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태석상 수상한 아프리카 의료선교사 이재훈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제가 병을 고쳐준다고 무당이라 불러요

수단 남부 오지의 톤즈 마을에서 봉사활동 중 2010년 1월 영면한 고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기 위해 외교통상부가 제정한 ‘이태석상’의 첫 번째 수상자. 외과 전문의 이재훈(44)씨는 현재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에서 ‘외국 무당’ ‘부시맨 닥터’ ‘도끼 닥터’ 등으로 불리며 7년째 의료선교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의사로 살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의료선교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열두 살 때부터 오직 의료선교사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길을 걸었다. 태어나 의사를 처음 본 마다가스카르 사람들과 삶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함께 지내고픈 그의 마음은 아직도 뜨겁다.
이재훈씨는 ‘이태석상’ 수상을 위해 2011년 11월 말 1주일 일정으로 서울을 찾았다. 기자는 아프리카 남동쪽의 큰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7년 째 의료선교사로 지내는 그의 사연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참석하느라 인터뷰하기 어렵겠다며 미안해했다. 못내 아쉬워하자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른 아침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이렇게 성사된 그와의 만남은 해가 뜨지 않아 캄캄했던 오전 6시 30분, 서울 압구정동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이뤄졌다. 그의 인상은 푸근했다. 마치 인심 좋은 동네 가게의 주인 아저씨 같았다.

“저는 의료선교사입니다. 의사이기도 하지만, 선교사이기도 하거든요.”

그가 처음 꺼낸 말은 자신을 의료선교사로 소개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고려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전공·전임의 과정을 마친 외과 전문의다. 언론에 소개될 때마다 자신이 의료선교사가 아닌 의사로만 소개되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더욱 제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열두 살 때부터 키워온 꿈입니다. 미지의 곳에서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외과 의사가 된 것도 이러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였고요. 의료 혜택이 절실한 오지에서 외과 의사는 여러모로 유용하거든요(웃음).”

그의 경력 중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하나만 선택하는 전임의의 세부 분야가 무려 5개라는 점이다. 그는 “전임의 과정 중 병원 측에 양해를 구해 위장, 간, 대장, 갑상선, 소아외과를 돌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일이 되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병을 낫게 해주니 무당은 무당인데, 생김새는 낯선 외국인인 겁니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에게 외국인 무당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가 준 약을 먹고, 또 수술을 받고 아픈 곳이 사라졌으니까요. 마다가스카르는 병이 나면 무당을 찾아가는 문화가 지배적인 곳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무당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2006년부터 마다가스카르 이톨로시 병원 외과에서 근무 중이다. 아프리카에 가기까지 그는 영국에서 2년간 신학을 공부했고, 선교사 가족을 위해 영어교육을 해주는 공동체 생활도 했다. 그는 케냐에서 의료선교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마다가스카르에 외과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터전을 잡았다.

“가장 마음에 걸린 것은 세 아들의 교육이었어요.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데, 제 아들들은 영어를 쓰는 국제학교에 다녀야 했어요. 그런데 학비가 엄청 비싸서 할 수 없이 중학생이 된 첫째와 둘째는 케냐의 수도에 있는 국제학교로 유학을 보냈어요. 막내는 초등학생인데, 중학생이 되면 형들 따라 보내야죠. 한국에 살았다면 공부에 치여 살았을 텐데… 자연에서 뛰놀며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는 뿌듯하기도 해요.”


바오바브나무 숲에서 원주민 치료하며 평생 보내고 싶다

마다가시는 마다가스카르의 원주민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마다가시를 배우는 데 집중했다. 의료선교사로 현지 사람들의 문화부터 익히기 위해서였다.

“무릎이 다 보일 정도로 낡은 옷을 입고 초라해보였지만,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했습니다. 성에 대한 문화적 관습 때문에 일종의 성병이 가장 흔하고요. 간단히 약만 먹어도 쉽게 낫는 정도가 대부분이에요. 따라서 여자들은 앓던 병이 나으면 자연스레 임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고요. 그래서 한 오지의 원주민들은 제가 임신을 돕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에요. 임신하는 약을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적지 않았어요.”

그는 마다가스카르의 여러 오지를 찾아다니며 진료를 한다. 트럭을 타고 때로는 헬기를 타기도 한다. 바오바브나무 숲에서 수술할 때도 있고, 들판에서 환자를 볼 때도 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에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진료를 위해 마을을 찾으면 닭이나 양을 잡아서 잔치를 열어준다”고 했다. 특히 그는 돈을 비싸게 받는 무당과 달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원 정도의 진료비를 받기에 무척 인기가 좋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진료했지만, 공짜라면 너도 나도 몰려드는 습성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원주민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제가 누가 보내서 온 사람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보내서 온 것도 아니라고 하니, 답답했던 거죠. 저는 ‘자나하리가 보내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마다가시로 자나하리는 ‘창조주’라는 뜻인데, 그들의 신화에도 존재하는 신이거든요. 그들이 처음 제 대답을 듣더니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더라고요. 자나하리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잘못으로 오래전 떠났다고 전해지는 신 중의 신이거든요. 한마디로 가장 센 신이 보내서 왔다고 이해한 겁니다(웃음).”

현재 그는 막내 아들, 아내와 함께 마다가스카르에서 지내고 있다. 어떤 집에서 사는지 물었더니 “잔디가 깔려 있는 멋있는 집입니다”라며 웃는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에 다녀온 후로 다른 의사와 저를 비교하기 시작했어요. 제 동기 의사들의 화려한 병원이나 집에 가보고는 ‘이제 아빠도 한국에서 돈을 벌라’는 이야기도 나왔죠”라며 껄껄댔다. 하지만 그는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집니다. 무척 덥기는 하지만 낙원으로 알려진 섬인 만큼 무척 환상적이거든요. 또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사는 대신 천천히 살 수 있는 곳이에요.”


그는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의대생은 많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그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배우자의 반대가 가장 흔한 이유라고 했다.

“의료선교사로 일하다가 죽더라도 제 일을 책임지고 이어갈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아내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일을 전적으로 돕는 아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사실 이번 상은 제 아내가 받든지 아니면 저를 돕는 스태프가 받아야 했어요. 의료선교에서 제 역할은 일부분에 불과하거든요. 진료를 하러 나갈 때는 스태프가 저를 편히 차로 데려다줍니다. 도착할 때까지 저는 하는 일이 없고요. 도착한 후에는 스태프가 텐트를 치고 진료소를 꾸려서 환자를 데려오고요. 저는 가만히 앉아서 진료만 해요. 의료선교는 다른 분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그를 찾는 축하 전화는 심심치 않게 걸려왔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가능한 한 오래도록 마다가스카르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무당이라고 불려도 좋고, 창조주가 보낸 사람이라고 불려도 관계없지요. 아픈 사람들 치료해주고 달래주는 일만큼 제게 값진 일은 없으니까요.”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밀알복지재단
장소협찬 : 붐 성형외과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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