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저렴한 가격으로 보청기 공급하는 ‘딜라이트’

저소득 난청인들에게 ‘듣는 기쁨’ 주기 위해 사업 시작한 대학생 벤처

세 명의 대학생이 창업한 딜라이트는 34만원이라는 혁신적인 가격으로 보청기를 공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턱없이 비싼 가격 때문에 난청이 있어도 보청기를 구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이들은 단비 같은 존재다. 회사 이름처럼, 들을 수 없어 외로운 사람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선물하고 있는 딜라이트를 찾았다.
딜라이트를 창업한 공동대표 중 한 명인 김남욱 팀장.
부천 가톨릭대 창업보육센터에 자리 잡고 있는 딜라이트 사무실은 한눈에도 활기가 넘쳤다. 상담직원들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쉴 틈이 없었고, 상담실도 직접 찾아온 방문 고객들로 만원이었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일주일 간의 예약 상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지만 수요가 폭주해 이미 월매출이 1억원을 웃돈다. 제주도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고, 경상도·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찾아오는 고객도 생겼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보청기의 가격은 34만원. 시중가 150만원 선의 제품을 5분의 1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인기의 이유다.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출발한 딜라이트는 1대 1 맞춤형으로 제작되던 귓본을 한국인의 귀 샘플 100개를 추출해 표준화함으로써 단가를 낮추었고, 온라인을 통해 주문받고 직접 배송하는 형태로 유통 비용을 줄였다. 특히 병원에서 처방받은 청력 수치를 주문서에 입력하고 자신에게 맞는 보청기 모델을 고를 수 있는 온라인 구매 방식은 가히 파격적이다.

이처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주인공은 세 명의 대학생, 김정현(26·가톨릭대 경영학과 4), 원준호(26·연세대 경영학과 3), 김남욱(24·카이스트 경영과학과 3) 씨. ‘세상을 바꾸는 대학생들의 모임, 넥스터즈’라는 대학연합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보청기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기업 창업에 뜻을 모으고 3년간 준비해 지난해 7월 딜라이트를 설립했다. 세 사람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 김정현·원준호 씨가 공동대표를, 김남욱 씨는 경영기획 및 연구개발팀장을 맡았다. 현재 직원은 모두 13명이다.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보청기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을 묻자 김남욱 팀장은 “가장 먼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김정현 대표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복지관에서 봉사를 하면서 청각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런데 보청기 가격이 너무 비싸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죠. 원준호 대표는 소방서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며 저소득층 노인들의 자살사건을 여러 번 목격한 것 때문에 보청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한번은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현장에 가보니 TV 볼륨이 100까지 키워져 있었답니다. 순간, TV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얼마나 외로우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고 해요. 저는 엄마가 청각장애 3급이라 보청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저 역시 엄마에게 보청기를 사드리는 게 큰 꿈이었어요. 귀가 닫히면 마음도 닫히거든요. 학생에게는 너무 큰 돈이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고비용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시장구조를 개선하면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셋 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보청기 사업에 확신을 가졌고, 더 마음이 잘 맞았어요.”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 만드는 것이 꿈

아이템이 결정되자 사업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무엇보다 품질과 가격 조건을 모두 맞춰 줄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보청기업체를 찾아 전국을 뒤졌고, 중국·홍콩 등 해외 공장까지 수소문했다. 다행히 이들의 새로운 시도에 몇몇 회사가 관심을 보여 그중 적절한 파트너를 찾았다. 34만원이라는 가격은 정부가 기초수급생활 청각장애인에게 지원하는 보청기 구입지원비를 기준으로 책정했다. 저소득층이 아니라도 청각장애 판정을 받으면 27만2000원의 보청기 구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어 6만8000원의 차액만 지불하면 된다. 난청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보청기를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연 것이다.

김남욱 팀장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대학생이라고 해서 동정심에 호소하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싸다고 품질이 떨어져서도 안 되고, 업체에게도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하에 공장을 물색했다”고 한다. 고객들로부터 “저가형인데도 깨끗하게 잘 들려 놀랍고, 고맙다”는 편지를 종종 받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평생 난청의 고통을 안고 살아온 김남욱 팀장의 어머니도 딜라이트의 수혜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명문대 다니는 아들이 취업 대신 ‘보청기 장사’로 나선 것을 마땅찮아 했지만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사업자금은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았다. 지난해에는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소셜벤처경연대회 청년창업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상금 3000만원과 운영비 2000만원을 받아 또 다시 든든한 재원을 마련했다.

“다들 학생이라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게다가 저는 학교가 대전에 있어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일했거든요. 사업을 시작하면서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웃음). 지금 저와 원준호 대표는 휴학계를 내고 회사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회사가 안정되면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해야죠.”

인터뷰가 있던 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두 공동대표를 대신해 딜라이트를 소개한 김팀장은 “주말·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오후 10시에 퇴근하면서도 빨리 출근하고 싶어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는 직장”이라고 표현했다.

“저희는 이 회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겠다는 꿈이 있어요. 지금은 보청기만 만들지만 ‘저비용 임플란트’도 실현해볼 생각이고, 소외 계층을 위한 여러 가지 해법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꼭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잖아요. 보청기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그들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죠. 국내뿐 아니라 세계인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딜라이트를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요.”

사진 : 김선아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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