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지질동굴학 박사, 최돈원

동굴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자산이란 걸 아시나요?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제주용천동굴에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눈 먼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동굴성 어류이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고 한다. 과거의 역사를 봉인하고 있는 동굴은 이처럼 희귀생물의 보고이면서 미래의 기후를 예측할 수 있게도 해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동굴이 이렇게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 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질동굴학 박사인 최돈원 연구원(40).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연구원으로 대전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46억 년의 나이를 먹은 지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단서를 많이 가지고 있는 보고(寶庫)가 동굴이에요. 지질학적으로 볼 때 과거는 현재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예요. 과거를 알면 알수록 미래를 예측하기도 쉽지요.”

그의 거주지도 연구 대상에 따라 바뀐다. 제주용천동굴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추진할 무렵인 2006년부터 2년 동안은 제주에서 살았고, 1997년과 1998년은 남극세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극지의 동굴을 연구했다.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의 동굴 프로젝트를 맡아 대전에서 살고있다. 우리나라에서 동굴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10여 명. 아직은 시작 단계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동굴학이 탐험과 연구 중심이라면 미국은 하이테크가 강합니다. 분석적이고요. 동유럽은 기초적인 연구에 강하고, 다양한 암석 연구도 강세예요.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 가치가 높은 동굴은 꽤 있는데, 연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왼쪽부터) 백룡동굴, 에그프라이형 석순, 동굴다이빙.
늘 흙을 묻히고 다녀서 때로는 막노동꾼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동굴 앞에 서면 설렌다는 그는 아직도 소년과 같은 호기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굴의 가장 큰 매력은 남들이 가보지 않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딘다는 거예요.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새로 동굴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봉인돼 사람 발길이 닿지 않던 곳이니까요. 동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 가끔 뻥(?)도 치죠(웃음). 농담이고요. 외국학자들이 한국의 동굴 자료를 얻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그가 동굴 전문가의 길을 택한 것은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고고학자로 나오는 해리슨 포드에 매료돼 고고학을 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지질학을 선택하면 고고학을 하는 줄 알고 진학했는데, 전혀 달랐어요. 그만큼 무지했던 거죠(웃음). 대학 1학년 때 우연찮게 동굴연구회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동굴의 세계에 첫발을 디뎠죠.”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당처물동굴.
강원대 지질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만 해도 동굴 연구의 선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단다.

“외국 도서관에 논문 복사 신청을 하면 60만원 정도 들었으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어요. 동굴은 절대 혼자 들어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에요. 발을 헛디뎌 다리를 삐거나 했을 때 부축해서 나올 사람이 없으니까요. 밧줄에 의지해 물 밑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동굴 안에서 자기도 하는 등 동굴 연구는 정말 모험의 연속입니다.”

그는 동굴 탐사 때 가까운 친구 셋을 잃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그가 동굴에 들어간다고 할 때마다 걱정하시지만, 그는 “동굴을 찾는 것은 그 친구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해식동굴.
그는 미국・뉴질랜드・호주 등지의 동굴과 남극의 빙하동굴까지 세계 곳곳의 동굴을 다녔다. 딸 둘도 어릴 때부터 동굴에 데리고 다녔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동굴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동굴의 매력 중 하나가 칠흑 같은 어둠과 만나는 겁니다. 평창 백령동굴에 가면 가이드가 일부러 동굴의 어둠과 마주하게 해줍니다. 마지막 광장에 가면 헬멧의 랜턴을 다 끄고 30초 정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게 하는 거지요. 그러면 똑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립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동굴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지요.”


동굴에 가면 칠흑 같은 어둠과 만나보세요

우리나라의 동굴 중 다른 나라와는 차별화되는, 자연유산으로서 가치 있는 동굴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리나라 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한 곳이 강원도 삼척의 관음굴이에요. 경관 측면에서 세계 어느 굴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죠. 또 하나는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을 들 수 있어요. 조개껍데기로 덮여있는 동굴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전 그곳이 바다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사실은 바닷가 모래가 바람에 쓸려와 덮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는 2006년 9월부터 2년 동안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과의 전문연구팀(현재 세계유산관리본부)에서 일했다. 자연유산 등재신청을 위한 신청서 작성, 앞으로의 관리계획, 현장예비실사 등의 일을 담당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호주의 전문가가 실사를 나와 그가 따라다니며 우리 동굴에 대해 설명해줄 때였다고 한다.


“실사하러 온 사람이 용천굴 끝까지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더 들어가면 훼손할 것 같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동굴의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해 저를 감동시켰어요.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인이 오히려 그 가치를 아는 거죠.”

우리 동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은 이렇게 알아보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오히려 무지한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우리의 중요한 자산인 동굴을 제대로 보호하고, 동굴의 가치를 일반인에게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동굴 전문가’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동굴에 지질학이나 동굴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한 명도 상주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 미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등지는 동굴에 대해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상주하면서 동굴의 변화를 면밀히 체크하고, 조명 등 인위적인 장치가 동굴을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고 그는 말한다. 동굴개방도 관광용과 연구용을 철저히 구분한다는 것. 우리나라도 동굴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세계적으로 동굴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는 요즘, 그가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사진 : 김성준
사진제공 :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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