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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와 545일간 배낭여행한 옥봉수・박임순씨 부부

길 위에서 가족의 행복과 삶의 방향을 발견하다

중학교 교사였던 옥봉수·박임순씨 부부는 2008년 가을, 중·고등학생이던 세 아이를 데리고 배낭여행을 떠났다. 부모는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아이들은 학업을 중단했다. 여행은 545일간이나 이어졌다. 이 대장정은 가족 모두를 변하게 했다. 부모는 바쁘고, 아이들은 공부가 전부인 현실에서 잊고 살았던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부부는 그 깨달음을 모아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라는 책을 펴냈다. 두 사람을 만나 여행이 바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평범한 삶을 살던 부부가 여행을 계획한 것은 아이들 교육 문제에서 시작된 ‘불화’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딸이 중하위권 성적을 받아 오자 박임순 씨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평소 ‘공부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자’는 교육관을 가지고 학원 한 번 보내지 않았지만 막상 아이의 성적앞에서는 그 역시 평범한 엄마였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이를 지독하게 공부시켰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 엇나갔다. 성적은 더 떨어졌고, 밖으로만 돌던 아이는 가출까지 감행했다. 갑자기 달라진 아내를 다독이며 “아이에게 시간을 주자”고 하던 남편도 딸과 아내 사이에서 서서히 지쳐갔다. 집 안에선 늘 큰소리가 오갔다.

“그렇게 4년을 보냈어요. 뭐가 잘못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이중적이었던 거예요.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달라던 어릴 때 바람은 온 데 간데 없고, 성적이 안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무시하고 공부라는 틀에만 가두려고 했던 거죠. 이게 잘못된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요. 다들 그렇게 가고 있으니까. 그때 남편이 여행을 제안했어요.”

“교육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아내도 동의했다. 도덕 교사로서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질문을 자주 했다는 박임순 씨는 “예전에는 꼴찌도 자기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곤 했는데, 한 10년 전부터는 아이들이 대답을 못 한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안정적인 직업군을 바라고,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인생의 패배자처럼 스스로를 낙인 찍는 현실이 그는 가슴 아팠다. 결국 자신마저도 평상심을 잃고 성적에 내몰리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행복한 교육’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가 흔쾌히 여행에 동의한 이유였다.

주변에서는 “다시 생각하라”며 두 사람을 만류했지만 부부는 학교에 퇴직 신청을 했다. 아이들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중1, 중3, 고1. 한창 책상 앞에 붙어 있어야 할 아이들은 아빠 엄마와 함께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여행 경비는 부부의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2008년 9월 6일, 첫 여행지였던 인도와 네팔을 시작으로 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 등 아시아 국가들을 돌아보고 아프리카로 날아갔다. 여기서 다시 남미・중미・북미 등 아메리카 대륙을 일주하고 유럽・중동을 거쳐 귀국했다. 오세아니아 대륙만 빠진 세계 일주였다.

영어 실력도 변변치 않고 해외여행 경험도 없던 가족들에게 여행은 시작부터 실수의 연속이었다. 돌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배낭여행인 데다 24시간 내내 붙어 있다 보니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 참다못한 옥봉수 씨가 어느 날 아이들에게 카드를 건네며 “여기서 헤어져 각자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무거운 배낭을 서로 메지 않겠다고 싸우던 중이었어요. 사실 배낭여행은 쉽지 않아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똑같이 피곤하고 똑같이 배고프죠. 가족이라도 서로의 짐을 덜어주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 계속 싸우니까 남편이 ‘너희들이 지금까지도 서로 배려하지 않고 이렇게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지속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아빠 엄마는 그냥 돌아가야겠다. 여행을 더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어요. 아이들이 그제야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이탈리아 콜로세움 앞에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도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도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엄마가 아이들과 관련된 정보를 아이보다 먼저 알아서 제공하곤 했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아이들이 더 뛰어났다. 여행에 이력이 붙은 뒤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알아보고, 체력이 약한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기도 하고, 가격 흥정도 잘했다. 박임순 씨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절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한 아이들인데,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나섰던 거예요. 엄마로서 철이 든 거죠. 욕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어요. 무조건 퍼주는 게 사랑이 아니고 많은 부분을 아이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는 것도요.”

과테말라에서 아이들은 우연히 만난 재미 한인 의료봉사단의 활동에도 참여했다.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부모가 돌보고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던 아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야만 하는 여행길에서 부모도 돌봐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배낭을 나누어 짊어질 줄 알게 되었고, 노트북 컴퓨터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도 사라졌다. 아이들의 적성을 파악한 것도 값진 소득이었다.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활동 무대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되었다.

막내까지 모두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한 아이들은 대학 진학 대신 관심 분야의 자격증 취득을 선택했다. 스물한 살인 첫째는 피부미용과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딴 뒤 뷰티숍에서 일하다 지금은 비만관리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미국에 토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매장을 내는 게 꿈이다. 남다른 공간지각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둘째(20세)는 캐드를 공부해 지금은 폴리텍대학 컴퓨터기계설계학과에서 공부 중이다. 장래 희망을 물으면 짜증을 내던 아이가 지금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돈에 관심이 많아 CEO가 되고 싶다는 막내는 전산회계・세무회계 자격증을 땄다. 열여덟 살이지만 벌써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도 했다.

부부는 요즘 ‘가정과 교육 세움터’를 만들어 부부교육, 자녀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여행하며 깨달은 것을 많은 부모들과 나누며 자녀교육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부에게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여행 이야기를 듣느라 장시간 이어진 인터뷰를 마치며 옥봉수 씨는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자녀교육의 핵심은 ‘화목한 가정’이에요. 부부가 화목해야 아이들이 안정감을 얻고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공부를 내려놓으면 아이의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특성을 부모에게 보여주는데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또 공부만을 강요하다 보니 그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할 겁니다. 모두 똑같이 한방향으로만 가려는 게 문제죠.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을 부모님들이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옥봉수
  • 201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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