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 주천기 교수

“김수환 추기경님 덕분에 나눔의 삶 시작했죠”

서울성모병원 안센터 입구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쓴 휘호가 걸려 있다. 특별히 멋을 부려 쓴 흔적은 없고, 그저 소박한 필체로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적혀 있다. 이 휘호는 한 단체의 바자회 기금 모금을 위해 김 추기경이 여러 장의 종이에 쓰고, 또다시 쓴 끝에 얻어낸 작품이라 한다. 주천기(55) 교수는 김 추기경이 선종한 후 안구적출 수술을 집도한 안과의사다. 온 세상에 사랑을 베푼 성인의 승천을 가까이서 지켜본 후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김 추기경이 그에게 바라던 나눔으로 시작되었다.

지난해 주천기 교수는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인공위성을 통해 백내장 수술을 생중계하고 안구 내 보조장치와 약제에서 12건의 특허를 등록하는 등 안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수상 직후 상금 5000만원 전액을 시과학연구소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이어 두어 달 전 펴낸 에세이집 《세상을 보여줄게》 출간 기념회에서는 인세 전액을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생명존중기금에 기부한다는 약정식을 가졌다. 또 케냐·중국·베트남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나라에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매년 꽃동네를 찾아 무료 진료를 하는 등 소외계층을 위한 일에도 열심이다. 이렇듯 나눔과 봉사 경력을 쌓아온 주 교수에게 “봉사에 특별한 소명의식을 갖고 살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봉사는 나중에 나중에… 은퇴하고 해볼까 했다”며 껄껄 웃는다. 심지어 상금과 인세도 기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안구적출 수술을 집도하기 전이라면 말이다.

에세이집 《세상을 보여줄게》의 인세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생명존중기금으로 기부된다.
“추기경 님은 저희 병원의 귀빈 고객이셨죠. 그럼에도 병원에 오실 일이 있으면 예약하고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내원일을 기다려 오시곤 했어요. 가끔 제게 진료를 보러 오실 때마다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죠.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찾아주는 일에 앞장서라, 안구 기증 운동도 적극적으로 펼치라고요.”

당시 그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병원에서 강의와 연구, 진료를 병행하는 그에게 나눔과 봉사는 한마디로 어려운 일이었다. 최고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기 위해 지난 세월 그가 치열하게 살아온 틀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김 추기경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김 추기경의 안구 기증 서약이다.

“이미 1990년에 추기경 님께서 안구 기증 신청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선종을 앞두고 가톨릭계 원로 사이에서는 안구 기증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고 들었습니다. 귀한 분의 안구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입장과 살아생전에 안구 기증을 하겠다고 하신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 맞선 것이었죠. 더군다나 당시 서약하신 증서를 찾을 수 없어 더욱 결정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제가 추기경 님의 안구적출 수술을 맡게 되었고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각막 적출은 전문의가 맡지만 제가 직접 집도하기로 하고, 전문의 3명과 함께 추기경 님의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주천기 교수는 케냐에서 총 18명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빛을 밝혀주었다.
평화로운 표정의 김 추기경은 양손에 묵주를 든 채 편히 잠들어 있었다. 가톨릭 원로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신속한 안구적출을 위해 내과·외과 주치의를 모두 방에서 내보냈다. 주 교수는 환자와 의사로 만났던 지난 날로 돌아가, 한 시간에 걸쳐 김 추기경의 안구를 적출했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김 추기경의 안구가 각막 이식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사하는 30분 동안 그는 솔직히 두렵고 떨렸다고 고백한다.

“백내장 수술도 받으셨고, 연세도 많으신 추기경 님의 각막을 이식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식이 안 될 경우 연구용으로 기증되는데, 제게 쏟아질 비난이 두렵기도 했고요. 그럴 거면 왜 귀한 분의 안구를 꺼냈냐고요. 다행히 이식할 수 있어서 바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두 분이 각막을 기증받아 새 세상을 보셨지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안구 기증 서약을 하는 모습.
고 김 추기경 선종 후 주 교수의 마음은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열의로 가득했다. 때마침 한 구호단체로부터 그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려운 부탁을 하고 싶은데, 케냐 아이들에게 무료 진료와 수술을 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구나’ 싶었다 한다. 그는 병원에서 허락하는 대로 떠나겠다고 했고, 얼마 후 케냐행 비행기에 올랐다.

“케냐의 의료 환경과 기본 지식은 우리나라의 1950년대와 비슷했어요. 수술하기에는 최악의 상황이었죠. 마을을 돌아다니며 진료하고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을 선발했죠. 케냐의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이 가능한지를 다시 확인하던 중 몇몇 아이는 절망적이라는 것을 확인했고요.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저 아이가 앞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총 18명의 케냐 아이들에게 백내장 수술을 해주었다. 수술 후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희미하던 세상이 또렷하게 보이자 그렇게 신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신테사나’는 감사하다는 뜻의 케냐말인데, 주 교수는 그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이전에도 베트남에 의료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선배 교수님이 모든 비용을 지원해주셔서 수술했었는데요. 사람들은 우리가 수술을 마치면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리곤 했어요. 그 모습에서 피로를 모두 잊을 수 있었죠. 의사로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천기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백내장 수술을 위성중계했다.
그 후로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인생이 덧없다는 것이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었지만, 나누며 살지 못했다는 후회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아버지는 평생 남을 도우며 사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음에도 나누는 마음을 뒤늦게 갖게 된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주 교수에게는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나눔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인생은 나중에, 다음에는 없다는 것도요. 아들이 안과 의사인데도 제 아버지는 백내장 수술 시기를 놓치셨어요. 제가 조금 더 있다가 해드려야지 하다가 결국 못 하신 거죠. 지난해에 아흔 여섯 연세에 돌아가셨는데, 앞을 잘 보시지 못해 너무나도 죄송스러웠습니다. 무슨일이든 생각날 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주 교수는 5남매 중 막내아들이다. 두 명의 누나는 미국에서 약사와 의사로 각각 활동하고, 두 형은 서울대, 연세대에서 각각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렇듯 자식 교육을 잘하신 부모에게조차 쉽게 해드릴 수 있었던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의사로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레지던트에 떨어져서 군대에 갔고, 석사과정을 안과로 진학하지 못해 생화학으로 입학했고, 또 발령받고 싶던 병원 대신 열악한 병원에 다녀야 했어요.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에도 대기발령상태였고, 교수 부임 문제도 마찬가지였고요. 무엇하나 척척 해결된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그때 그 사건들은 꼭 필요했다 싶습니다.”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시상식 직후 상금 전액을 기부한 주천기 교수.
그는 의사로서 쉽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과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김 추기경에 대한 내용을 담아 에세이집을 썼다. 후배들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란다. 누군가의 삶을 밝혀주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한다.

“나중에 해야지라는 마음을 버리니 이렇게 삶이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라는 주천기 교수. 남들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피하라고 하지만, 자신은 의사와 나눔 두 가지를 확실하게 잡아보겠다고 한다. 그의 인생이 많이 남았을지라도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 : 장진영
사진제공 : amstory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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