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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버킷리스트 ① 소설가 김중혁

우주에서 작고 푸른 지구를 보고 싶어라!

이달부터 새 연재 ‘나의 버킷리스트’ 릴레이를 시작합니다. 첫 테이프는 소설가 김중혁이 끊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있나요?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이….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없어지는 것, 이 세상이 없어지는 것, 모두 함께 없어지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는, 깜깜한 공간을 생각해보곤 한다. 무섭기도 하고 평온하기도 하고, 너무 조용해서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외로울 것 같기도 한,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어떤 기분일까, 아득하겠지, 사방이 어두워서 어둠의 깊이 같은 것도 느낄 수 없는, 완전한 암흑이겠지, 그런 데서는 뭘 해야 하나, 아니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거야, 의식이라는 것도 인식이라는 것도 모두 사라질 테니 그냥 어둠 속에서 어둠을 응시하면서 존재하면 되겠지, 우주의 별처럼, 행성처럼, 항성처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하나뿐이다. 우주에서 작고 푸른 지구를 한 번 보는 일, 어둠 속에서 내가 살던 지구를 지긋이 바라보는 일, 그것뿐이다. 폼 잡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역시 그것뿐이다. (이런 비유, 우주에 적용하기엔 너무 간소하고 초라하지만) 망망대해 같은 우주에서 지구라는 작은 별을 보며 종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거기서 생각하는 종말이란 어떤 걸까. 소멸일까, 재생일까, 죽음일까, 과정일까, 그게 궁금하다.

우주에 가볼 수 없으므로(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우주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좋아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우주를 크게, 최대한 크게 확대하면 진짜 우주가 될 거라고 상상하면서, 영화를 보다 말고 괜히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주를 느낀다. 우주가 등장하는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미미 레더 감독의 〈딥 임팩트〉에 있다. 어느 날 뉴욕시만 한 크기에다(응? 안 가봐서 실감은 좀 덜 나고) 무게가 5000억t(쪼개면 1t 트럭 5000억 대에 나눠 실어야 하니까 음… 그 크기가… 도대체 상상할 수가 없네)인 혜성이 지구를 덮치는데, 미국과 소련 정부는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혜성을 폭파시킬 계획을 세운다(이런 영화 다들 아시겠지만). 아뿔싸, 했다가, 얼씨구나, 하는 영화다. 결국 해피엔딩이고, 인간은 살아남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혜성을 폭파하기 위해 우주로 나선 우주비행사 중 한 명이 사고로 눈이 멀게 되는 대목이다. 눈이 먼 우주비행사가 멍하니 누워 있는데, 캡틴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말을 건다. “책 가져왔어?” “아뇨, 전 영화 세대라서요.” “쯧쯧, 내가 《모비딕》과 《허클베리 핀》을 가져왔어. 읽어줄게. 잘 들어. 모비딕 챕터 원.” “푸하하하.”

나는 “모비딕 챕터 원”이라고 캡틴이 읽고, 눈이 먼 우주비행사가 “푸하하하” 웃는 장면이 좋다. 두 사람의 웃음이 좋다. 그래, 멍청한 일이지,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지. 우주에서, 이 망망대해에서, 인간이 쓴 책을 낭독하고 듣는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알지. 그래도 캡틴은 낭독을 시작한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 중 하나!)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것이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낭독은 계속된다. 우주 한가운데서, 그야말로 망망대해에서 《모비딕》을 읽고 듣는 장면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이거다. 우주에서 작고 푸른 지구를 한참 본 다음, 가만히 누워서 누군가 읽어주는 소설을 듣는 일.

그림 : 배진성

다음 달에는 박찬일 셰프의 버킷리스트를 싣습니다.
  •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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