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상’ 수상한 김찬오 새론영농조합법인 회장

50년간 감귤 농사지으며 끊임없이 신품종 연구했죠

김찬오 회장(오른쪽)과 두 아들 김창식(가운데), 김봉석(왼쪽) 씨.
‘천혜향’ ‘진지향’이라는 감귤 품종을 아시는지. 둘 다 일반 감귤보다 크기가 2~3배 크고 껍질이 얇은데다 당도가 높아 감귤의 귀족으로 불린다. 달콤한 맛이 특히 강한 천혜향은 ‘감귤의 제왕’으로 꼽힌다. 맛도 맛이지만 만감류(작목 기간이 긴 감귤. 조생귤은 꽃핀 후 6개월 후, 만감류는 11개월 후 판매)인데 모두 출하량이 적어 비싸다. 올해 천혜향은 한라봉의 출하가격을 누르면서 ‘감귤계에서 가장 비싼 몸’이 됐다. 이 두 품종은 50년 동안 감귤 품종개발과 연구에 매진해온 제주도 농민에 의해 개발됐다. 김찬오 새론영농조합법인 회장. 속껍질을 얇게 하고 과즙을 싱그러우면서도 달게 만드는 ‘월동 비가림하우스 감귤 재배법’도 그가 개발했다. 너삼(풀)을 이용한 친환경 농법 개발, 지하수를 이용한 난방방법 역시 그의 연구로 탄생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김찬오 회장은 지난 9월 일가상을 수상했다. 일가상은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일가 김용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심사기준이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알려져 있다.

일가상 수상 후 새론영농조합원들과 첫 공식모임을 가진 김찬오 회장을 만났다. 수상의 의미를 설명하고 기쁨을 공유하는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숙연하고 진지했다. 20여 명의 조합원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행사에 참여했다. 감귤재배 농민조합이 아니라 연구원들이라고 해도 손색없었다. 조합원 절반 이상이 연소득 억대 농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김찬오 회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가상 최종 심사 날 심사관으로부터 ‘당신 합격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이 울었습니다. 상을 받은 기쁨보다 감귤과 함께한 50년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제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생 동안 더 열심히 신품종을 개발해 우리 농가의 소득증대에 기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감시자가 돼주십시오.”

김 회장이 울먹거리며 소감을 말하자 함께 울먹이는 조합원이 여럿 있었다. 김성원 씨는 “김 회장님을 보면 7전8기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태풍 때문에 농사를 완전히 망쳤는데도 포기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창훈 씨는 “김 회장과는 동네친구이자 술친구이면서 함께 땅을 일궈온 사이인데 돌이켜보면 참 역경이 많았습니다. 저는 온주감귤을 재배하다가 진지향 품종으로 바꿔서 하우스 2만6450㎡(8000평)을 경영하고 있는데 연소득이 몇 억에 이릅니다. 감개무량합니다”라고 말했다.


조합원 절반 이상이 억대 연봉

김찬오 회장의 50년 감귤 농사의 역사는 우리나라 감귤의 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제주감귤은 거의 노지재배 온주밀감(소위 조생귤)이었다. 풍작과 흉작이 교대로 반복됐는데, 풍작일 때에는 감귤 가격이 폭락해서, 흉작일 때에는 출하량이 적어서 소득이 형편없었다. 농민은 점점 더 빈농이 되어갔다. 김찬오 회장 역시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지금 방식으로는 감귤로 먹고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감귤 연구를 시작, ‘월동 비가림 하우스 감귤 재배방법’을 개발했다. 온주밀감 열매가 성숙한 후에도 따지 않고 그대로 두어 겨울 동안 완숙시켜 2~4월에 재배하는 방법을 말한다. 연내에 수확하는 감귤보다 당도가 훨씬 높은데다 산 함량이 감소하고 속껍질이 얇아져 부드럽고 달다. 노지 재배와 하우스 재배 사이 기간에 수확하기 때문에 농가의 입장에서는 연중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늦은 수확으로 2년에 한 번밖에 수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매진하게 된 것이 신품종 감귤 개발. 일본에서 한국 토질에 맞는 품종을 들여와 접목, 수년간 연구 끝에 성공했다. 1997년에는 진지향을, 2001년에는 천혜향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왼쪽부터) 김찬오 회장. 천혜향. 일가상 시상식 자료.
“일본의 감귤 역사는 400년, 제주도는 60년이에요. 일본의 감귤 품종은 수십 종에 달합니다. 그 중 제주도 토질과 기후에 맞는 품종을 가려내는 노하우가 필요하죠. 저는 딱 보면 압니다. 그다음은 맛 싸움입니다. 맛은 당과 산의 조화가 중요한데, 산이 높으면 당이 높아도 맛이 없어요. 천혜향은 이미 한국에서 실패한 품종이었습니다. 겉껍질이 노랗게 되니 다 익었다고 생각하고 딴 거죠. 하지만 천혜향은 나무에서 몇 달 동안 익혀야 제맛이 납니다. 최적의 상태로 익은 시점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진지향・천혜향 등 만감류는 하우스에서 인공적, 과학적으로 재배된다. 열매 성장기까지는 3일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껍질에 노란빛이 나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석 달 동안은 물을 전혀 주지 않는다. 영양제만 공급한다. 맛을 들이기 위해서다. 실내 온도는 25~30℃가 적당하고, 4℃ 이하로 떨어지거나 33℃ 이상 올라가면 죽는다고 한다. 온도는 지하수를 이용한 지열로 조절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23명의 조합원을 이끌고 일본의 감귤 선진지인 에히메 현 감귤 시험장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다녀와서는 연수 결과 보고서를 책자 형태로 제작, 조합원들에게 배포했다. 내년에 그는 또 하나의 신품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름하여 한라향. 맛은 뛰어나지만 껍질이 너무 얇아 저장성이 떨어지는 천혜향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야심작이다. 일본의 ‘세또미’를 천혜향에 접목해 탄생시킨 한라향은 한라봉의 저장성과 천혜향의 당도를 한 몸에 지녔다.

새론영농조합 조합원들. (왼쪽부터) 김동하, 김한우, 고창훈, 김찬오 회장, 김성원, 김경출 씨.
그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가업에 합류했다. 수학교사였던 큰아들 김창식 씨는 3년 전 합류해 4만9600㎡(1만5000평)의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새론영농조합의 대표직을 이어받았고, 둘째아들 김봉석 씨는 이 조합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감귤 판매를 책임지고 있다. 현재 친환경 유기농 전문 쇼핑몰인 ‘초록마을’에서 판매 중인 감귤은 모두 새론영농조합에서 재배한 것이다. 교사직을 버리고 농사꾼이 된 김창식 씨. 그는 농사를 하면서 삶이 더 여유로워졌다고 한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교육 공무원은 학생을 키우는 것이고, 농사꾼은 생명을 키우는 것이잖아요. 서로 비슷한 면이 있어요. 선생님을 하면서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는데, 지금은 농부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주고 있죠. 소득도 예전보다 훨씬 많습니다. 시간적인 자유도 더 많고요. 집사람이랑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20년 동안 저축한 돈보다 지난 3년간 저축한 돈이 더 많다고.”

김찬오 회장의 16만5000㎡(5만 평) 하우스에서는 천혜향이 새큼한 향을 풍기며 익어가고 있었다. 물기 머금은 진초록 천혜향은 싱그럽고 탐스러웠다. 김찬오 회장은 이 하우스 어딘가에 신품종 두 종을 실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외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그의 열정이 더 많은 감귤 농민을 끌어들이길, 그래서 더 많은 농가에 웃음꽃을 주길 기대한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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