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셋넷학교 교장

탈북 청소년의 따뜻한 둥지를 만드는 남자

여의도와 영등포를 가르는 여의도 샛강의 영등포 쪽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철 파이프와 건축용 패널로 둘러싸인 공사현장이 나타난다. 이곳 2층에는 변변한 간판 하나 걸지 못한 ‘셋넷학교’라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가 있다.

중・고등 교육과정 각 1년 3학기씩 운영되는 셋넷학교. 정식 교육기관이 아닌 순수 비영리 민간단체이기에 탈북 청소년들이 셋넷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중・고등 학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셋넷학교는 주간에는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문화・예술・사회통합교육, 직업교육을 하고, 야간에는 검정고시 교육을 한다. 현재 총 26명의 학생들이 두 번째 고향 서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방인이 아닌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지식을 100이라고 한다면 우리 ‘셋넷학교’에서는 60쯤이라도 가르쳐 세상을 살아 갈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예요.”


셋넷학교를 만들고, 지금껏 지켜온 박상영(48) 교장의 말이다. 박상영 교장은 명문대를 나와 독일 유학을 꿈꾸던 장교출신의 잘나가던 증권맨이었다.

“1980년대 후반, 증권사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증시가 사상 처음 1000포인트를 뚫더군요. 돈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들어왔어요. 갓 20대이던 제가 꽤 좋은 차를 굴렸고, 매일 밤 밴드를 불러다 놓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생활을 1년 반 이상 이어갔어요. 거칠 게 없었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요. 가슴 속에서 ‘야, 너 뭐하는 거야! 이렇게 살려고 군복도 벗고, 유학도 미뤘냐’라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군요.”
그런 삶에 질려서였을까. 1991년 다니던 교회를 통해 알게 된 대화문화아카데미라는 NGO를 알게된 후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화 파트 스태프를 맡고 있던 극작가 이강립 씨를 만났어요. 그분을 만나면서 NGO 생활이 참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됐죠. ‘회사 그만두고 여기로 출근하겠다’고 하자 ‘지금 받는 연봉의 3분의 1도 안될 걸’ 하시더군요. 그런데 6개월 후 이강립 씨가 대학으로 가면서 후임으로 저를 추천해주더군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NGO에 몸담게 된 거지요.”

문화 파트 스태프 생활은 10대 아이들과 박상영을 만나게 해주었다. 특히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거리를 방황하던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교육’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그를 자극했다. 그는 대안교육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1995년, 1세대 대안학교인 ‘따또학교(따로 또 같이 학교)’라는 중등 대안학교를 만들어 6년 동안 이끌었고, 2001년에는 공연예술 분야로 특화된 대안학교 ‘난나학교(나는 나 공연예술아카데미)’를 만들며 한국 대안교육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도 했다.


학교 밖으로 아이들을 밀어낸 한국 사회

대안교육가이던 그가 어떻게 탈북 청소년에게 눈을 돌리게 됐을까.

“개인적으로 떠났던 중국 용정 의료봉사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입을 열었다.

“2002년 용정에서 탈북 아이들 셋을 만났어요. 호기심에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고,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고 ‘백두산 구경시켜주겠다’며 아이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랐어요. 그들과 며칠 동안 지내면서 정이 들었지요.”

그리고 2년 후,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중국 용정에서 만난 세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와, 신기하더라고요. 반가움과 기쁨이 교차했는데 그보다 아이들 입에서 나온 안타까운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어요. ‘참 잘됐다. 이제 언제 잡혀 갈지 떨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아이들은 한국 사회와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표정도 어두웠어요.”

셋넷학교 선생님들과 박상영 교장(가운데).
아이들이 전해준 탈북 청소년의 한국살이는 상처 투성이였다. 한국 사회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차별, 그 차별 속에서 한국 아이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콤플렉스로 탈북 청소년들은 한국 안의 또 다른 이방인이 돼 있었다.

그는 이제 분명 대한민국 아이들인 탈북 청소년을 여전히 외국인,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 대해 말했다.

“한번은 아이를 좋아하던 탈북 청소년이 학교 졸업 후 어린이집에 취직했다고 기뻐하며 연락을 해왔어요. 그런데 며칠 후 울면서 저를 찾아왔더군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제가 쓰는 말이 북한말 같다며 학부모들이 난리가 났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린이집에서 ‘어쩔 수 없으니 나가달라’고 했대요. 이건 한 예에 불과합니다.”

그가 물었다.

“탈북한 아이들의 꿈이 뭔지 아세요?”

기자는 답하지 못했다.

“한국 아이들처럼 말하고, 공부하고, 노는 겁니다. 자기들은 섞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거지요. 학교에서도 북한 출신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니, 중국교포나 중국 유학생이라고 둘러댑니다. 심한 경우 ‘강원도 출신이라 사투리가 심하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북한에서 왔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할 만큼 큰 상처라는 것이지요.”

아이들 상처를 다독여주고 싶었던 그는 2004년, 서울 동숭동 낙산공원 밑 한 건물 지하 26㎡(8평)짜리 공간을 빌려 셋넷학교의 문을 열었다.

“우리가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못도 박으면서 학교를 꾸몄어요.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탈북 청소년의 수준에 맞춘 국어・영어・수학 같은 교과서도 만들었지요. 기분 좋았죠.”

그렇게 6년, 그가 고민을 얘기했다.

“역시 돈이죠. 우리는 예산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죠. 지금까지는 다행히 자원봉사자와 선생님들이 자기 돈과 시간을 기꺼이 내주셨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화사업 공모에 응모해서 받은 돈으로 간신히 버텨왔습니다. 나라 경제도 어렵고 모두 힘든 상황에 저희만 어렵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셋넷학교는 전국 다섯 곳의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중 유일하게 종교계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곳이다.

“(종교계, 정부)지원을 받으면 아이들에게 제약이 많아져요. 정부와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다시 그 틀 안으로 넣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영영 이방인, 외국인이 되어 우리 사회의 뒤편에서 살아가야 할 겁니다.”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박 교장은 스스로를 “매우 이기적인 인간”이라 했다.

“공명심, 사회사업 이런 거 잘 몰라요. 그래서 더 걱정이에요. 벌써 6년째 학교를 맡고 있는데, 학교에 아이들이 아닌 제 색깔이 들어갈까 봐서죠. 제 색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이들을 또 다른 틀에 구속하는 거잖아요. 또 누군가 저 대신 셋넷학교를 이어갈 때, 제 흔적이 장애가 될까 봐 걱정도 되고요. 저는 셋넷학교만큼은 제가 아닌 우리 아이들의 냄새가 나는 곳이 됐으면 해요.”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