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배상민 교수

세상에 없던 디자인으로 나눔을 실천하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과 배상민(39) 교수는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행복한 세상을 위해’라는 슬로건으로 2006년 12월 ‘나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나눔상품의 디자인과 제조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나눔 프로젝트는 상품의 기획과 디자인 단계부터 제작, 판매, 수익금 활용까지 모두 자선을 목적으로 학계와 NGO, 기업이 각기 역할을 나눠 나눔 활동에 기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판매 수익금은 전액 저소득층 학생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카이스트 연구실을 찾았을 때도 올해 내놓을 4호 나눔상품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나눔상품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8개월을 매달린다고 한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윤리적 생산과 소비를 증진시키고 도덕적 가치가 이윤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이른바 ‘사회 기부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미국 파슨스 디자인학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1997년부터 겸임교수로 이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국의 스마트 디자인회사에서 일했다. 그런데 점점 자신의 일에 회의가 들었다. 6개월마다 디자인을 바꾸어가며 소비자의 수요를 자극해 제품을 파는 게 ‘지구촌에 아름다운 쓰레기를 쌓아가는 일’ 같았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켜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텀블러 ‘하티(Heartea)’
‘Heart’와 ‘Tea’의 합성어로 ‘Hearty’의 뜻, 즉 ‘마음 따뜻한, 애정 어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본체 중간 부분 LED 불빛이 65℃ 이상일 경우 빨간색, 35~65℃일 경우 주황색, 35℃ 이하일 경우 푸른색 등으로 변해 내용물의 온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가 하는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었으면 했어요. 디자인이 점점 비즈니스로 변질되어가는 게 싫었지요.”

학생들과 그런 고민을 공유하고 가르치면서 점점 보람을 찾았고, ‘지식과 아이디어는 나눌수록 커지는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디자인 감각과 기술만이 아닌 윤리적 디자인, 바른 디자인 등 가치적인 측면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8년 후인 2005년 9월 그는 카이스트 교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디자인의 사회공헌을 좀더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0년 동안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을 만큼 바빴지만 나눔 프로젝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디자인은 나눔’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배상민 교수의 나눔상품 디자인에는 원칙이 있다. 필요성과 실용성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것이다. 나눔의 의미를 제품에 담기 위해 과학기술을 활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나눔상품의 가격은 2만5000원~4만원대로, 상품을 구입한 사람은 구매자인 동시에 기부자가 된다. 지금까지 누적 판매금은 약 17억원. 이를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147명의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매년 200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라 매년 나눔캠프를 열고 사회지도자들로 구성된 멘토링 시스템을 운영해 저소득층 아이들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도 예술 분야에 재능을 가진 학생 40여 명의 멘토로서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다.

접이식 ‘MP3 플레이어’
펼치면 십자가 모양, 접으면 큐브 모양이 된다. 십자가 형태를 통해 나눔을 상징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눔이라는 상징성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접이식 MP3 플레이어’, 2008년 친환경 가습기 ‘러브 팟(Love Pot)’, 2009년 텀블러 ‘하티(Heartea)’가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새로운 나눔상품을 공식 선보인다. 그의 책상에는 자연 가습기 ‘러브 팟’이 올려져 있다. 보통의 가습기에 생기기 마련인 박테리아 걱정이 없는 가습기다. 물이 든 작은 화분에 천연 양모로 만든 벌집 구조의 하트 모형을 꽂아놓은 천연 가습기. 포트의 물이 하트 모양의 티슈 볼을 통해 증발하면서 아로마 향과 촉촉함이 퍼지도록 디자인해 나눔의 기쁨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자연 증발 원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습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없어도 적당한 습도가 맞춰진다. 특히 전기가 필요 없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공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자연 가습기 ‘러브 팟’
포트의 물이 하트 모양 티슈 볼을 통해 자연 증발하면서 아로마 향과 촉촉함이 퍼지도록 디자인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공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려고 해요.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구매자로 하여금 사고 싶게 만들고, 그게 자연스럽게 기부로 이어지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나눔 프로젝트에서 만든 상품은 각각 세계 4대 디자인상(미국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 독일 국제포럼(IF, International Forum), 레드 닷(Red dot), 일본 굿 디자인)을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다.

“얼떨떨할 때도 있지만 감사하죠. 사회적 가치를 바탕에 두고 매 작품의 콘셉트나 디자인 가치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알았고, 사회에서도 이러한 진정성과 필요성을 알아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학생들 역시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혜택을 나누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끈끈한 팀워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알고 함께 할 수 있는 제자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는 두 가지 꿈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눔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아에 허덕이는 제3세계에서 ‘적정 기술’을 적용해 ‘적정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시드(Seed)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다. 올여름 시작할 계획인 ‘시드 프로젝트’는 제3세계인들의 생존에 필요한 제품을 현지의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것이다.

“방학 때 학생들과 가나와 잠비아에 머물면서 현지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만들어줄 예정입니다. 현지인 교육도 병행해서 나중에 저희 도움 없이도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하나의 씨앗’을 심을 겁니다. 앞으로도 사회공헌 디자인 활동을 통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확산시켜가고 싶습니다.”

사진 : 하지영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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