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아빠다〉 마술감독 맡은 18세 마술사 하재용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마술사의 꿈 키웠죠

두 아버지의 지독한 부성애를 담은 영화 〈나는 아빠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상만(손병호 분)은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바로 이런 거다”라며 마술을 선보인다. 수술 후 처음으로 눈뜬 민지(김새론 분)의 눈에 들어온 세상은 온통 꽃 천지다. 하늘에서 눈송이 같은 꽃잎이 떨어지고 보라색 깃발이 춤을 춘다. 원수지간인 두 아버지는 마술을 하고, 마술을 보는 순간만큼은 한마음이 된다. 마술은 마력을 지녔다. 이 영화에서 마술은 원수의 딸까지 부성애로 껴안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나는 아빠다〉의 마술감독은 18세 마술사 하재용(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3학년) 군이 맡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마술사의 길을 걸어온 그는 얼마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마술사 협회인 ‘세계마술사협회(IMS)’로부터 올해의 마술사상과 공로상을 받았다. 올해의 마술사상은 한 해 동안 각국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한 마술사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2008년 출전한 홍콩국제마술대회에서는 인기상에 해당하는 ‘피플 초이스 어워드’를 받기도 했다. 또한 세계마술사협회가 주는 ‘마술박사’ 학위를 최연소로 땄다.

하재용 군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로드 매니저이자 보호자 역할을 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스타일리시한 헤어, 몸에 딱 붙는 슈트에 수제구두 등을 갖춰 입고 나타난 하재용의 아우라는 아이돌 스타 못지않았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 어머니 의상까지 코디를 해준다고 했다. 중저음의 안정감 있는 목소리와 정제된 답변은 그를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게 했다. 영화 〈나는 아빠다〉를 본 소감을 묻자 예상외의 답변이 나왔다.

“아니요, 못 봤어요. 19세 이상 관람가 영화거든요. 내년에 봐야죠(웃음). 보신 분들 평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영화에서 아빠의 직업이 전직 마술사이기 때문에 마술 장면의 비중이 꽤 컸어요. 영화사에서 먼저 마술감독 제의가 왔고요, 재미있는 도전이 될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죠. 3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촬영했는데,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손병호 선배님이 많이 예뻐해주셨죠.”

하재용은 이 영화에서 마술 장면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손병호 씨에게 마술 지도를 해주고, 난이도가 있는 마술은 그가 대역을 했다. 무엇보다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스토리와 테크닉의 마술을 선보일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나리오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했기에 이 부분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마술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 학생회장 출마를 준비하면서였다. 선거 유세용 이벤트를 고민하던 중 아버지가 마술을 권유했다.

그렇게 접한 마술의 세계. 이때만해도 그는 자신이 마술사의 길을 걷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마술학원 등록 첫날 ‘지팡이가 사라지는 마술’을 본 꼬마는 장래희망을 바꾸었다. 대통령에서 마술사로.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저 마술을 내가 능수능란하게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 마술은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요. 학원에서 새로운 마술을 배우면 집에 와서 다른 마술을 개발해 응용해보곤 했죠. 제가 만든 도구도 많아요.”


초등학교 시절 전교회장 선거에서 보여주려 배우기 시작한 마술

전교회장 선거일, 전교생 앞에서 선보인 마술은 그의 장래희망에 못을 박는 계기가 됐다. 그는 손수건이 사라지는 마술과 로프를 떼었다 이어 붙이는 마술을 선보여 수천 명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마술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 관객의 표정과 환호, 그 순간의 쾌감과 환희는 마술사만이 안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는 득표 수 3위로 회장은 되지 못했지만, 그날은 그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마술을 하면서 그는 딴 사람이 됐다. 활발하고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몰라보게 차분해지고 침착해졌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찾고 몰두하다 보니 성격이 바뀐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천생 무대 체질이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해서 무대에 서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웬만한 프로도 무대에 서면 긴장하기 마련인데 그는 아니다. 무대를 즐기다 못해 자신의 순서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마술대회에 나가면 ‘왜 내 순서가 빨리 안 오지?’ 하는 생각뿐이에요. 홍콩국제마술대회에서는 자진해서 가장 먼저 하겠다고 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빨리 관심받고 싶고 시선을 끌고 싶고 박수를 받고 싶거든요.”

그에게 즉흥 마술을 제안했다. 탁자에 있는 소품을 이용해 마술을 보여달라고. 그는 제안이 끝나기 무섭게 클리넥스 한 장과 포크를 집어 들었다. 당황하거나 고민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클리넥스를 돌돌 말아서 손에 쥐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 이제 포크로 휴지를 찍겠습니다. 하지만 이 휴지는 마술 휴지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휴지를 쥔 손가락을 펴는 동시에 포크로 찍는 시늉을 한다. 없다. 휴지가 사라졌다. 30cm도 안 되는 지척에서 두눈 동그랗게 뜨고 봤지만…. 감쪽같다.

“마술은 종합예술입니다. 아이디어도 많아야 하고 창의력도 있어야 합니다. 순발력과 쇼맨십도 필요하고요. 순발력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지만 꾸준한 연습이 필수입니다.”

그는 국제마술협회 아시아 회장직을 맡고 있는 마술사 정하성의 수제자다. 정 회장의 제자가 된 후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마술 연습을 한 적도 많다. 마술대회를 앞두고는 새벽까지 연습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술계에 입문해 6년째 마술사의 길을 걷고 있는 하재용 군.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고, 서울대학교병원에 가서 검사한 아이큐 테스트에서는 병원 측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높은 지수가 나온 그에게 주변에서는 “머리 좋은 아이한테 왜 공부를 안 시키고 마술을 시키느냐, 마술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후 실컷 배우면 되지 않느냐”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이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레고조립 등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주위에서 아무리 불러도 못 들을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는 “마술을 배우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하더니 “5학년도 늦다고 생각해요. 유치원 때 시작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라며 진지하게 말한다. 다행히 그의 부모님은 그의 꿈에 태클을 걸지 않고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다고 한다. 동석한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재용이는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 한 번, 가방 챙기기 한 번 도와준 적 없죠. 소풍 날 도시락을 못 챙겨준 적이 있는데, 불평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편의점에 가서 김밥을 사더라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산에 있는 친척집에 비행기를 타고 갈 때에도 혼자 다녔고, 얼마 전에는 열흘 이상 혼자 홍콩 여행을 다녀왔죠.”

그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마술은 시계마술이다. 파티에 늦은 마술사가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마술. 초침과 분침, 시침이 뒤로 돌아가고 작은 시계가 커지거나 여러 개의 시계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의 시계마술에서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루어진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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