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만화방’ 운영하는 만화가 부부 김홍모・임소희

추억의 만화책 보러 오세요

19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보물섬〉 〈르네상스〉 같은 잡지가 익숙할 것이다. 만화책 보는 것이 왠지 당당하지 못하던 그 시절, 부모님 눈을 피해 만화 잡지를 열독하던 추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2011년 8월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뜬금없이 만화방’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1970년대 만화부터 최신 그래픽노블(만화의 한 형태로, 소설처럼 길고 복잡한 스토리를 가졌다)까지 하루 3000원이면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만화방이다.
“이야! 이거 다 옛날에 내가 보던 것들인데.”

30대 후반의 한 남성이 ‘뜬금없이 만화방’의 책장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만화방 주인 부부에게 이용료와 만화책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그의 얼굴엔 아이 같은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한참을 서성이던 그는 만화책을 넘겨보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문을 나섰다. 만화방 주인 부부는 저런 손님들이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뜬금없이 만화방’은 만화가 김홍모 작가와 임소희 작가 부부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에서 작업실로 내준 공간을 만화방 콘셉트로 꾸며, 부부 작가의 오픈 작업실 겸 만화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만화방 아이디어는 김홍모 작가에게서 나왔다.

“만화가가 오픈된 작업실을 갖는 경우는 없었는데,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것이 만화방이었어요. 마치 붕어빵에 진짜 붕어가 든 것같이 만화방에 진짜 만화가가 있는 거죠.”(김홍모)


‘뜬금없이 만화방’의 특징은 1980년대 만화나 절판된 만화책 등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옛날 만화책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뜬금없이 만화방’의 책장에는 너덜너덜한 1980년대 만화책, 찾기도 힘든 해적판 만화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어린이 만화가 제일 흥했던 시기가 1980년대였어요. 저도 1980년대 〈보물섬〉 세대여서 그 시절 추억이 많아요. 제 또래 친구들도 그 시절 만화에 대한 향수가 많은데,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만화책을 보며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옛날 만화를 구했어요.”(김홍모)

“요즘은 사람들이 웹툰을 많이 보는데, 집에서 가족들도 따로따로 컴퓨터로 보더라고요. 여기서 같이 살 맞대고 만화책을 보면 부모나 아이들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만화책을 매개로 가족들이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임소희)

옛날 만화들만큼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어린이 창작만화들이다. 아이들이 편하게 만화를 볼 수 있도록 책상뿐만 아니라 마치 시골집 안방같이 노란 장판이 깔린 공간과 다락방도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눕거나 엎드려서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요즘 만화책도 구비되어 있다. 안락한 소파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젊은 연인들이 만화책을 쌓아놓고 데이트하기 딱 좋게 꾸몄다. 또한 만화가 부부가 추천하는 일본 만화와 문학성 있는 그래픽노블들이 있어 소위 ‘만화 좀 본다’는 이들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그야말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만화 컬렉션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김홍모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동양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만화책과 그림책을 그려왔다. 작품의 주인공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소재인 《소년탐구생활》, 80년대 모험만화의 추억을 살린 《두근두근탐험대》 등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 많다. 이것은 그가 만화키드였던 어린 시절 기억의 영향일 것이다. 김홍모 작가의 큰형은 만화가였다. 비록 이름이 알려진 만화가는 아니었지만, 큰형 덕분에 어릴 때부터 집에 만화책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는 만화책 틈에서 자라는 동안 자연스럽게 만화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만화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형이 말렸지만, 만화가 너무 좋았던 김홍모 작가의 결심은 꺾이지 않았다.


임소희 작가도 어려서부터 만화책에 빠져 있었다. 당시에는 해적판으로 보았던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와 순정만화를 섭렵하면서 만화가를 꿈꾼 그는 집안의 강한 반대에도 만화책의 위로를 받으며 꿋꿋이 만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두 작가는 당연히 만화를 그리다 만났을 것 같지만, 실은 전혀 서로 만화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만났다고 한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다가 거리에서 만났는데, 서로 미대 다니는지도 몰랐어요.” (김홍모)

“저는 이 사람이 공대나 체대생인 줄 알았어요. 생긴 게 미대생 같지 않아서요(웃음).” (임소희)

“어느 날 회의하러 갔는데, 임 작가가 학교신문에 만화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만화가 지망생이니까 나중에 같이 작업하자고 말을 ‘툭’ 던졌죠. 학생운동이 끝나고 기억이 나서 물어물어 연락을 했죠.” (김홍모)

“그때 지나가는 투로 작업하자더니, 다른 ‘작업’을 하려는 거였어요(웃음). 같이 만화를 하다가 연애도 하게 된 거죠.” (임소희)


김 작가는 “사실 처음부터 그 ‘작업’이 하고 싶었다”며 웃는다. 두 작가는 숱하게 반복한 연애담이라며 죽이 척척 맞았다. 김홍모・임소희 작가는 그렇게 연애하며 만화도 그려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2인분》이라는 제목의 창작만화를 글은 임소희 작가가, 작화는 김홍모 작가가 맡아 올린 적 있고, 시사만화 사이트 ‘뉴스툰’에 같이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두 만화가는 결혼에 골인해 다섯 살짜리 딸을 두고 있다.

‘뜬금없이 만화방’의 두 주인장은 “만화방 운영이 쉽지는 않지만, 찾아주는 손님이 있어 보람차다”고 한다. 지나가다 《두근두근 탐험대》를 알아보고 들어오는 손님, 만화가가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또 가족휴가를 ‘뜬금없이 만화방’에서 보내기 위해 화순에서 올라온 가족도 기억에 남는다. 아빠는 컵라면 먹으며 옛날 만화책 삼매경이고, 아이와 엄마는 임소희 작가와 함께 코바늘뜨기를 하고, 막내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그림책을 읽는 모습이 그들이 꿈꾸던 ‘뜬금없이 만화방’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순간마다 좋아하는 만화를 보듯 ‘종이 질감 꿈’을 꾸는 것 같아 만화방 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불혹이 가까운 이들 만화가 부부에게 만화는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다. 어린 시절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 킥킥대며 보던 기억, 입시 때문에 괴로워하다 만화책 한 번 보고 다시 의지를 다지던 기억,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만화책 주인공들에게 위로받던 기억 속에서도 만화는 항상 그들의 친구였다. 김홍모 작가와 임소희 작가는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화를 보고, 만화를 그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요.”

사진 : 김선아
  • 2012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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