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회 석권한 국가대표 바텐더 김현진

우리 전통주로 만든 칵테일, 세계인이 좋아해요

다양한 맛과 빛깔을 지닌 칵테일은 ‘술의 예술’로 불린다. 외국에서 유입된 문화이지만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고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바텐더들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칵테일 문화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김현진(반얀트리 서울, ‘페스타 바’ 지배인) 씨다. 그는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칵테일 대회에서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맛을 찾아내고,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는 그는 정말 ‘타고난’ 바텐더였다.

그를 만난 곳은 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였다. 세계적인 리조트 호텔 체인인 반얀트리가 옛 타워호텔을 인수해 도심형 리조트로 새롭게 단장한 곳으로 지난 6월 초 문을 열었다.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일하던 그는 반얀트리 서울 오픈과 함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바텐더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 사회에서 그가 걸어온 길은 ‘개척자’에 가깝다. 국제바텐더협회(IBA) 정식 회원국이 아니어서 국제대회 참가조차 할 수 없던 현실에서 그는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참가자격을 얻어냈다.

“국내대회에서 1위를 하면서 국제대회에서도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각국 바텐더 협회장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냈어요. ‘나는 한국 대회에서 우승한 바텐더다, 외국에서 경험을 쌓고 싶으니 출전을 허락해달라’고요. 87개국에 보냈는데 그중 9개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나마 긍정적인 답변은 단 두 개, 홍콩과 싱가포르뿐이었지요.”

그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했다”며 “홍콩 방문 길에 담당자를 직접 만났다”고 한다. 그의 열정을 높이 산 대회 담당자 덕분에 난생처음 국제무대를 밟았지만 결과는 예선 탈락. 첫 국제대회라 모르는 것이 많았던 그는 뼈아픈 패배를 안고 돌아와야 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예선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열심히 준비하는 그를 눈여겨본 싱가포르협회로부터 “아시아태평양바텐더대회에 출전해보라”는 연락을 받은 것. 그는 첫 대회 때 녹화해온 자료들을 반복해 보면서 입상자들의 기술을 연구했다. 이처럼 철저히 준비한 재도전에서 준우승을 하며 그는 세계 바텐더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에는 국제바텐더협회가 주관하는 ‘일리 팬시 칵테일 대회’에서 우승하며 또 한 번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이 대회는 국제바텐더협회 공인 연수과정인 ‘존 화이트 클럽(John White Club)’을 마친 사람만 참가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까다로운 대회로,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존 화이트 클럽은 8주간 강도 높은 교육이 진행돼 바텐더에게는 엘리트 코스로 불려요.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 않았죠. 그런데 이것 역시 우리나라가 국제바텐더협회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고민 끝에 싱가포르대회에 참가했을 때 IBA 회장을 찾아가 ‘꼭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지요. 그 덕분에 무사히 과정을 마쳤고,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었죠.”

대회 때마다 그는 파격과 창의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기존 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거나 전혀 다른 재료들을 접목시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장기. 다양한 재료를 찾기 위해 제과제빵 재료도 눈여겨보고, 약재 시장도 자주 돌아본다. 전통주를 이용해 칵테일을 만드는 방법도 연구중이다. 특히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3일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대나무즙을 이용해 만든 ‘죽력고’는 그가 스카치·보드카·데킬라 같은 외국 술을 대신할 수 있다고 꼽는 훌륭한 전통주. 증류주인데다 알코올 도수가 40도 정도라 외국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 때 한국의 밤 행사가 있었어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상이 모인 만찬 자리였는데 에드워드 권이 요리를 담당하고, 제가 칵테일을 맡았죠. 인삼주 토닉이 가장 인기가 많았고, 초코 시럽으로 무궁화를 그려 내놓은 에스프레소 마티니도 반응이 좋았어요. 350명분을 혼자 만드느라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고, 우리 칵테일의 가능성도 발견했지요. 세계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저만의 칵테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충북 음성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술과 친했다. 어른들이 주는 막걸리를 넙죽넙죽 잘 받아먹어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칵테일에 관심을 가진 것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해 조주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부터. 대학 4년간, 마지막 겨울방학을 제외한 7번의 방학을 모두 배낭여행으로 보내면서 여러 나라의 바, 클럽을 돌아본 것도 그가 바텐더를 꿈꾸게 된 계기다.

“돈이 없으니 직접 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메뉴판을 꼼꼼히 살피며 눈과 머리에 담았어요. 그러다 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인터콘티넨탈호텔 바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현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칵테일 문화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데도 바텐더는 외국과의 교류가 아예 없는 폐쇄적인 조직이더라고요. 일은 재미있었지만 별다른 비전을 찾지 못해 서른 살이 되면서 방황을 좀 했어요. 파일럿이 되려고 외국 비행학교에 입학한 적이 있는데, 학비도 비싸거니와 미분·적분 같은 것도 잘 알아야 한다고 해서 몇 달 만에 포기했어요(웃음). 다시 바(bar)로 돌아와 ‘이왕 할 거면 최고의 바텐더가 되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과의 약속대로 ‘최고’가 되었다. 많은 여행에서 익힌 국제 감각과 영어 실력, 창의성은 그가 꿈을 펼치는 데 날개가 되어주었다. 술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해 바텐더를 천직으로 여기는 그는 이제 후배들을 키우고, 칵테일 문화를 넓히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칵테일 산업이 매우 발달해 바텐더가 인기 직종으로 꼽히는 일본·대만처럼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쟁쟁한 후배들이 많아져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는 관광과 학생이 자신의 롤모델에 대한 리포트를 써야 하는데 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부족하지만 바텐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칵테일 문화를 넓히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사진 : 장진영
▣ 국가대표 바텐더 김현진이 제안하는 여름 칵테일


① 마루미르(하늘용)
월드컵 시즌을 겨냥해 새로 개발한 것으로 한국인의 기상을 표현한 칵테일. 인삼 한 뿌리를 썰어 으깨고 인삼을 넣어 숙성시킨 보드카에 망고주스, 레몬주스, 퍼노드를 잘 섞는다. 버찌와 석류로 만든 붉은빛 시럽을 떨어뜨려 플로팅(재료들의 비중 차이를 이용해 층이 생기게 만드는 기법)한 뒤 붉은 고추로 장식한다. 인삼 향과 매콤함이 어우러진 한국식 칵테일로 이름도 순우리말로 지었다.

② 아쿠아 레모네이드 Aqua Lemonade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무알코올 음료로 허브를 이용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테라피 효과가 있다. 레몬그라스 에센스를 한 방울 떨어뜨린 뒤 열대과일인 리치와 로즈마리 잎을 넣어 향을 낸다. 레몬과 설탕으로 만든 ‘스위트 사워 믹스(sweet &sour mix)’를 넣고 탄산수를 붓는다. 로즈마리가 머리를 맑게 해주어 더위로 인한 피로를 푸는 데 그만이다.

③ 프레시 마티니 Fresh martini
생강과 오이를 으깬 뒤 보드카를 넣는다. 레몬주스와 설탕시럽을 넣어 잘 섞은 뒤 거름망을 이용해 찌꺼기를 걸러낸다. 기왓장 무늬로 조각한 오이 속살과 껍질로 장식하면 싱그러운 오이 향과 맵싸한 생강 향이 어우러진 신선한 마티니가 완성된다.

④ 블루 로열 Blue Royal
칵테일 재료 중 하나인 블루 큐라카오에 화이트 럼을 동량으로 섞는다. 라임주스에 샴페인 칵테일, 아카시아 꿀을 넣고 잘 젓는다. 아카시아 향 가득한 청량감이 특징인 샴페인 칵테일로 시원한 블루 컬러가 여름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⑤ 오이 레모네이드 Cucumber Lemonade
오이에 스위트 사워 믹스를 넣고, 소다수를 부은 뒤 잘 저으면 완성. 시원하고 신선한 오이 향이 가득해 여름철 음료 대용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오이 슬라이스로 장식해 멋을 낸다.
  • 201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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