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 여성 ROTC 후보생 김해빛나

군인들의 마음까지 강하게 단련시키는 장교가 되고 싶어요

지난 1월 19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창곡동에 위치한 학생중앙군사학교 연병장에서는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기록한 혹한의 추위에서도 우렁찬 기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ROTC 후보생으로 선발된 전국 7개 대학에서 온 60명의 여대생들이다. 이들은 숙소만 다를 뿐,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부터 제식훈련, 5km 뜀걸음, 타이어 끌기, 40km 완전군장 행군에 이르기까지 남성 후보생들과 똑같은 훈련과정을 거쳤다. 훈련 중 간식시간에 잠깐 얘기를 나누었던 김해빛나(22) 후보생을 3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후 다시 만났다.
숙명여대 법학부에 재학 중인 그녀의 어릴 적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춤추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교회 모임에서 군대로 위문공연을 다니기 시작했고, 군생활을 직접 목격하면서 군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다.

“위문공연을 갔던 GOP 부대는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이라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어요. 군인들은 휴가를 받기도 힘들고 또 외부 소식을 접하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저희가 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공연을 다녀온 후 그는 30여 명의 장병 하나하나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군인 하면 강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 내면은 외롭고 여린 분이 많더라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고민했죠. 제 또래인데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반성도 되고 ‘나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군인들이 내면의 어려움까지 털어놓고 치료받을 수 있으면 육체도 마음도 강한 군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성이 가진 섬세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싶어 ROTC에 지원했다고 한다.

ROTC가 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체력 측정을 통과하기 위해 그는 매일 달리기와 근력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해 팔굽혀펴기와 오래달리기 시험에서 각각 1급과 특급을 받았다.

“ROTC 시험과 중간고사가 겹쳐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ROTC를 준비한다면 시사・안보 관련 지식을 미리미리 습득해두는 게 좋아요. 체력도 중요하기 때문에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하고요.” 진정한 군인이 되기 위해 첫걸음을 뗀 첫 기초 군사훈련. “휴대전화까지 두고 떠날 때는 잔뜩 겁을 먹었는데, 그렇게 두려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생활하다 보니 위축되었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간식도 잘 나왔고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K-2 소총을 들고 총검술을 익힐 때는 “진짜 총으로 총검술을 배우니 진짜 군인이 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소총의 무게는 대검을 포함해 3.5kg가 넘는다. 처음에는 총을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평소에는 쓰지 않는 팔목의 근육을 쓰니 무척 아팠어요. 사실 전쟁이 나면 저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총밖에 없는데 제 생명이 중요하다면 무겁게 느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훈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사격이었다. 사격 후 종이가 뚫려 있는 걸 보거나 기록 사격을 하면서 탁 넘어가는 걸 보면 기분이 짜릿했다고 한다.



군인에게 총은 애인 같은 존재더라고요

군인에게 총은 애인 같은 존재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총은 화장실에 갈 때도 항시 소지해야 해요. 먼지가 묻지 않도록 잘 닦아야 하고, 기름칠도 해야 가장 깨끗한 상태에서 사격할 수 있거든요. 손이 많이 가는 무기이지만 훈련이 끝나고 막상 총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아쉬웠어요.”

그는 샤워할 때 자신도 모르게 군가를 흥얼거릴 정도로 군가가 입에 붙어버렸다. 3주간의 군사훈련은 매일매일이 다이내믹했다고 한다. 입소해서 가장 좋았을 때는 첫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훈련 막바지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다 넘어져 발목을 다치고, 사격 기록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남들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데 그런 모습이 자꾸 드러나니 속상해서 저녁을 먹을 때는 울음이 나왔어요. 하지만 눈물을 참는 것도 장교가 되는 과정이자 훈련이라 생각했습니다. 장교는 자신의 감정 변화를 쉽게 드러내서는 안 되니까요.”


훈련 강도 면에서 남녀 후보생들 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훈련은 남녀 후보생 모두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여성 후보생은 남성 후보생과 같은 조건에서 제식 훈련부터 30km 완전군장 행군까지 3주간 군사훈련을 받았다. 2분간 윗몸일으키기 120회, 팔굽혀펴기 70회를 거뜬히 소화해내는 여자 후보생의 기록을 보고는 남자 후보생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교관이 여자 후보생들을 챙긴다고 얼차려 때 봐주기라도 하면 “똑같이 대해주십시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 후보생들이 힘든 훈련을 꿋꿋이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 후보생들도 더 힘을 냈다고 한다.

“남녀 후보생 모두 서로 자극이 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주간의 훈련을 마친 그에게 훈련이 끝난 후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묻자 바로 “잠”이라고 답한다. 오후 10시 취침, 오전 6시 기상하는 규칙적인 생활.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종일 고단한 훈련이 이어져 밤이면 쓰러져 죽은 듯이 잤다고 말한다. “잠을 더 자고 싶었지만 습관이 되니까 5시 55분이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더라고요.”

장교를 꿈꾸는 그녀에게 부모님은 든든한 후원자다. “부모님이 자랑스럽다고 하세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할 때보다 훨씬 좋아하세요.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응원해주시는 길을 가게 되어 기뻐요. 친척, 친구 다 응원해주세요. 그래서 더 힘이 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앞으로 2년간 학군단 교내 교육과 방학기간 동안 총 12주, 175시간의 입영 훈련을 받고, 오는 2013년 첫 여성 ROTC 소위로 임관한다. 그동안 한자, 컴퓨터, 영어, 심리치료사 등 각종 자격증도 따둘 생각이다.

“학점 관리도 잘하고, 체력도 특급에 도전할 거예요. ‘1등으로 임관하자’라는 목표가 있지만 ‘마음만이라도 1등’이라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고 싶어요. 장교에 어울리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도 목표예요. 그런 지휘관이 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갈고닦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의 다부진 모습에서 당찬 대한민국 첫 여성 ROTC의 ‘늠름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 : 김선아·신생화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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