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과 농촌 집짓기 프로젝트 진행하는 주대관 문화도시연구소 대표

여름마다 농촌 노인의 주거모델이 될 집을 짓습니다

매년 여름 열리는 따뜻한 준공식이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준공식이 열렸다. 문화도시연구소가 주관하는 2011 인제신남 집짓기가 끝난 것이다. 10년째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문화도시연구소의 상임대표 주대관씨를 만났다.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문화도시연구소에는 작은 간판조차 없다. 문화도시연구소는 자원봉사자 대학생들과 함께 우리나라 산골, 농촌 지역의 기초수급대상 노인들을 위한 ‘농촌형 임대주택’을 짓는다. 건축 기획, 설계부터 시공, 입주자 선정까지 모두 문화도시연구소가 담당하는 자율적 프로젝트다. 집짓기 프로젝트는 1999년 철암을 시작으로 인제・양구・서천을 거쳐 다시 인제로 돌아와 올해로 열 번째를 맞았다. 주대관 대표에게 소감을 묻자 “아직은 과정인데요. 뭘”이라며 “허허” 웃는다.

집짓기 프로젝트에서 지어온 집은 기초수급대상 노인들의 고민을 반영했다.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접근성. 공공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공동 텃밭을 두어 노인들이 직접 가꾸면서 건강도 챙기고, 텃밭 작물은 로컬푸드 형식으로 공공기관에 판매해 경제적 수익도 얻을 수 있도록 고안했다. 저에너지 시공도 중요했다. 단열에 철저히 신경 써서 연간 10만원이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만들었다. 시공비용은 비싸지만, 유지비는 확 줄인 것이다.

이런 배려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진화해온 결과다. 올해는 처음 코하우징 개념을 도입해 공동주방을 만들었다. 입주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친목도 다지고, 에너지와 음식물 낭비도 줄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농촌생활에 대한 사회학적인 고민 끝에 나왔다. 실제로 그는 트위터 계정 프로필에도 자신을 ‘사회학도 건축가’라고 소개한다. 이러한 집짓기 프로젝트는 해비타트 같은 일반 건축자원봉사와는 다르다고 주대관 대표는 말한다.

“전문가로서 할 일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전문가잖아요. 전문가하고 일반 사람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해요. 전문가는 전문 지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대안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현실성 있는 대안인지 검증하고, 사회에 받아들여지도록 제안해야 합니다. 저희 목적은 이 모델이 정부사업으로 채택되어 전국 모든 면 단위에 이런 집이 생기게 하는 거예요.”


진지하게 건축전문가의 의무를 말하는 주대관씨의 표정은 근엄한 건축가라기보다 의욕에 넘치는 젊은 청년에 가까웠다. 턱수염이 희끗희끗한 지금도 열정이 넘치는 이 건축가의 시작은 어땠을까. 그도 처음에는 예술적 디자인을 고민하는 평범한 건축가였다. 1997년 어느 날, 그의 건축관이 흔들리는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철암이라는 폐광촌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전까지 저는 미학적 자율성에 경도돼 있었어요. 예술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했는데, 제가 본 폐광촌의 건물들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폐허가 된 거예요. 이제까지 배우고, 생각하고, 사유한 것들에 한 방 맞은 거죠.”


그가 철암에서 본 것은 개집으로 변한 폐가였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황폐해지는 농촌지역을 보면서 그는 공동체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1999년 철암에서부터 폐허가 되지 않을 집을 지었다. 사람들이 오래 살 수 있는 집을 생각하며 무작정 시작했다. 1000만원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1주일이 지나자 돈이 하나도 없었다. 겁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는 낙천적으로 생각했다.

“제가 믿는 게 하나 있는데, 우리가 하자고 하면 언젠가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어디선가 돈이 생기더라고요.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참고 기다리면 또 누군가 도와주는 식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51%의 확신이면 간다’는 그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집짓기 프로젝트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예산 문제, 유지관리 문제 등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보완하고 개선해나갔다.

“직접 체험하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저의 역할이죠.”

그는 이런 책임감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올해로 열 군데, 30호의 집을 만들었다. 그의건축사무소 벽 한쪽에는 특이한 감사장이 걸려 있다. “본인은 참 열심히 일했다”는, 그가 자신에게 수여한 다소 자아도취적인 상장이었다.

“그거요? 학생들이 준 거예요. 이 프로젝트에 3주 이상 참여한 학생들에게 명예수료증을 주는데, 이번 준공식이 끝난 후 마지막에 갑자기 ‘주대관’ 하고 호명하는 거예요. 하하하, 재밌었어요.”


재치 있는 상장으로 주대관 대표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준 이들은 바로 집짓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학 전공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여름마다 모여 함께 합숙을 하며 한 달 동안 집짓기에 참여한다. 집짓기 프로젝트의 중심이 되는 인력이다. 집짓기 현장에 50명 정도가 상주하고, 통근하는 인원은 하루 150명, 연간 20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다. 학생들이 만든 온라인 클럽에는 즐겁게 일하는 현장 사진과 그들의 단란한 일상이 가득하다.

“자기들끼리 엄청나게 친해요. 뜨거운 여름에 극한을 함께 체험하니까. 이번엔 18일 중 14일 동안 비가 왔는데 그냥 비 맞으면서 작업했어요. 이러한 극한적인 상황, 고락을 함께하니까 우정이 깊어지죠. 5년 만에 다시 참가한 학생도 있었어요.”

인제군 신남리 집짓기 현장.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올여름에도 집짓기는 멈추지 않았다.
1학년 때 참여하기 시작해 집짓기 현장에서 군에 입대하고 휴가, 전역신고까지 한 학생도 있다 하니, 집짓기 프로젝트의 중독성을 알 만하다. 실제로 주대관 대표의 건축사무소 직원들은 대부분 집짓기 프로젝트 출신이다. 주대관 대표는 집짓기 프로젝트의 대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라는 단체가 있어요.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에서 재건활동을 하는 단체죠. 제가 사무실 직원들에게 이 단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집짓기 프로젝트 초창기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이미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 한국 카페(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그런 게 변화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그들이 이미 하고 있다는 것. 그런 젊은이들이 모이고 하나 둘씩 늘어나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겠죠.”

주대관씨의 여름철 집짓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다.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재밌잖아요. 때가 되면 다시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서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날 또 떨리고. 하면서 점점 지쳐가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끝나고. 또 여름이 되면 다시 돌아오고. 그런 떨림이 있는 일이 인생에 별로 없잖아요(웃음).”

사진 : 신생화
사진제공 : 문화도시연구소
주대관 대표 트위터 : @jdkahnn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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