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러브> 실제 주인공 충주 성심학교 야구단

영화를 보고 1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연일 최저기온을 갈아치우는 혹한이 이어지던 지난 1월 25일 충주시 종합운동장. 23명의 선수들은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누워 윗몸일으키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얀 입김을 뿜어대며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에게 추위는 적수가 아니었다. 기합도 아우성도 없는 훈련장이었지만 이들의 소리 없는 함성으로 운동장의 열기는 후끈했다. 충주 성심학교 청각장애인 야구단. 강우석 감독의 영화 <글러브>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참 오랜만에 ‘착한’ 영화를 만났다.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인 야구부인 충주 성심학교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글러브>. 감독의 전작 <이끼>,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 나홍진 감독의 <황해> 등 잔혹 스릴러가 차고 넘치는 국내 영화 판도를 한순간에 반대극점으로 돌려놓은 영화다. 그 정도로 <글러브>의 희망과 긍정의 찌릿한 에너지는 강렬했다. <실미도>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충무로 최고의 흥행사 강우석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감동 드라마답게 영화는 짠한 감동이 기분 좋게 넘친다. 개봉 17일 만에 15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시 강우석!’ 하는 감탄사를 쏟아낸다.

이 영화를 탄생시킨 성심학교 야구단 훈련장을 찾았다. 영화화 이후 선수들과 스태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영화에는 미처 담지 못한 야구부의 속내도 궁금했다. 박정석 야구부장은 취재를 허가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야구부원들의 훈련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오전 훈련이 끝나고 몇몇 야구부원과 대화를 했다. 이들에게 자기소개와 영화 본 소감을 물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은 입 모양을 보고 뜻을 파악한다. 대답은 수화를 섞어서 했는데, 대부분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리고 몇 단어만 알아들을 정도다. 박정석 부장은 이들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이름은 정의광입니다. 포지션은 1루수입니다. 나이는 올해 18세입니다. 영화를 본 후 봉황기에 나가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1승을 해서 선배들한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포수를 맡고 있는 서길원입니다. 올해 17세입니다. 우리 학교가 지금까지 한 번도 1승을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1승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장래희망은 프로야구 선수입니다.”

23명의 선수들은 나이도, 체격도, 지적 수준도 제각각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까지 다양하고, 체격도 140cm 꼬마부터 170cm가 넘는 청년까지, 지적 수준도 별도의 지도가 필요한 학생부터 일반 학교에 진학해도 무리 없는 학생까지 다양하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스태프야말로 성심학교 야구단의 보이지 않는 주역이다. 박정석 야구부장은 2002년 9월 성심학교 야구부 창단 당시부터 수장을 맡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한 박 부장은 낮에는 수학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틈나는 대로 훈련장을 지킨다. 극중 김상남 코치를 연상시키는 박상수 감독. 과거 쌍방울 프로야구단 선수로 활약했던 그 역시 창단 당시부터 이들과 동고동락했다. 박 감독은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내 얘기는 가급적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또 한 명의 숨은 주역 서문은경 선생님. 극중 음악 선생님 주원(유선)을 연상시키는 서문 선생은 야구부원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다. 우석대학교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낮에는 과학교사지만 틈나는 대로 야구부의 매니저 역할을 한다. 함께 어울려 운동도 하고, 교과 보충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밤늦도록 시험공부도 시킨다. 이들은 입을 모아 “영화 속 인물들은 설정일 뿐 우리와는 별 공통점이 없다”며 웃었다.

혹한 속 훈련 중인 성심학교 야구부원들.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는 헌신적인 선생님들

이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야구단 창단 1년 후인 2003년 KBS TV 특집 다큐멘터리에 방영되면서였다. 이후 몇 군데에서 영화화 제의가 있었지만 영화화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학교가 가톨릭 재단이다 보니 아이들을 모델로 한 영화 제작을 허락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만들더라도 1승을 거두거나 프로선수가 한 명이라도 배출된 후 성공 스토리를 가지고 멋진 결말의 영화가 되게 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목표지점이 너무 멀었다. 당시의 후원과 지원 규모로 일반 고교와 경쟁해서 1승을 거둔다는 것은 아득했다. 그래서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먼저 영화화한 후 이를 통해 재정적인 안정을 찾은 다음 1승을 거두는 것으로 말이다. 영화화 허락 후에도 실제 영화로 제작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수화를 이용한 야구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야구단은 2009년 KBS 2TV <천하무적 야구단>과 친선경기를 하면서 한층 유명세를 탔고,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 제의를 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야구단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데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야구단 창단 당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스포츠를 통해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청각장애인을 배출해보자”는 것이었다. 야구 종목을 택한 이유는 야구가 인기 종목인데다 시각 영역의 활동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청각이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한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은 일반인보다 시각이 더 예민한 편이다. 야구는 공을 보고 잡는 부분이 큰 경기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이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종목이라고 판단했다. 창단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존속이 문제였다. 야구부를 끌고 가려면 고가의 훈련 장비며 야구용품, 의류비, 식대, 이동비 등 비용이 많이 필요했지만, 야구부원들의 가정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열에 여덟은 결손가정이나 부모가 생활보호 대상자, 장애인이었다. 성심학교 선생님들이 월급에서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보태고, 소수의 후원자가 나섰지만, 일반 고교 야구단을 상대할 만한 팀으로 훈련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프로야구단으로 존속시키는 건 무리다, 클럽활동으로 전환시키자”는 얘기가 나왔다.

1루수 정의광(왼쪽), 포수 서길원.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컨설팅을 받아봤습니다. 설문조사도 해보고요. 결과 성심학교 야구단은 우리 학교만의 야구단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단계에 온 것이죠. 야구발전 위원회를 만들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조용남 교감)

“지금 여기에서 멈춰버리면 ‘역시 청각장애인이 일반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건 무리였어’라는 결론이 납니다. 이런 시도가 저희가 최초이자 유일하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하면 일반화돼버리죠. 그래서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장애인 팀이 일반인과 동등한 경기를 펼치려면 일반인보다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큰 기업이나 든든한 독지가가 나서서 후원해주시면 힘을 얻을 수 있겠지요.”(박정석 야구부장)

왼쪽부터 박상수 감독, 매니저 서문은경 선생님, 조용남 교감 선생님, 야구부장 박정석 선생님.
야구부 창단 10년째, 학교에서는 크고 작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5명의 졸업생이 일반 대학교 프로야구 선수가 됐고, 야구부 실력이 일취월장 중이다. 야구부 입단을 꺼리던 학생과 부모들도 야구부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어린 나이에 입단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변화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도전의식이 생긴 것. 졸업 후 생산직에 취업한 학생 중에서 사회복지사나 수화통역사를 하고 싶다며 다시 대학에 도전하겠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야구를 통해 성취감을 맛본 아이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성심학교 야구단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 장애인으로서 일반인과 동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를 통해 얻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떤 승리보다 값지지 않은가.

사진 : 김선아
  • 2011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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