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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 황안나

65세에 시작한 도보여행에서 내 삶의 길을 다시 찾았습니다

임진각에서 땅끝마을 해남까지 23일 동안 국토 종단, 110일간 4000여km에 달하는 우리나라 해안 일주, 네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까지 타박타박 걸어서 발자취를 넓혀가고 있는 도보여행가 황안나씨. 그는 올해로 일흔 셋을 맞는다. 쉰 살에 운전면허를 따고, 환갑이 넘어 암벽등반과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50대 중반에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하루에도 1만 명 이상 다녀가는 인기 블로그이며, 강연 섭외가 줄을 잇는 강연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칠순을 넘겨서도 아름다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4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65세인 정년을 8년 앞두었을 때, 그는 아이들의 학예회 지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 불쑥 ‘이제 곧 60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즐겁게 가르쳐왔지만 ‘이제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망설일 시간이 없어 조기 퇴직했어요.”

퇴직 후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라틴댄스를 배우고 새벽마다 동네 근처 산을 오르다 산악회에도 가입했다. 산악회를 따라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을 거의 다 올랐다.

“그러다 한비야씨가 국토 종단을 한 후 쓴 책을 읽고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걷기 시작했어요. 65세에 혼자 나선 길이었는데, 처음에는 무서워서 앞만 보고 걸었어요. ‘누가 말려줬으면’ 싶을 정도로 무서웠지만, 그러면서도 걷겠다는 열망이 더 커졌으니 신기한 일이었죠.”

23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종착지인 통일각에 들어섰을 때는 더 이상 나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철조망 너머 넘실대는 파도를 보다 ‘다음번엔 해안일주를 해야지’ 결심했다. 동해에서 서해로, 해안선을 따라 완도・보길도・임자도・강화도 등 섬을 포함해 4000여km에 달하는 거리를 총 110일 동안 걸었다. 그에게 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결혼 전에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결혼 후에는 남편의 빚을 갚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냉골에 살면서 끼니를 걱정하기도 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빚에 시달리던 40대의 어느 날, 그는 죽을 결심으로 바다에 갔다.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던 그는 가족의 얼굴과 옛 추억들을 떠올리고는 ‘지금의 힘겨운 시간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가족이 힘을 합해 노력했고, 27년 만에 모든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는 도보여행을 하면서 힘겨운 시절 받았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몸으로 고생한 기억은 다 잊었지만, 어려울 때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몇 십 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온 종일 혼자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저도 남에게 상처를 많이 입혔더라고요. 길 위의 고해성사라고나 할까. 길 위에서 용서도 빌었고, 제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어요.”

해안 길을 일주하면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황안나씨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흔히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는데, 찾아보면 길은 반드시 있다”고 말한다. 해안 일주를 하는 동안 그는 매일 30~40km씩 쉬지 않고 걸었다. 아침엔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때웠고, 날이 저물어도 잘 곳을 찾지 못하면 밤새 걷기도 했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던 여행길에서 고마운 인연도 많이 만났다.


“세상이 무섭다고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아요. 처음 보는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일부러 길을 돌아 안내해주고.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며 아픈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털어놔요. 그들의 삶을 들으면서 제가 더 풍요로워졌죠.”

전남 구시포 해수욕장의 한 식당에서 만났던, 간암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는 분이 여비로 5만원을 주고 간 일, 거친 용모의 트럭 운전사가 창밖으로 간식 봉지를 던져준 일,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재워준 사람 등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는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그는 또 글로 남긴다.

어릴 적 작가를 꿈꾸었던 그는 자신의 도보여행을 담은 책 《내 나이가 어때서?》와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엮은 《안나의 생활비법》을 출간하면서 그 꿈도 이뤘다.


“꼭 한 번 걷고 싶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2007년 큰아들 내외와 걸었어요. 그 길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나이 든 분들이 많았어요. 손잡고 걷는 노부부도 많이 봤죠. 그곳에서는 그게 특별할 게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단한 뉴스가 돼요. 인생에서 가장 지혜로운 때가 노년인 것 같아요. 퇴직 후 20년 가까이를 멍하니 보내는 것은 아깝죠. 제가 유명해진 것은 할머니가 혼자서 국토 종단을 하고 해안 일주를 했기 때문인데, 그런 면에서 저는 나이 덕을 본 셈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누구나 바라면서도 두려워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과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실패가 두렵고,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는 실패하더라도 일단 하고 봐요. 가능성이 없을 것 같던 일도 일단 시작하고 보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저보고 용감하고 결단성 있다고들 하는데, 전 아주 내성적이에요. 저는 이제 망설일 시간이 없잖아요. 뭘 더 이리 재고 저리 재고 하겠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은 건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기려 하죠. 남은 날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꿈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그는 “이 나이에 무슨 꿈을 갖나 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나이를 먹었으니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지만, 누워서 아픔을 느끼느니 일단 걷고 보겠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한다. 고관절로 척추가 내려앉아 허리가 아프지만 도보를 통해 이겨내고 있다고 한다.

“첫 한 걸음이 중요해요. 그렇게 걸음걸음이 이어졌을 뿐이에요.”


그는 노후를 그저 ‘견디는 삶’이 아니라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해 카메라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사진을 잘 찍지도 못하면서 카메라만 좋은 것을 장만해 부끄러워요(웃음).”

아들이 캐논 5d를 사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처음 배우는 것이라 어렵다고 한다. 요즘은 사진 촬영 강의를 듣기 위해 매주 화요일 왕복 6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춘천까지 왕복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밝은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생활하려 한다는 그는 “황혼의 나이에도 삶은 언제나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저는 꿈꾸는 게 많아요. 사막에서 별도 봐야 하고, 휴전선 따라 걷기도 남았어요. 2012년 3월부터 해안 일주를 다시 시작하고, 우리 부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엮는 일 등 계획이 많아요.”

살아 있는 한 배낭을 메고 낯선 길로 다닐 꿈을 계속 꿀 것 같다면서, 우리 땅 그리고 지구 구석구석을 더 많이 누비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엔 열정이 넘쳤다.

사진 : 이환수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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