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용 감독이 크랭크인하는 영화 원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 박병두 경위

시와 소설, 시나리오 쓰는 글쟁이 경찰관

수필가・시인・소설가로 활동하는 현직 경찰관. 펜과 총이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중의 삶을 살아가는 박병두(46) 경위가 이번에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한다. 자신의 장편소설 《그림자 밟기》(2006년)가 영화로 제작되면서 직접 시나리오를 쓴 것. 이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등을 감독한 곽재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박병두 경위는 1984년 KBS TV문학관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행려자〉로 입선하고, 1992년 <월간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1996년 <문학세계>를 통해 다시 시인으로 등단, 1998년에는 첫 장편소설 《유리 상자 속의 외출》을 내놓으며 소설 세계에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소설가・수필가・시인 뭐 그런 거창한 명칭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 불리는 게 편해요”라며 웃었다. 《그림자 밟기》는 그가 경찰관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상처이자 지우기 힘든 흉터를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1990년이에요. 한 파출소에 근무할 때였죠. 관내 성폭행 사건 현장에 출동해 성폭행당한 주부를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당연히 상부에 보고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성폭행당한 주부가 ‘수사가 시작되면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것’이라며 ‘평생 곱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애원하더군요.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남편이 이 일을 알면 가정도, 인생도 끝난다’고 통사정 했습니다.”

20년 전 그 일은 그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는 채 상처로 남아 있는 듯했다. “지켜주고 싶었다”는 말로 그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보고하면 수사가 시작될 텐데, 피해자가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고통스러워할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어요. 저도 경찰이기 전에 인간이기에 그분의 심정이 이해되고,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끝난 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성폭행범들이 적반하장으로 ‘남편에게 알리겠다’며 그분을 계속 협박했던 모양이에요. 남편이 결국 아내가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어느 날 남편이 저를 찾아와 ‘아내가 다 말해줬다’며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다’고 하더군요. 더 숨길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때 상황을 이야기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편이 다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넘겨짚어 물어봤던 것입니다. 성폭행범들은 잡혔지만 부부는 이혼했고, 저는 사건을 은폐한 비위(非違)경찰로 몰리면서 정직 처분을 받고 한동안 경찰을 떠나 있어야 했어요. 결과적으로 제가 그 부인에게 했던 약속도 지켜주지 못했어요.”

이 이야기가 소설 《그림자 밟기》로 출간된 후인 2007년 초, 소설을 읽은 곽재용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써달라는 곽 감독의 부탁을 “제 글로 뭘”이라며 몇 번 물리치다 펜을 들었다. 1년 반 만에 시나리오가 나왔고, 제작비를 확보해 오는 6월 크랭크인한다.


세상 경험하려 고물상 아르바이트했던 게 글쓰기 바탕이 돼

그는 스스로를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감성’은 독하고 모질게, 험하고 거칠게 세상과 부딪혀야 할 경찰관 박병두에게 늘 무거운 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경찰이라는 직업을 버릴 수 없었다. 경찰관 박병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중학교 때 누나와 목포여상 근처에서 자취를 했어요. 다섯 가구가 함께 살았는데, 남자라고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 중 남편과 저, 두 사람밖에 없었어요. 신혼부부가 살던 집에서 돈이 없어졌는데, 경찰이 저를 범인으로 지목하더군요. 경찰에 잡혀가 사흘간 유치장에서 욕먹고, 맞아가며 조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 남편이 유흥비로 쓰기 위해 생활비를 슬쩍해서 며칠 잠적한 거였어요. 경찰서를 나서며 햇살을 받는데 왜 그리 서럽게 눈물이 나던지.”

그 사건은 세상 모르던 그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집에 돌아와 혼자 골방에서 하루 종일 생각했어요. ‘이런 걸 권력이라고 하는구나. 나같이 억울한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힘이 생기면 엉뚱한 데 쓰지 말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약한 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 뭐 그런 거였죠. 그때 처음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경찰이 되면 이 세상의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겠다’던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어요. 그게 제가 지금껏 경찰에 남아 있는 이유지요.”

그의 글쟁이로서의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 진학보다는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어요. 집 근처 고물상 아저씨를 보니 전국을 다니며 고물을 주워 오더군요. ‘야, 나도 저거 하면 세상 구경 실컷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저씨를 졸라 고물상 아르바이트를 했죠. 바닥에서 본 세상이란 게 참 재미있더라고요. 그걸 일기 쓰듯 적어두었죠.”

고물을 줍고 다니다 땅바닥에서 주운 신문이 그와 글을 연결해주었다.

“신문을 뒤적이는데, ‘KBS TV문학관 극본 공모’ 라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사람들한테 말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극본이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행려자〉란 제목으로 응모했어요. 드라마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입선했어요.”

극본 공모 입선 덕에 1986년 KBS 작가교육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1년 반쯤 공부할 수 있었어요. 태어나 처음 배운 체계적인 글쓰기였죠. 이론도, 습작도 참 재미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글 쓰는 즐거움’을 처음 맛본 것 같아요.”

1988년 경찰에 입문한 후에도 그의 글쓰기는 이어졌다.

“글쓰기도 환경의 지배를 받더군요. 원래 극본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24시간 쪼개 살아야 할 만큼 빡빡한 생활이 이어지는 순경 시절에는 긴 글을 쓴다는 게 사치에 가까웠어요. 숨 가쁘게 스쳐가는 현장의 일들과 생각을 일기 쓰듯 짧은 토막글로 메모했다가, 당직 때 책상 앞에 앉아 다듬었지요.”

그렇게 몇 년, 시간이 흘러 그의 글들은 수필이 되고, 시가 되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습작을 했던 거죠. 등단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 글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느낄까?’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문예지에 제 글을 보내봤어요. 생각지 못하게 등단까지 하게 된 사연이에요.”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 “어둡고, 슬프고, 우울하고, 외로움이 가득한 글”이라 했다.

“살인・강도・강간・방화・자살 등을 늘 접해야 하는 경찰이란 제 직업과 글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겠지요. 결국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제 경험과 환경이 글에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요.”

지난해 말까지 수원 고등동 파출소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그곳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록한 시집 《고등동 사람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우울하고 외롭기보다는, 애환이 있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로 채워가고 있다”며 웃는다.

“경찰, 또 글쟁이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찰이란 직업으로도, 글 쓰는 사람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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