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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아이들에게 사진 가르치는 사진작가 고현주

카메라 렌즈 통해 희망의 빛을 봤으면 좋겠어요

“2009년 1월 12일 오후 3시 창원지방법원에서 10호 처분을 받고 안양소년원에 오게 되었다.
현실이 죽도록 싫었고, 무심한 하나님이 미웠다.
낯선 사람들, 텁텁하게 막혀버린 공간…
그리고 뒤늦은 후회는 나에게 세상 살며 최대의 실수였다.
곁에 부모님도, 친구들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 안양소년원 학생의 사진일기 중
흔히 10대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한다.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위치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소외감, 외로움, 극단적인 혼돈의 감정을 경험하며 현실과 자아의 갈등을 겪는다.

이 시기를 극단적으로 보내는 10대들이 있다. 폭력과 절도, 성범죄 등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소년원에서 지낸다. 막힌 공간에서 힘겨운 10대를 보내고 있는 소년원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여주고 희망을 바라보도록 이끄는 이가 있다. 사진작가 고현주씨다. 그는 경기도 안양소년원(현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4년째 사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했던 그는 교직생활 6년 만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와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작가로서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주변의 인정을 받았고, 미술관에도 작품이 팔렸다. 두 번의 전시회를 마치자 욕심이 커졌다. 하지만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면서도 정체성에 혼돈이 왔다. ‘이게 과연 나를 위한 것인가, 인정받기 위한 작업인가.’ 작가로서 회의감이 짙어졌을 때 소년원을 찾게 됐다.

“‘공간’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었어요. 국가 권력 공간을 찍었는데 권력 구도를 잘 보여주는 보호시설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인에게 안양소년원을 소개 받았어요. 그곳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을 때 사진을 찍는 것보다 사진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2008년 봄, 안양소년원에서의 수업 첫날, 그는 사진교육 프로그램에 맞춰 이론과 기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10분도 안 돼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기존의 교육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프로그램을 완전히 바꾸었다. 두 번째 수업 시간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질문지를 들고 갔다. ‘지금껏 들은 말 중 가장 기분 좋았던 말’ ‘가장 가슴 아팠던 말’ 등을 글로 쓰게 했다. 학생들이 깊은 상처를 드러내야 사진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눈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내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를 찾아가도록 유도했다.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가만가만 그네들이 하는 대로 놔두었다. 수업은 10명 내외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노트를 주고 사진일기를 쓰도록 했는데,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쓰던 학생들도 점점 사진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아이들이 사진을 잘 찍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가슴을 열고 마음을 내밀었을 때 알았어요. 사진은 잘 찍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수업 시간에 유독 겉도는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그 아이가 걸으면 따라 걷고, 그 아이가 앉으면 따라 앉고, 그 아이가 웃으면 따라 웃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샘! 저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는 건 없어. 용기가 없을 뿐이지.” “근데 샘! 저는 운동선수였어요. 공부도 잘했어요.”

그 학생은 눈물을 글썽이며 맘속 깊이 고여 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상처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는 자기 말을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필요했나 봐요.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으면서 얘기를 꺼내더군요. 어떤 친구는 자기가 법원에서 판결을 받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울었어요.”


아이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서서히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처를 드러내며 치유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11년 10월에는 소년원 학생 10명과 함께 제주도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 소년원을 벗어나 멀리 나온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이들을 비행기에 태운 것은 안양소년원 사상 처음이었다. 삼성전자로부터 카메라 20대도 지원받았다. 하지만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소년원 학생이라는 것을 안 항공사에서 발권을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탑승을 허락받아 제주도로 떠날 수 있었다. 2박3일간 제주에 머물며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주제로 포토 에세이 작업을 했다. 마지막 날은 함께 모여 발표 시간을 가졌는데, 그중 한 학생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는 현무암을 보며 쓴 글이다.

“상처받다 보니까, 수없이 받다 보니까 구멍 사이에 수많은 구멍이 생겨버렸어. 언제쯤 이 상처들이 메워질 수 있을까?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아, 아파. 이 세균 같은 상처 같으니라고. 근데 이 상처를 낸 주인공이 아빠라서 너무 힘들고 짜증나.”

소년원 학생들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 등 주변인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소년원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결손가정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관심 밖의 세상에서 살아온 친구들이에요.”


그는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책자로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다. 2009년 12월 소년원에서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과천 법무부 청사와 국회에서 전시했다. 그동안 수업에 참여했던 20명의 학생이 100여 점의 작품을 걸었다. 난생처음 자기 이름을 내건 사진전을 열면서 아이들은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가졌다. 2012년 1월 3일에는 신사동 캐논플렉스에서도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을 더 배우고 싶다는 애들이 생겼어요. 아이들에게 희망의 싹이 자란다는 증거죠. 그 싹을 틔운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요즘 그는 소년원 수업 이외에도 ‘시소(SEESAW)’라는 이름의 청소년 지원센터를 준비 중이다. 전국에 있는 소년원, 보호관찰소에 수감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진과 영화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들에게는 재교육의 기회를 주고 작가의 소양이 있는 아이는 1대 1 후원자를 연결해주는 사업을 할 계획이다.

“사진은 소통이에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죠. 저는 이 친구들이 사진을 잘 찍기를 원하지 않아요. 대신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마음이 잘 번졌으면 좋겠어요.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꽃을 피우게 했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 : 고현주
시소 후원 문의 : 02-568-6198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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