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

제3세계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옷 입으실래요?

한국의 사회적 기업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5-56. 한옥을 레노베이션해 독특한 느낌의 옷가게 ‘그루’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옷들이 걸려 있다. 단순한 디자인에 헐렁한 듯하지만 멋스럽다. 면·마·울·실크 등 100% 자연 소재를 베틀로 직조해서 만든 원단이라 한다. 재봉과 자수까지 하나하나 사람의 손을 거친 옷들이다. 한올 한올 씨실과 날실을 짜 넣어 숨구멍이 통할 것 같은 옷, 흙과 물, 햇살과 바람을 그대로 품고 있는 ‘자연을 닮은 옷’ 느낌이 물씬 났다.

이 옷들에는 하나하나 휴먼 스토리가 담겨 있다. 얇은 아사에 천연 염색한 천으로 만든 블라우스. 이 옷을 만든 것은 네팔의 가난한 여성 30여 명이 함께 일하는 수작업 공방 ‘코튼 크래프트’다. 이곳에서 옷과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고,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검정과 은색 실크를 양면으로 겹친 후 한땀 한땀 손 스티치로 기하학적 문양을 새긴 머플러는 방글라데시 북서쪽 마을에 사는 여성들이 만들었다. 이 마을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중 파키스탄의 공격으로 마을의 남자 대부분이 사망했던 곳이다. 여성과 아이들만 남겨진 이 마을은 재건을 위해 수공예 작업을 시작했다.

‘그루’에서는 초콜릿, 커피 등 공정무역 식품들도 판매한다.
국내 최초의 페어트레이드(공정무역) 패션 브랜드인 ‘그루’를 만든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이렇게 가난한 제3세계 여성과 우리나라의 멋쟁이 소비자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를 안국동 ‘그루’ 매장에서 만났다. 그가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만든 것은 2007년 5월. 그전까지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개발센터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연구하고, 환경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환경운동가였다. 그가 ‘제3세계 여성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 것은 환경 문제를 연구하다 만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성들 때문이었다.

“환경 문제는 빈곤 문제와 얽혀 있는데, 빈곤문제의 중심에 여성이 있더라고요. 생존을 위협당하는 절대 빈곤층의 70%가 여성입니다. 그들 소원이 뭔지 아세요? 가족들이 하루 두 끼라도 꼬박꼬박 먹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도울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단순한 원조보다는 여성들이 힘을 키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환경과 빈곤, 여성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고, 이를위해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객관적으로 잘 사는, 과소비 국가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시민으로서 성숙한 의식을 가지려면 이제 우리의 소비 행태를 돌아보며 ‘윤리적 소비’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제3세계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면서 그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공정무역’은 그 가운데 떠올린 사업이었다. 공정무역 생산자의 70%이상이 여성이라, 세계의 가난한 여성들을 실질적,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2년 동안 세계 각국의 사례를 연구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공정무역을 시작했지만, 너무 덩치가 커서 흉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공정무역을 하는 NGO가 많이 생겼는데, 각 지역 여성들의 특징을 살린 수공예 패션상품을 판매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사업적으로는 쉽지 않아 10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하더군요.”


면·마·실크 등을 베틀로 직조해 수공으로 만든 ‘자연을 닮은 옷’

일본의 공정무역 회사들은 비슷한 일을 하겠다는 그를 ‘동지애’로 도왔다. 동남아 지역으로 출장갈 때 그를 현지로 불러 그곳 생산자들을 만나게 해주고, 각 생산자의 장단점까지 귀띔해줬다. 네팔 등 산업기반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남자들은 돈을 벌겠다고 외국에 나갔다 소식이 끊기고 여성 혼자 부모 모시고 아이들 키우며 사는 가정이 많았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소득이 생기게 하는 것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한푼 두푼 저축하며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꿈을 키우게 하는 일이었다.

“각자 집에서 가내 수공업을 하거나 몇몇 여성들이 모여 일하기에는 베틀직조 방식이 적당합니다. 우리의 모토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사용해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지요.”

‘그루’의 물건들은 대부분 페어트레이드코리아의 디자인팀이 디자인한 후 현지 생산자들에게 의뢰해 만든 것들이다. ‘그루’의 디자인 콘셉트는 ‘내추럴 베이식’. 단순한 디자인으로 자연 소재의 특징을 강조한 옷들이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평범하지 않아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난다. 각 나라의 전통 문양 등 현지의 디자인 자산을 활용하되 한국소비자에 맞게 변형,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루’의 주요 소비자는 30~40대 여성. 마니아 소비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이미영 대표는 “우리 고객은 특징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고학력 중산층 이상으로 외국 경험이 있고, 식품도 친환경-유기농을 선호하는 ‘로하스(Lohas)’족이라 한다. 그루의 의류는 10만원 안팎. 자연 소재에 수공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결코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한 가격도 아니다.

“좋은 뜻을 가지고 있으니 무조건 사달라고 소비자에게 강매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퀄리티 컨트롤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1년에 두 번 이상 네팔·인도·방글라데시 등 현지를 방문해 생산자들을 만나는데, 이때 접한 현지 생산자 여성들의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려 한국 소비자와 제3세계 여성들이 ‘스토리’를 매개로 만나게 한다. 그에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때와 힘들었던 때를 물었다. 좋았던 때는 “장사가 잘될 때”, 힘들었던 때는 “장사가 안될 때”라고 대답한다. “생산자들을 만나러 몇 시간씩 걸어 들어가는 고생쯤이야 즐겁기만 한데, 장사가 제일 힘들다”고 한다. 사회운동을 하다 숫자로 말해야 하는 사업가가 된 후 그의 고충이 짐작됐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시작할 때 그는 시민주주로 자본금을 모았다. 현재 시민주주는 180명. 이제 손익분기점은 넘겼지만, 배당은 하지 못했다면서 “은행이자를 상회하는 배당금을 주면서 이 일에 참여하는 주주들에게도 재미를 안기는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2007년 출발할 때 6명이던 직원은 15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400%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직원들이 낮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즐겁고 열정적으로 일한 덕분이지요. 직원 모두가 여성인데,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다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옮겨온 여성, 육아 때문에 쉬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여성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프라이드와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려면 주인의식이 중요합니다. 저 혼자 결정하는 일은 별로 없고,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다 보니 회의시간이 항상 길어지지요.”

‘그루’의 상품들은 현재 홈페이지와 서울 안국동·인사동·평창동 매장에서 판매하는데, 이동인구가 많은 곳에 본격적으로 매출중심 매장을 내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채러티 숍’, 카페, 갤러리 기능 등을 합한 복합문화매장 등 여러 형태로 매장을 확산하는 게 당면한 과제라고 말한다.

“런던에 가면 공정무역이나 공익적인 뜻을 가진 곳들이 하는 ‘채러티 숍’이 줄지어 있는 거리가 있어요. 우리도 그런 거리가 생겨 사람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