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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장 홍성욱 교수

소외된 90%를 위한 ‘따뜻한 기술’의 전도사

각종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향연에 수시로 눈이 번쩍 뜨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 이 세련되고 똑똑한 기계들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의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90%의 사람에게는 스마트폰보다 당장 냇가의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정수기, 식량을 익히고 조리할 수 있는 땔감을 만드는 공정, 오늘 마실 물을 좀더 편리하게 길어 올 수 있는 물통이 더 필요하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이처럼 현대의 과학기술이 구매력 있는 상위 10%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현실에서 소외된 90%를 생각하자는 기술이다.

“적정기술은 단순한 기술이라기보다 하나의 가치관과 세계관, 철학에 가깝습니다. 사용자의 역량을 개발함으로써 좀더 지속가능하게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술이죠.”

한밭대학교 홍성욱 교수는 적정기술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국내에 적정기술을 도입해 연구와 확산에 힘써온 국내 적정기술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가 적정기술에 대해 처음 안 것은 2007년 미국 뉴욕의 쿠퍼휴잇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린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 전시회를 통해서였다. 1970년대 시작된 적정기술이 2000년대 전 세계적인 빈곤과 환경 문제를 위한 대안으로 새롭게 조명됐고, 세계 각국의 적정기술 제품이 모인 이 전시회는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홍성욱 교수는 이때 적정기술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적정기술은 말 그대로 현지의 상황과 사용자에게 ‘적합’한 기술이다. 적정기술의 개념은 1960년대 중반 독일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슈마허에 따르면 적정기술은 대량생산 기술과는 반대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대중에 의한 생산기술’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비교적 단순한 기술로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소득을 올리고, 해당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홍 교수가 연구에 참여해 만든 친환경 숯.
대표적인 적정기술 제품 중 하나인 ‘라이프 스트로(Life Straw)’는 오염된 물을 즉석에서 정수해 마실 수 있는 휴대용 정수기다. 매년 가나와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수인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전기도 없고,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 지역에서 ‘라이프 스트로’는 그들의 상황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가장 필요하고, 또 오늘 당장 사용할 수 있다. ‘큐(Q) 드럼’은 도넛 모양의 물통에 줄을 달아 굴릴 수 있게 만든 ‘구르는 물통’이다. 매일 직접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지의 아이들이 쉽고 빠르게 많은 양의 물을 운반할 수 있다.

물을 길어 오는 시간을 절약하게 된 아이들은 남는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다. ‘오늘’만 바라보던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내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적정기술을 국내에 도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홍성욱 교수는 가장 먼저 이공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적정기술 아카데미를 열었다. 2008년만 해도 국내에서는 적정기술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었기에 그는 미국 MIT에서 열린 적정기술 워크숍 IDDS(International Development Design Summit)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적정기술에 뜻이 있는 과학자들과 한동대학교 교수 몇몇도 힘을 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공학설계 아카데미’는 학생들에게 적정기술의 의미와 철학, 일반적인 공학설계 과정을 집중적으로 교육한 후 그들이 멘토 교수와 함께 실제 제품을 고안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첫 회에만 80여 명의 학생이 모였고 그중 일부는 2009년 개최한 1회 ‘소외된 90%를 위한 창의적 공학설계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09년 6월에는 한밭대학교에 적정기술연구소를 만들었고, 올해 1월에는 적정기술재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적정기술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3월에는 이공계 교수나 학생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적정기술 아카데미도 열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세 시간씩, 7주간 진행되는데, 2회 모두 정원을 채웠다.

“이분들이 귀한 분들이죠. 1기는 적정기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왔는데, 2기는 패션 디자이너부터 경력의 스펙트럼이 다양했어요.”

그는 적정기술 해외봉사단 ‘블루챌린저(Blue Challenger)’도 지도하고 있다. ‘블루챌린저’는 효성그룹과 국제개발 NGO 기아대책, 그리고 그가 대표로 있는 적정기술재단이 함께하는 대학생 봉사단이다. 지난 8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가서 전기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태양광 전지 등 현지 주민에게 꼭 필요한 적정기술 제품들을 전달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리서치도 진행했다.

홍성욱 교수가 연구에 참여해 실용화된 제품 중 하나는 친환경 숯이다. 카리브해 아이티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나무를 베어 산림이 황폐화되는 것을 보고 미국 MIT의 에이미 스미스 교수가 낸 아이디어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해 남은 찌꺼기를 드럼통에 넣고 태운 후, 식물성 접착 물질과 섞어 압축해 만들었다. 사탕수수와 접착 물질, 압축기 등 숯 제작 공정에 필요한 모든 것은 현지에서 구했다. 홍성욱 교수는 굿네이버스와 (사)나눔과 기술, 특허청과 함께 이 기술을 아프리카 차드의 환경에 맞도록 개발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사탕수수 대신 옥수숫대와 수숫대를 쓰고 압축 방식을 개선해 좀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친환경 숯은 지난해 차드에서 현지 실험을 마쳤고, 현재 굿네이버스 차드지부에서 현지 공장을 설립 중이다.

“현지인들이 ‘식량은 있는데 땔감이 없어서 밥을 못한 적도 있다’는 거예요. 숯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니 신기해하고, 고마워했어요. 한 아주머니는 눈물까지 글썽거리시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이것이 현지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적정기술을 알기 전에는 ‘소외된 90%’가 아닌 ‘구매력 있는 10%’를 위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2009년 태국에 다녀온 이후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졌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보며 ‘과연 행복이란 뭘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첨단제품을 몰라도 마냥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과연 저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사회적 출판사 ‘에딧더월드’와 함께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펴낸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을 번역·출판했다. 올해 11월에는 《소외된 90%와 함께 하는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적정기술총서’ 두 번째 책을 낸다.

“적정기술에 관심을 둔 초기에는 개발도상국을 ‘돕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하지만 결국 ‘같이’가야 한다는 걸 알았죠. 선진국은 자원을 펑펑 쓰면서 개발도상국만 적정기술을 사용하라고 하면 호소력이 없어요. 서로 차이를 좁혀가며 함께 가야죠. 아직 시작 단계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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