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예비 사회적 기업 ‘빛트인’ 설립한 정천식, 나혜란, 김주영 씨

대학생 3인방, 우리 농산물 제값 받아주려 사회적 기업 만들다

배추값이 한 포기에 1만 원이 넘을 정도로 폭등했지만 배추 농사를 짓는 농가의 살림살이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많은 농민들이 배추값이 오르기 전, 이미 ‘밭떼기’라는 형식으로 중간 유통상에 헐값에 넘긴 탓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산지가와 소비자가의 차이를 큰 폭으로 벌려놓는 복잡한 유통과정은 농촌을 어렵게 하는 고질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빛트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만든 예비 사회적 기업. ‘우리 농산물이 제값을 받고, 우리도 수익을 내는 윈윈(win-win) 시스템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빛트인은 올겨울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대학생 사회혁신 프로젝트-희망별동대’에서 출발했다. 대학생들에게 직접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이 사업에 참여한 정천식(경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씨는 농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팀을 만들었다.

원래 정씨는 조리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리과학과에 진학해 예비 요리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요리 공부를 하면서 우리 농산물과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농산물을 경제적·산업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서 수익구조의 모순을 알았다고 한다.

“1학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뒤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먹을거리를 문화, 유통 등의 관점에서 보니 문제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필요 이상 많이 먹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잉생산이 일어나고, 그것이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 소비행태를 유통이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또 많은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었고, 이게 바뀌지 않으면 유기농업의 확산도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 그는 진로를 수정했다. 요리는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으니 좀더 젊은 나이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조리학과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전공도 바꾸었다. 그러던 중 희망별동대에 참여하면서 농촌도 살리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돈도 버는, ‘사회적 기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사이 초창기 멤버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김주영(경희대 생물학과 3학년), 나혜란(홍익대 광고디자인과 4학년) 씨가 차례로 합류해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 이들은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이. 세 사람이 함께하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광고디자인을 공부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디자인’을 꿈꾸고 있던 혜란 씨가 우연히 빛트인의 활동 내용을 알게 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이것을 다시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주영 씨가 보면서 세 사람은 ‘빛트인’ 블로그에서 모인 것. 마치 파도타기처럼 진행된 우연한 인연에 대해 정씨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라 꼭 필요한 인재들을 얻은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이것이 빛트인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취업 걱정 없는, 예비 사업가들

“대학생이니까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여러 농가를 방문했는데 잘사는 농민이나 못사는 농민이나 한결같이 ‘판로’ 문제를 지적하더라고요. 거기서 해법을 찾아 수익을 내는 모델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렇게 시작한 첫 사업은 ‘배로 만든 잼’이었다. 배 농사를 짓고 있는 한 농민이 자신의 트위터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배가 지금 저온창고에 몇 개월 째 쌓여 있다. 썩기 시작해 좀더 지나면 아예 팔기 어려울 것 같다. 좋은 데 쓰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이것을 본 정씨는 직접 그를 찾아갔다. 대학생들의 발상을 신선하게 여긴 그는 배를 무상으로 기증했고, 정씨는 잼을 만드는 기술과 시설을 가진 다른 지역 농가의 도움으로 약 200병의 배잼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알음알음으로 전량을 판매, 1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왼쪽부터 김주영, 정천식, 나혜란 씨.
이어진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은 미니 단호박이었다. 일본 농협에서 운영하는 직판장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잇는 유통방식을 시도해본 것. 경기도 양평 유기농가에서 공급받은 미니 단호박 400개를 작은 트럭에 싣고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팔았다. 김주영 씨는 “트위터에 ‘미니 단호박을 팔려고 한다’는 글을 올렸더니 어느 분이 그 자리를 추천해주었다”며, “목이 좋은 곳이라 예상외로 많이 팔았다”고 한다.

“하지만 수익은 별로였어요(웃음).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1만 원 남짓 남더라고요. 그나마 저장성이 있는 품목이라 다행이었지, 채소였다면 아마 망했을 거예요. 좋은 경험을 했지요.”

이후 또 다른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 태풍 곤파스가 큰 피해를 입힌 충남 예산의 사과 농가 사진 한 장이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낙과 판매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농가를 방문했지만, 땅에 떨어진 과일들은 벌써 썩고 있었다. 농가에서 바라는 것 역시 낙과가 아니라 나무에 달려 있는 사과의 처리였다. 떨어지지만 않았을 뿐, 강한 바람에 상처가 많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 마침 경희대에서 진행된 ‘천 개의 직업’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빛트인은 행사장에서 사과를 팔았고, 온라인 주문도 받았다. 가격은 농가에서 직접 책정하도록 했고, 거기에 약간의 수수료를 붙였다. 당시 사과 가격이 폭등할 때라 맛있고 저렴한 빛트인의 사과는 인기가 좋았다. 농가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도 들었다.

이처럼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이들은 조만간 파주 헤이리에 있는 한 사회적 기업과 손잡고 산지 직거래 형식의 ‘파머스 마켓’을 위탁 운영할 계획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일찍부터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들의 교육 콘텐츠 개발도 구상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안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이들은 “학교생활과 병행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던 일이라 정말 신바람 나게 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저희는 이미 사업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 취업 걱정도 없어요(웃음). 무엇보다 대학생들이 나름의 해결방안을 찾아 그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의 활동이 언론에 한 번씩 소개될 때마다 농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연락이 많이 와요. ‘우리도 이런 상품 있는데 한번 맡겨보고 싶다’고요. 지금은 정말 작은 규모이지만 이게 커져 하나의 성공사례가 돼 이런 형태가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업 확장을 위해 많지는 않지만 매출의 50%는 종잣돈으로, 10%는 사회공헌기금으로 모으고 있어요. 농가에도 이익이 되고, 저희도 돈을 벌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착한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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