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버킷리스트 ② 요리연구가 박찬일

지중해 섬에서 책읽기, 히말라야에서 트레킹하기, 200년 된 위스키 마셔보기…

지중해 섬에서 사라진 존재로 사는

좀 진부하긴 하다만, 세계문학전집을 싸들고 이탈리아 지중해의 섬으로 가고 싶다. 자발적 유배라고나 할까. 휴대전화를 먼저 확 하수구에 처박고 메일도 몽땅 해지해버린다. 당분간 모든 관계망 속에서 고립된다. 필립 로스, 존 치버, 제임스 설터, 레이먼드 카버, 살만 루시디 같은 작가의 책이 한 보따리라면! 섬은 이미 콱 찍어두었다. 이탈리아에 속한 람페두사 또는 판텔레리아. 맨발로 모래를 밟다가 그대로 해풍이 밀려드는 부엌에 들어가 오일과 마늘로 파스타를 해먹고 말이다. 이런 제길, 이건 정말 꿈같구나!




히말라야 곰파의 기식자

대우주 앞에서 존재의 두려움이 밀려들 게 분명한 히말라야. 트레킹을 어지간히 좋아하니까 신발 밑창이 반쯤 닳을 만큼 걸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목한계선 밖 산중의 곰파(티벳 불교의 절)에서 늙은 중의 낡은 옷을 입고 기식할 것이다. 그들이 먹는 무미(無味)의 보리겨떡으로 혀의 호사를 고치고, 다 버리고 싶을 것이다. 끼니마다 미음이라도 끓이고 밭에서 싹을 뜯으면 쫓아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건 순전히 후지와라 신야의 책에서 읽은 대로다.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그 곰파에 ‘후지와라 흉내 금지’라고 쓰여 있을 수도 있고. 누가 이 오랜 ‘히말라야 타령’을 듣더니 이렇게 호통을 치긴 했다. “어디 강원도 절에서 묵언수행부터 한번 해보지 그래.”


참치잡이 어선의 작살수

지중해의 참치 어선을 타련다. 그 동네의 참치는 주둥이가 뾰족한 황새치가 대부분이다. 이 녀석의 힘이 얼마나 좋은지 시속 80km로 유영한다고 소문났다. 이 동네에서는 작은 배를 타고 참치를 잡는데, 청동빛 얼굴의 어부들 사이에서 나도 팔뚝을 보탤 것이다. 그물 당길 힘을 기르기 위해 지금 열심히 악력 운동 중(프로페셔널 도달 직전)이다. 그쪽의 참치는 원양어선처럼 잡는 게 아니다. 그물로 참치떼를 몰아넣고 일일이 작살로 찍어 올린다. 혹시 방문하시거든, 특별히 선상에서 참치회를 썰어드릴 수도 있겠지. 초장은 준비해 오시라.


싱글 몰트의 피트 향이 나를 부른다

변덕도 심해서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으면,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진다.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기행을 읽었더니 싱글 몰트의 피트 향이 코끝에 스치는 통에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천편일률적인 대형 회사의 블렌딩위스키와는 사뭇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게 하우스 싱글 몰트다. 그런 하우스에 들어가 무보수로 보리를 볶고 맥아를 만들고, 불을 땔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주인의 눈에 들면 200년 쯤 된 스카치를 한 잔 얻어 마실 수도 있지 않을까나. 물론, 내 출생년도와 같은 빈티지의 위스키쯤은 얼마든지 사 마실 수 있을 테고.


두부 기술자, 그 순수의 종말

이탈리아식을 하지만, 한식에 대한 본능적 욕망이 있다. 나의 유전자는 한식에 연동한다. 한식은, 유전자의 생래적 기억은 나의 불충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강릉이나 어디 산골로 가서 두부 기술자가 되고 싶다. 새벽녘 단잠을 깨우는 그 놋쇠 종을 치던 두부 장수도 좋다. 오직 정성과 일관된 순수로 만드는 진짜 두부. 갓 만든 두부는 지구상의 어떤 음식보다 나를 흡족하게 한다. 나는 그 두부를 먹을 것이다. 바다에서 길어 올린 간수, 들에서 훑어온 콩의 생태적 조합이 바로 진짜 두부다. 두부는 우리 음식에서 자고로 소중한 존재이나 가장 천대받고 있음이니, 우리는 두부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걸 다시 찾고 싶은데.

그림 : 배진성

다음 달에는 《밑줄 긋는 여자》를 쓴 성수선씨의 버킷리스트를 싣습니다.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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