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Chef] G20 정상 부인 만찬 맡은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이재옥 셰프

한식만 36년, 국빈 접대 전문 셰프

2010년 11월 G20 정상 부인들의 한식 오찬을 담당, 큰 호평을 받은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이재옥 셰프. 한식업계에만 36년째 몸담고 있는 그는 국내 현업 조리장 중 국빈 만찬 부문에서 최다 경력을 지녔다. G20 정상 부인 오찬을 앞두고 퓨전한식으로 갈 것이냐, 정통 한식으로 갈 것이냐 갑론을박이 많았다. 그는 우리 정통 한식으로 승부해 정상 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고, 그의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구절판과 신선로, 잡채와 삼색전, 저염 조리법으로 담근 김치와 젓갈, 다시마튀각과 견과류 등 궁중음식을 중심으로 구성한 메뉴는 큰 호응을 얻어냈다. 터키・캐나다・인도의 정상 부인들은 밑반찬과 후식을 자국에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싸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한다.

“우리의 정통성을 살린 궁중음식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의 입맛에도 다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번 행사를 통해 입증됐습니다. 원래 우리 정통 한식은 맵고 짜지 않습니다. 담백하고 정갈합니다. 미국에서는 미국식대로, 일본에서는 일본식대로 현지화하면 정통성이 없어집니다. 우리 음식 문화가 뿌리째 흔들립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치즈를 좋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음식 그대로 선보여서 우리의 맛을 세계인이 찾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한식 세계화의 방향성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이재옥 셰프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외국 손님이 많이 찾는 특급 호텔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좋아할 우리 음식 맛을 찾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우리 정통 음식을 선보여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며 “우리 음식은 세계가 인정한 음식이고 그 자체로도 위대한 음식인데 왜 굳이 퓨전화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잘못 알고 겁을 내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한식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 부문의 이름난 스타 셰프는 많지만 한식 분야 스타 셰프는 드물다. 그는 36년간 외길을 걸으면서 우리나라 음식 문화의 발달과정, 특히 한식의 발달사를 지켜봐왔다. 특히 그는 현재 셰프의 위상에 대해 “그때는 이런 시절이 오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원래 무술사범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상경, 생계를 위해 작은 한식당에 발을 디딘 게 그의 셰프 인생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교통사고를 당해 무릎과 발목을 크게 다치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그 즈음 제주 하얏트호텔에 근무하면서 무형문화재 38호인 궁중음식 전문가 故 황혜성 선생을 만났다. 황 선생에게 배운 궁중음식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했다. 한식의 맛과 멋에 매료되면서 그는 인생의 궤도를 대대적으로 틀었다. 그전까지 그에게 한식이란 생계수단의 하나였지만, 이때부터는 평생을 걸고 도전할 천직이 됐다.

작은 한식당에 발을 디딘 후 경주현대호텔 한식 조리장,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 ‘한가위’ 조리장을 거쳐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한식당 ‘온달’의 조리장을 맡기까지, 그는 수십 년간 특급호텔 한식 조리장을 맡아왔다. 조리장은 극소수만 갈 수 있는 자리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미각은 타고난 것 같아요. 어머니 음식솜씨가 좋으셨죠. 대충대충 하시는 것 같은데 뭘 해도 다 맛있었어요. 두 번째로 남보다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남들 놀 때 안 놀고, 남들 잘 때 안 자고 연구했습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그랬습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궁금한 것에 대해 혼자 연구하고, 남들 쉬는 시간에는 칼질 연습하고, 퇴근 후에는 책을 들고 공부했죠. 그러다 보니 같이 출발한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더군요.”



가장 중요한 게 식재료, 전국 다니며 구해 와

그는 미각 관리를 위해 담배도 끊었다. 15년 전, 하루 세 갑씩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다. 금연 후 오히려 예전보다 더 미각을 잃었다 한다. 담배 때문에 미각이 둔화된 것. 음식 재료 하나하나를 맛보면서 미각 회복 훈련을 했고, 1년 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미각이 살아났다 한다. 그는 “미각이란 타고난 부분도 있고, 경험으로 단련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한다. 그의 손끝은 ‘계량컵’으로 불린다. 소금의 양을 육안으로도 거의 맞추고, 눈을 감고도 정량에 가깝게 집어낸다고 한다. 오차 범위는 10% 이내라고.

그의 체력은 놀라울 정도다. 무술사범을 꿈꾸면서 다져놓은 기본 체력이 있는데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단전호흡을 꾸준히 해온 결과다. 그는 “어린 셰프들과 비교해도 체력은 자신 있다”며 웃는다. 경주현대호텔 오픈 당시, 두 달 간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면서 강행군했는데 젊은 셰프들이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데도 그는 끄떡없었다. 그때 생긴 별명이 ‘터미네이터’. 강철 체력에다 완벽주의 성격까지 더해져 생긴 별명이다. 종종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올해 57세, 어느덧 정년퇴임할 나이지만 그는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였다.

그에게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요리를 부탁했다. 그가 내놓은 야심작은 ‘무공해 산채정식’. 맛있는 음식의 기본은 식재료라고 생각하는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직접 식재료를 구입해 온다. 무공해 산채정식에 들어가는 나물도 그가 직접 강원도 정선에 가서 재배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 구입해 왔다 한다. 곤드레나물밥에 쪽파를 송송 썰어 넣은 양념간장을 넣어 쓱쓱 비비고 건곤드레나물·곤드레나물·취나물·오가피나물 등 산나물과 오가피장아찌·산마늘잎장아찌·곰취장아찌,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 ‘무공해 산채정식’. 올겨울 ‘온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다. 다른 나물은 익숙해도 오가피장아찌는 생소했다. ‘제2의 산삼’이라 불리며 약용으로 알려진 오가피. 푹 삭힌 간장 향이 은은하게 밴 오가피장아찌는 향긋하면서도 뒷맛이 쌉쌀하다.

“산채는 참기름이 들어가면 쓴맛이 나요. 들기름과 궁합이 잘 맞습니다. 나물에 따라 소금을 넣어야 할 나물, 간장을 넣어야 할 나물이 다릅니다. 건나물은 볶고, 푸른 나물은 데쳐서 무치지요. 데친 후 얼음물에 헹궈야 색이 예쁩니다. 양념이 많이 들어가면 나물 고유의 맛을 빼앗아갑니다. 우리 음식은 재료 자체의 맛과 향이 풍부하기 때문에 양념을 최소화해야 맛이 살아납니다.”

그는 정년퇴임 후에도 한식의 진정한 맛과 멋을 알리는 데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36년간 한국인과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한식을 알렸으니 여생은 해외에 나가서 한식의 위대함을 알릴 계획이라고 한다. 해외에 궁중요리 레스토랑을 오픈해 정통성 있는 한국의 맛을 선보일 것이라고. 그에게 한식 셰프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했다.

“세계는 넓고 한식이 뻗어나갈 길은 많습니다. 실력만 있으면 한식 실력을 가진 요리사는 어디서든 큰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한식 요리사를 구해달라는 데가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한식은 다른 분야 요리보다 성취감과 보람이 더 큽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사진 : 박상현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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