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즈바이런칭엠’ 오덕진 대표

남성 수제화 만드는 젊은 장인

남성 수제화 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낡은 작업장?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하는 노인?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남성 수제화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패셔니스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젊은 장인이 있다. ‘슈즈바이런칭엠(Shoes by lunching M, 이하 ‘런칭엠’)’ 오덕진 대표. 얼마 전 그룹 SS501, 슈퍼주니어 등이 슈즈바이런칭엠의 트레킹 부츠를 신으면서 화제가 됐다. 광택 나는 에나멜 소재에다 은색 금속으로 된 구두끈 고리, 뒷굽과 앞쪽 굽을 합쳐 6cm 높이의 이 부츠는 남성 수제화의 새로운 시장을 웅변했다.
이태원의 오피스텔 건물 2층에 있는 ‘슈즈바이런칭엠’(이하 ‘런칭엠’) 본사는 야단스럽지 않다. 제대로 된 간판 하나 없고, 현관 문에는 회사 이름조차 안 쓰여 있다. ‘M’이 전부다. 오덕진 대표는 “M도 안 쓰려고 했는데 가정집 같다는 지적이 많아서 할 수 없이 붙였다”며 웃는다.

진정한 수제화는 뭘까? 어떻게 만들까? 오덕진 대표는 “제대로 된 수제화는 가죽 소재와 디자인 패턴 등을 고객의 주문에 맞게 맞춤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앞코가 너무 뾰족하니까 둥글게 해달라, 버클을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반영할 수 있으면 진짜 수제화”라고 했다.

런칭엠은 한족 한족 손으로 가죽을 깎고, 한땀 한땀 손으로 바느질하는 ‘핸드 소운 웰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패션의 고장 이탈리아에서도 “한국에 핸드 소운 웰트를 하는 곳이 있어?” 하면서 놀란다고 한다. 핸드 소운 웰트란, 발등 가죽(upper)과 발바닥 내부 창(insole)을 감싸 바느질한 후 이를 발바닥 바닥 창(outsole)과 다시 꿰매는 공법을 말한다. 가죽이 워낙 두꺼워 바느질 자체가 힘든 데다 미세한 간격의 차이로도 구두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숙련된 장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술이다. 국내에 이 기술을 보유한 장인은 많지 않다고 한다.

“제대로 만든 구두는 운동화보다 편합니다. 신을수록 형태가 잡히면서 발에 착 감기죠. 어떤 가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착화감이 달라집니다. 저희는 송아지와 소의 중간 단계 가죽인 킵스킨을 많이 씁니다. 소가죽은 너무 두껍고, 송아지 가죽은 내구성이 약하거든요.”

그는 수제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소재로 ‘셸코드반’이라는 말 엉덩이 가죽과 신을수록 색이 달라지는 ‘배지터블 태닝’ 가죽을 꼽는다. 채찍질로 인해 내구성이 강하고 광택이 흐르는 셸코드반으로 만든 구두는 발등의 꺾이는 부분이 유리알이 굴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고 한다. 배지터블 태닝은 루이비통 가방처럼 처음에는 옅은 갈색이지만 햇빛과 공기 중 수분 등을 머금으면서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하는 소재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 소재는 앤티크 분위기를 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다.

장인의 손맛이 살아 있는 런칭엠 구두는 비싸지 않을까. 소재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런칭엠 수제화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은 20만~30만원대다. 웬만한 기성화 한 켤레값으로 ‘나만의 구두’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오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은 꼭 명품을 고집하지는 않는다”면서 “합리적인 가격,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면 명품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런칭엠 매장은 이태원 본점과 갤러리아백화점, 디자이너 편집숍 ‘먼슬리 맨션’ 등 세 군데인데, 이태원 본점에서만 맞춤 수제화를 만들고, 나머지 두 군데에서는 기성 수제화를 판다.

오덕진 대표는 런칭엠의 모든 공정을 꿰뚫고 있는 전천후 경영인이다. 고객의 성향에 맞는 구두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회사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는 경영인, 고난도 기술의 손바느질도 직접 할 줄 아는 장인의 역할까지 두루 한다. 그의 나이 갓 서른. 이 젊은 장인은 어떻게 국내에서 사라져 가는 남성 수제화의 불씨를 재점화하기로 했을까.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일에 패셔니스타들의 환호를 받는 브랜드로 안착시켰을까.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법조인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의상학과에 진학했다. 조용조용하고 순한 성격이지만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꼭 하고 마는 그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없었다. 졸업 후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했다. 남성 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맨스 스토어’는 꽤 잘됐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성 패션의 완성’을 추구한 숍에서는 구두도 취급했다. ‘과연 이게 팔릴까?’ 갸우뚱거리면서 팔기 시작한 웨스턴 부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점점 신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갔고, 급기야 신발 부분만 독립하기로 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꽂힌 것은 ‘남성 수제화’였다. 앤티크 가구를 좋아하는 그는 어느 날 가구를 만드는 옆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을 보고 눈이 확 뜨였다.

“가죽과 바늘, 실, 가위만 가지고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죠. ‘아, 저게 오리지널이구나’ 싶었어요. 사라져가는 장인의 기술이 아까웠어요. ‘장인의 기술과 젊은 감각의 디자인을 결합해보자’ 결심하고 장인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구식 디자인을 고수하던 장인들은 국내 시장에서 점점 외면당했고, 그들의 기술은 디자인과 기술을 겸비한 일본의 수제화 시장에 흡수됐다. 그는 어렵사리 두 명의 기술자를 찾아냈다. 그리고 남성 수제화 회사 오픈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갔다. 트렌드와 시장을 조사하고, 타깃을 정한 후 콘셉트를 분명히 했다. 웹디자인과 사진 촬영도 배웠다. 장인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손 기술도 익혔다.

“공장에서 기술을 배울 때나 그분들로부터 옛날이야기 들을 때가 가장 좋아요. 숙달된 솜씨로 구두를 만들면서 구두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죠.”

철저한 준비와 장인의 기술을 고집스레 지켜내는 열정 덕분에 ‘슈즈바이런칭엠’은 론칭 1년 만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손바느질 맛이 살아 있는 젊은 감각의 수제화에 쏟아지는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년에는 디자이너 고태용과 콜래보레이션(협업)을 진행했고, 일본과 이탈리아 등 전통 수제화에 관심이 많은 패션 강국과 사업 제휴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빨리 가려 하지 않는다. 외형을 키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청사진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단골 고객 중에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30년 후 ‘나는 성공한 그에게서 30년 전부터 구두를 맞춰 신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30년 후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이 돼 있으면 좋겠어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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