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캔 파운데이션 설립한 김성희・김영주・장문경 씨

저소득층 어린이들 위해 예술체험 프로그램 시작한 이화여대 77학번 3인방

지난 1월, 서울 성북동에 있는 갤러리 ‘스페이스 캔’에서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미술을 전공한 화가나 조각가가 아니었다. 초등학생, 그것도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두 달여 미술가의 지도로 버젓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내놓았다.
아이들 작품이 전시된 전시장에서 김영주·장문경·김성희 씨(왼쪽부터).
한국화를 전공한 후 설치작업을 하는 강서경 작가와 만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 전 먼저 자신들의 꿈이 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꿈을 화선지에 먹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붓질이 쉽지 않았다. 붓이 제멋대로 출렁거렸고, 먹은 순식간에 번져버리곤 했다. 선생님은 “예쁘고 정교하게 그리지 않아도 되니 너희들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했다. 아이들은 투박하고 자유분방한 붓질로 자신의 꿈속의 사람, 동물, 나무, 건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그림들에 나무판을 붙여 세워놓으니 연극무대처럼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이 무대가 전시장 한복판으로 옮겨왔다.

조각을 전공한 송준호 작가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종이인형으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경찰이 되고 싶은 친구는 경찰복,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친구는 축구복을 입은 종이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종이인형들을 서로 손에 손을 잡도록 연결시켰다. 서로 다른 아이들의 꿈처럼 알록달록 다른 옷을 입은 종이인형들…. 전시장 허공에는 이렇게 아이들의 꿈들이 전시되었다. 아이들은 종이인형을 만들고, 그 인형들을 연결시키면서 자신들의 꿈을 되새겼으리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 그들이 모여 사회를 만든다는 것,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마음에 새겼으리라.

예술과 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아이들이 미술가와 만나 예술체험을 하는 ‘아트버스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2008년 설립된 ‘캔 파운데이션’이다. 처음에 ‘캔 파운데이션’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자산이 넉넉한 독지가가 만든 재단인 줄 알았다. 서구에는 미술을 통해 사회공헌을 하는 자산가가 많지 않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화여대 77학번 동기생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저지른 일에서 출발했다 한다. 지난 1월, 캔 파운데이션에서 회의 중이던 장문경 이사장과 김영주, 김성희 이사를 만났다. 이들은 처음에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나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겨우 설득해 사진 촬영을 하고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얘 때문이에요. 얘가 꼬드기는 바람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이 커져버렸어요.”

장문경・김영주 두 사람이 김성희 이사를 가리킨다.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인 김성희 이사는 오랫동안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화랑들이 젊은 작가를 키우지 않는 게 늘 불만이었다.

“이름 있는 작가들의 그림 값만 높이려 들지, 젊고 재능 있는 작가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별로 안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화단에서 젊은 작가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해외 아트페어 덕분이에요. 이름난 작가들이 아트페어에 나가면 경쟁력이 없어요. 그림 값이 너무 높다고. 대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페인팅 실력이 있으면서도 가격이 적당하다고 주목받기 시작했지요.”


젊은 작가들을 위한 베이징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시작

10여 년 전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을 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다 학교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성희 이사. 교수가 된 후에도 그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젊은 작가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며 친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처음 시작한 일이 베이징에 스튜디오를 얻어 작가들이 3개월씩 돌아가며 생활할 수 있게 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은 돈만 후원하면 되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김성희 이사가 다시 “베이징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고 온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이 있어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성북동 집을 사무실 겸 전시 공간으로 내놓았다.

“원래 갤러리로 쓰던 건물이었는데, 구조가 재미있어 덜컥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와 살다 보니 너무 추운 거예요.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비어 있던 차였죠.”

‘캔’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건물이 원래 깡통(can)같이 생긴데다 ‘할 수 있다(can)’, ‘Contemporary Art Network의 약자’ 모두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더니 장문경 씨에게는 이사장, 김영주 씨에게는 이사 직책을 맡겼다. 세 사람은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 1977년 함께 이화여대에 입학, 김성희・장문경 씨는 미대에서, 김영주 씨는 사범대에서 공부했다. 미대에 다니지 않던 김영주 씨도 친구 때문에 뻔질나게 미대를 드나들어 그때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대학 졸업 후 김성희 씨는 화랑에서, 김영주 씨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고, 장문경 씨는 가정주부로 지냈다. 김영주・장문경 씨는 김성희 씨가 추천하는 작가의 작품을 사주는 컬렉터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후 미술사업을 해볼까 하던 장문경 씨와 유럽에서는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대한 심미안을 기르는 것을 보고 청소년들을 위한 디자인교육 사업을 하고 싶었던 김영주 씨.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접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김성희 씨의 설득에 넘어갔다.

아트버스 프로젝트 역시 우연히 시작됐다. 베이징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하고 돌아온 이호진 작가가 “개조한 버스를 몰고 다니며 아이들을 만나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한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화여대 미대 출신인 가구업체 ‘카사미아’의 최순희 소장으로부터 버스를 기증받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 이 버스는 서울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저소득층 혹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태운다.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미술가와 자원봉사자 언니 오빠들. 미술가는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를 소개한 후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자원봉사자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마음을 열도록 하는 역할. 사랑받지 못해, 혹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아이들이 예술을 접하면서 꿈을 찾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세 사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버스는 기증받았다 해도 작가에게 주는 수업료, 기사 인건비, 기름값, 버스 수리비 등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그동안은 기금모금 행사 등을 통해 충당해왔지만, 요즘 이들은 자립할 길을 찾고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며 기금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사정이 아니라 기증자 사정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도 불안하고요. 그래서 우리도 수익사업을 하면서 자립할 길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작품으로 꾸며진 전시장.
캔 파운데이션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현재는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돼 인건비를 지원받고 있다. 수익사업으로 이들은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예술과 디자인을 가르치는 ‘아키 팩토리’를 시작했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예술 수업을 하는 ‘아트버스 프로젝트’와 달리, 수업료를 받고 하는 수업. 디자인팀은 그동안 전시 포스터, 리플릿 등을 만들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외부 일을 받아오기도 한다. 세 사람에게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시느냐?”고 물었다.

“힘들고 기운이 빠지면 ‘차라리 주먹밥 장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많아요. 그렇게 돈을 벌어 도와주는 게 속 편하겠다고. 그런데 우리가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신기하고, 대견해요. 그러면서 ‘이건 우리 게 아니다’라고 마음을 다져요. 설립자로서 애착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젊은 사람들에게 넘기고 우린 뒤로 물러앉을 생각입니다.”

김성희 이사는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옳다’ 싶으면 일단 일을 벌이고 보는 스타일. 그러면 김영주 이사는 앞뒤 좌우를 꼼꼼히 따져나간다. 장문경 이사장은 큰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한다. 성격도 스타일도 다 다르지만, 서로의 장단점이 자연스럽게 조율돼 일을 해올 수 있었다는 이들.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 때문에 계속해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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