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구연아버지회 편사범 회장

동화책 읽어주는 아버지들, 소외된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다

현대 가정에서 아버지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탄탄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종횡무진하는 엄마들에 밀려 아이들 교육에서도 뒷전이 된 지 오래고, 바쁜 사회생활로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의치 않다. 서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니 아이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권위만 세우기 일쑤다.

그런데 여기, 좀 다른 아버지들이 있다. 유명 동화구연대회 입상자들의 모임인 ‘동화구연아버지회’ 회원들이 그 주인공. ‘친구 같은 아빠’를 표방하는 이들은 아이들에게 자주 책을 읽어준다. 그것도 단순히 낭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1인 다역을 연기하며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간다. 깔깔깔 웃으며 동화에 푹 빠져드는 아이들을 보며 아버지들은 또 다른 결심을 했다. ‘이 재미를 내 아이들만 누리게 할 것이 아니라 소외된 아이들과도 함께 나누자’고. 모임이 만들어진 첫 해(1992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처럼 오랜 시간 봉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동화구연을 통한 나눔’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편사범 회장이 있다. 편 회장은 1991년 문화부가 후원하고 한국아동문학연구회가 주최한 제1회 전국 아버지 동화구연대회 대상 수상자. 이듬해 열린 2회 대회에서, 1회 대회 대상 수상자 자격으로 무대에 선 그는 1, 2회 대회 입상자들을 모아 ‘동화구연아버지회’를 만들었다.

대회는 지금도 이어져 해마다 6~7명의 입상자가 나오지만 이들이 모두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은 있어도 연습에 충실히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 정예 봉사단원은 현재 24명이다. 편 사범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이라 가게 문을 닫고, 혹은 회사에 결근하면서까지 봉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지금 인원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공연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보통 한 번 공연에 투입되는 인원은 15명 안팎. 30대부터 60대까지, 대법원 판사, 변호사, 통일촌 농부, 택시기사, 교사,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은 평소의 근엄하던 모습을 버리고, 기꺼이 동화 속 캐릭터가 된다. 공연을 마친 후에도 한동안 시설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일 아버지’ 역할을 한다.

“코미디, 단막극, 2인극, 그림동화,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를 합니다. 대본은 제가 주로 써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 옛 이야기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우화를 주로 각색하죠. 위인전도 단골 소재인데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희망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공연을 마치면 아이들과 다과를 나누며 동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요. 손 인형으로 놀아주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죠. 헤어질 때면 ‘언제 또 올 거냐’고 묻는데, 한 곳만 갈 수는 없으니 그게 가장 안타까워요.”

동화구연아버지회는 보육시설 외에도 무의탁 노인시설, 장애우 시설 등 어려운 이웃들을 두루 찾는다.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공연 내용도 조금씩 달라진다. 사할린에서 영구 귀국한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는 구전동화 위주로 무대를 연출했다. 편 회장은 “어릴 때 듣던 이야기들이라며, 옛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분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어르신들, ‘꼭 다시 와 달라’며 잡은 손을 놓지 않는 아이들은 회원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를 이어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 편사범 회장이 일러주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아빠들의 동화구연법’

◎ 내용이 짧은 책으로 시작한다. 초보자는 등장인물이 간단하고 교훈적인 이솝우화가 적당하다.

◎ 사자와 토끼,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극과 극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내용을 고른다. 토끼와 여우, 할머니와 엄마 등 목소리 톤이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열될 경우 아이들이 지루해하기 쉽다.

◎ 맨 정신으로 읽어주기 쑥스럽다고 술의 힘을 빌리는 ‘음주동화’는 ‘절대 금지’다.

◎ 성대모사를 잘하고 싶다면 전문 성우가 더빙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숙지하는 것도 좋다.

◎ 중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아빠가 책을 읽어준다는 자체가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이다.

봉사활동비도 편 회장 자비로 마련

동화구연아버지회를 이끌고 있지만 편 회장의 직업은 스피치 강사다. 여러 기업체, 문화센터에서 화술을 가르친다. 그런 그가 동화구연을 하게 된 것은 잔병치레를 많이 하던 어린 딸 때문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심심해하는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준 것이 시작이었다. 어려서부터 웅변, 연극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그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연기하듯 책을 읽었고, 아이는 통증도 잊은 채 웃었다.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고무된 그는 더 열심히 동화구연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아버지동화구연대회’ 참가 신청서를 가져왔다. 꼭 나가라며, 등을 떠미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그는 대회에 출전했고 대상을 받았다. 그가 동화구연과 인연을 맺은 계기다.

그는 동화구연이 자신의 인생과 가정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동화구연을 하면서부터 좋아하던 술을 과감히 줄였고 대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늘 위태롭기만 하던 부부간 갈등이 줄었고,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랐다. 아내도 동화구연의 세계에 입문해 색동회가 주최하는 어머니 동화구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에게 대회 참가를 권유했던,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은 지금 유치원 교사로, 문화센터 강사로 일하며 동화구연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대학교 3학년인 아들도 초등학교 때 이미 동화구연대회에서 수상한 실력파로, 편 회장의 가족들은 동화구연아버지회 봉사 활동에 모두 함께 참여한다. 특별한 후원이 없기 때문에 봉사에 필요한 경비는 모두 편 회장 개인이 마련한다. 그는 “스피치 강사 경력이 30년을 넘다 보니 강의 요청이 꽤 많은 편”이라며, “남의 돈으로 하면 심부름이지 봉사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봉사에서 얻는 기쁨이 크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외부 후원이 많으면 초심을 잃을까 염려되기도 하고요. 힘은 들지만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는 그렇게 운영할 생각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 7월 15일 정부로부터 ‘국민추천 포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국민추천 포상은 어려운 환경에서 봉사나 기부, 선행을 해 온 인물을 일반인이 직접 뽑는 제도로 행정안전부가 인터넷과 우편을 통해 접수해 심사위원회를 거쳐 선정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마침 수상을 위해 청와대에 다녀온 길이라는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는 “우리가 방문했던 지방의 한 장애우 시설에서 추천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내 자식만 챙길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잘 커야 우리 사회가 밝아집니다. 동화구연이 아이들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하고, 꿈과 희망을 갖게 한다면 저는 앞으로 더 열심히, 더 많은 아이들과 나누며 살겠습니다.”

사진 : 김동욱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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