옆을 지나다니는 돌고래와 같은 하나의 생명체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전하면 할수록 또 하고 싶어져요. 다음 항해는 아내와 함께 알래스카로 떠날 계획인데, 꼭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요트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취재진이 탄 요트는 구복 앞바다를 돌고 돌아 다시 구복요트장으로 왔다. 그는 ‘끙끙’ ‘헉헉’ 소리를 내며 굵은 밧줄을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그는 “평소에 운동할 필요가 없다. 요트를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체력이 좋아진다”며 닻을 내렸다. 요트를 정박하는 데는 출발할 때만큼이나 시간이 걸렸다. 그는 땅 위에 세워둔 인트레피드 호 옆에서 밝게 웃었다.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를 미지의 세계를 함께 갈 든든한 동반자를 격려하듯.

사진 : 하지영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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