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돈워리컴퍼니’ 대표

‘걱정’은 인형에게 맡기고 편히 주무세요

이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남이 보기에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사실은 크고 작은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누가 내 걱정을 대신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요즘, 걱정을 대신해준다는 인형이 인기다. 2009년 초 처음 등장한 ‘걱정인형’은 점점 인기가 상승하더니 요즘은 주문 후 40~50일이 지나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직접 걱정인형을 만들었다며, 블로그를 통해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는 사람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캄보디아 아이들과 함께한 김경원 씨.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될 것 같은 작은 키에 모래알을 붙여 색칠한 뽀글뽀글한 머리, 철사로 골격을 잡고 팔다리를 만든 후 종이로 얼굴을 만들고 몸에 색실을 친친 감은 이 작디작은 인형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 요즘 사람들이 그만큼 걱정이 많고, 어디 털어놓을 데도 없어 외롭고,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걱정인형’을 만드는 ‘돈워리컴퍼니’의 김경원(29) 대표를 만났다. 걱정인형(worry doll)은 과테말라 고산지대에 사는 인디언들로부터 유래했다. 인디언은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는 어린이에게 인형을 쥐어준다. 그리고 “인형에게 너의 걱정을 털어놓고 머리맡에 두고 자렴. 이 인형이 대신 걱정해줄 테니 너는 편히 잘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미국 유학시절 과테말라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누군가 내 걱정을 대신해준다는 이야기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미국의 메디컬센터 중에는 이 걱정인형을 치료에 활용하는 곳도 있다고 해요.”

남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성격인데다 생각이 너무 많아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하던 그.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과 여유를 찾은 그는 ‘걱정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 인형을 알려야겠다고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 걱정인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싶었고, 사업이라기보다 일종의 ‘캠페인’으로 시작했다.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그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의 소통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귀국 후에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독립영화 〈감독은 말이 없다〉를 제작하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벌였던 ‘A캠페인’에 이은 ‘B캠페인’으로 시작한 일이죠. ‘A캠페인’은 ‘사랑과 평화와 공존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후 사람들로부터 대답(Answer)을 얻는 식의 캠페인이었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꽃을 주었죠. 답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에서 변해가는 표정, 새롭게 생겨나는 생동감과 에너지를 보면서 기쁨이 일었어요. 걱정인형은 ‘Don’t worry Be happy’에서 B를 따와 만든 ‘B캠페인’으로 시작했습니다.”


인형을 팔아 생기는 수익은 제3세계 어린이 돕기로

원래는 서울 인사동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면서 인형을 팔고 싶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걱정인형을 팔면서 사람들의 걱정을 들어주고 위로해야겠다. 걱정인형을 팔아서 생기는 돈은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축구공을 선물해야겠다. 정말 신나는 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한 때가 2월. 너무 추워서 인사동으로 나가는 것은 포기했다. 따뜻한 봄날이 올때까지만 온라인으로 걱정인형을 팔자고 했다. 알음알음으로 걱정인형이 팔리기 시작했고, 차츰 입소문이 났다. 수백만 원 정도 자금이 모이자 그는 축구공과 배구공을 사들고 캄보디아로 향했다. 걱정인형을 구입했던 한 치과의사가 칫솔 100개를 협찬해줘 이민가방 한 가득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채울 수 있었다.

“캄보디아 오지에 있는 다섯 마을을 찾았습니다. 막연히 불쌍한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찾은 것인데,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해 보였어요. 해맑은 웃음에 마음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곳에서 활동하는 NGO와 함께 축구 골대를 세우고,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다 왔죠. 공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아이들이었어요. 어릴 때는 공 하나만 있으면 배도 안 고프고 마냥 즐겁잖아요?”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들어주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애초의 계획은 이제 홈페이지(http://www.dontworryworry.com)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걱정인형을 주문할 때 자신의 걱정거리를 쓰도록 되어 있다. 걱정을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걱정의 무게가 많이 줄어든다. 걱정의 대부분이 사실은 할 필요 없는 것들이라 하지 않던가. 홈페이지는 또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공간이 되고 있다. 서로의 걱정을 공유하면서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구나’ ‘내 걱정은 큰 게 아니었구나’라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걱정인형 주문자의 절반 이상이 성적과 시험 걱정에 찌든 수험생들. 한 수험생이 걱정인형 덕에 수시에 합격했다고 포털사이트에서 털어놓은 후 접속이 폭증해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한 고3 수험생은 걱정인형을 보자마자 주저앉아 울었다고 합니다. 친구를 경쟁자로 보아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많은 아이들이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어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걱정거리는 대부분 입시나 취업, 자식 걱정 등 현실적인 고민이 많다. 그만큼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정신과 의사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어요. 아무래도 불안한 환자가 있었는데, 다음날 목매 자살했다고요. 그 환자가 저세상에서는 걱정 없이 살도록 무덤 앞에 걱정인형을 놓고 싶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의 무게, 사명감을 더 크게 느껴요. 절망에 빠진 사람이 이 인형을 보고 ‘피식~’ 웃기라도 할 수 있다면, ‘이게 뭐야’라고 하면서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다면, 실오라기 하나 잡는 심정으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플라시보 효과라도 낼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고요.”

그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걱정해도 돼요. 그렇지만 잠시, 이 인형에게 걱정을 맡기고 편히 자지 않을래요?”라고 권유한다는 것. 내 걱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 걱정해도 된다는 말에 오히려 위로받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주문 후 제작에 들어가는 걱정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을 그는 ‘소울 어시스턴트’라 부른다. 이들은 주문자의 걱정거리를 읽고,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한다. 주문자가 배달된 종이박스를 열면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글귀가 먼저 눈에 보인다. 그리고 각기 다른 모양과 색깔의 걱정인형 5개, 인형을 담아놓는 부직포 주머니, 그리고 설명서가 들어 있다. 간곡한 사연을 올린 주문자는 손글씨로 쓴 위로의 편지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한 세트가 1만원. 10세트당 축구공 한 개씩 제3세계 아이들에게 전해진다고 밝히고 있다.

“10세트당 한 개는 상징적인 숫자고, 사실은 더 많이 하고 싶어요. 매출의 10% 이상을요.”

그동안 8개국 20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축구공과 생필품을 선물했다는 그는 자신의 회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취업이 어려운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그 자녀들을 채용한다는 계획. 돈워리센터, 제3세계 도서관 설립도 추진 중이다.

“서울 대학로쯤에 카페 형태의 ‘걱정을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돈워리카페, 혹은 돈워리센터라 이름 붙일 생각이지요. 걱정거리 상담을 해주고, 공정무역 커피도 팔고, 제3세계 어린이들을 도울 수도 있는 공간으로요.”

사진제공 : 돈워리컴퍼니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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