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적 기업] 문턱없는밥집

양껏 먹으면서 형편껏 밥값 내는 유기농 식당

이윤 추구가 아니라 공익(公益)을 주목적으로 하면서 기업으로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저소득층의 문제 청소년들을 요리사로 훈련시키면서 시작된 피프틴 레스토랑,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요구르트와 우유를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그라민-다농 푸드 컴퍼니’, 판매권을 노숙인에게만 주면서 자립을 돕는 잡지 <빅 이슈>, 빈곤층을 채용해 가전제품을 재활용하는 ‘앙비’ 등이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예. 영국에서는 5만5000여 개의 사회적 기업들이 활약하면서 전체 고용의 5%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과 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뿌리내리고 있다. 빈곤층의 자립을 도울 뿐 아니라 자원을 재활용하고, 환경을 살리고, 나눔 정신을 전파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한국의 사회적 기업들을 찾아간다.
‘문턱없는밥집’에서 일하는 직원들. 가운데가 심재훈 매니저.
돌풍이 부는데다 후드득후드득 우박 같은 비가 내리던 4월 말. 봄날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산한, 이런 날은 뭐 뜨끈한 것으로 속이라도 채워야 사는게 좀 녹록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날, 서울 서교동에 있는 ‘문턱없는밥집’을 찾았다.

마룻바닥에 갈색 좌탁들이 놓여 있는 99㎡(30평) 남짓한 공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입구에 있는 돈 통에 ‘형편껏’ 밥값을 내고, 배식대 앞에 줄을 섰다. 현미에 가까운 8분도 쌀과 찰보리를 섞어 지은 밥을 그릇에 담고 감자볶음과 무생채, 상추-치커리 무침을 차례로 올린 뒤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었다. 여기에 된장과 고추장, 야채 간 것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는 것. 세 가지 찬이 들어간 비빔밥과 된장국이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다.

그런데 비빔밥에 들어간 재료를 따져보면 결코 소박한 것이 아니다. 식재료는 모두 국산, 그것도 유기농 재배한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쓰는 달걀은 놓아 키운 닭이 낳은 유정란이다. 주부라면 알 것이다. 유명 식품회사에서 만든 된장이나 고추장, 반조리 식품 중 국산 재료만 쓴 것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건강에 좋기는 하지만 비싼 가격때문에 망설여져 유기농 식품을 들었다 놨다 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문턱없는밥집’은 변산공동체, 두레생협, 한살림, 팔당생명살림 등에서 들여온 ‘검증된’ 유기농 농산물만으로 음식을 만든다. 고춧가루·마늘·된장·고추장 등 양념 재료도 모두 유기농이다. 다른 식당에 비해 재료값이 훨씬 많이 들 것 같은데, 밥값은 ‘1000원 이상 형편껏’ 내면 된다. 밥값을 내는지 안 내는지 감시하는 사람도 없다. 자세히 지켜보지 않는 한 누가 얼마를 내고 밥을 먹는지 알 수가 없다. 밥값으로 얼마를 낼지는 순전히 먹는 사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도 누구든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 밥집, 말 그대로 ‘문턱 없는 밥집’이다.



고춧가루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 비워야

그곳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자극적인 맛이 거의 없는, 그저 수수한 집 밥 같은 식사였다. 1식3찬이 원칙이라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세 가지인데, 그때그때 바뀐다고 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정해진 점심시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고 들고 났다. 직장인, 학생, 교수와 제자들 등 무리 지어 온 손님들 사이 드문드문 혼자 밥먹는 사람도 많았다. 양복과 넥타이를 단정히 갖춰 입은 직장인부터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사람, 개성 넘치는 차림의 멋쟁이 젊은이까지 연령층도, 직업도, 개성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먹는 밥에는 차이가 없었다. 서양 속담에 ‘You are what you eat’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그런데 자신이 먹을 것을 전적으로 스스로 선택하기란 어렵다. 어떤 식당을 드나드는지, 어떤 재료로 밥을 해먹는지는 경제력과 계층에 따라 갈린다. 유기농이 건강에 좋은 줄은 알아도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다. 문턱없는밥집은 이런 상황에서 ‘밥상 앞의 평등’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손님이 밥값을 내는지 안 내는지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문턱없는밥집이 유독 신경 쓰는 게 있다. 자신의 양만큼 밥과 반찬을 덜어 고춧가루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식사가 끝나면 빈 그릇에 숭늉을 부어 마시는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 조각으로 그릇을 싹싹 닦아 먹어야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익숙한 듯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떠났다. 친구나 직장 동료, 혹은 교수와 제자들로 보이는 무리는 왜 건강을 위해 유기농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음식을 왜 남기면 안 되는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 점심때 100명 안팎의 손님이 찾는데, 그 중 절반 정도가 거의 매일 오는 단골입니다. 근처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아르바이트하는 젊은이나 비정규직 근로자, 건강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분 등 다양하죠.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식습관 교육을 시키기 위해 가족단위로 찾는 분도 많아요.”

‘문턱없는밥집’이 처음 문을 연 것은 2007년.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지내다 전북 부안군 변산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변산공동체’를 만든 윤구병 씨가 독일의 ‘경계없는식당’을 모델로 만들었다. ‘문턱없는밥집’은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밥값을 반만 받는 ‘경계없는식당’보다 더 나갔다. 실제 비용의 4분의 1도 안 되는 1000원만 내면 누구든 밥을 먹을 수 있게 한 것. 이 때문에 생기는 적자는 저녁에 파는 밥값으로 충당한다. 저녁에는 버섯전골, 삼합, 녹두전, 황태구이 등 다양한 음식을 내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정도라 한다.


‘문턱없는밥집’의 심재훈 매니저는 “수익을 많이 내기보다 나누는 일을 잘하는 게 우리 밥집의 목표”라고 말한다. 밥집에서 생긴 수익은 공부방 지원 등 사회적인 목적에 쓰이고, 작은 식당이지만 주 40시간 근로 기준을 지키는 등 식당 근무자의 복지도 중요시한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들에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 심 매니저는 “유기농 재배한 농산물은 미량원소까지 모두 섭취할 수 있어 영양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농약은 잡초뿐 아니라 땅속 미생물까지 모두 죽여 영양가 없는 땅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 땅에 인위적으로 비료를 줘서 키운 농산물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유기농법은 우리 땅과 몸을 같이 살리는 길입니다.”


그에게 이 식당의 그릇당 원가가 얼마고, 손님들이 얼마씩 내고 가는지 슬쩍 물었다. “손님들이 알면 민망해할지도 모른다”며 대답을 꺼리던 그는 점심밥의 원가는 그릇당 4700원 정도인데, 손님들이 평균 내는 밥값은 처음에는 800원이었다가 점점 올라 지금은 2500원쯤 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1000원 밥집’으로 알려져 고급 승용차를 몰고 와서 1인당 1000원씩만 딱 내고 가는 손님도 많았어요. 그러다 사정을 알게 된 손님들이 월급이 50만 원 이하일 때는 1000원, 250만 원일 때는 5000원 등 밥값을 내는 기준을 마련해 붙여놓은 적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뗐죠. 그것도 위화감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돈 통을 정리하다 보면, 1만 원짜리 5장이나 10장이 한꺼번에 접혀 있어 ‘눈에 안 보이는 후원자’의 존재를 느낄 때도 있다. 아르바이트하던 자리를 잃고 집세까지 올라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가 “밥값을 내기 어렵다”고 고백해 한동안 공짜 밥을 먹다 일자리를 찾은 후 다시 돈을 내고 밥을 먹기도 했다. 밥집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눔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턱없는밥집’은 얼마 전 인천 계양구청 앞에 2호점을 열었다.

사진 : 최영대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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