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레이싱계 석권한 레이서 김의수

레이싱 잘하는 비법요?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느냐에 달렸어요

525마력짜리 육중한 쇳덩이, 그 ‘괴물 같은 놈’을 몰고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레이스의 최강자인 카레이서 김의수(38). 1993년 첫 레이스를 시작해 올해로 18년째인 그는 여전히 20대와 30대 초반 혈기 왕성한 선수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레이싱 최고 클래스인 슈퍼6000(배기량 6000㏄ 차량경주) 여섯 번의 시리즈 중 네 번의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으로 종합 1위를 차지했고, 최고의 카레이서에게 주어지는 한국모터스포츠대상 ‘골든헬멧’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올해 2월, ‘CJ 오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종합 슈퍼6000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자동차 레이싱계를 평정했다.

레이싱의 비법이 뭐냐고 묻자 그는 “아이고, 저보다 훨씬 빨리 달리는 사람들 정말 많아요”라며 “차 가지고 도로에 나서면 우리나라 사람은 모두 ‘베스트 레이서’거든요”라고 농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동차 레이스는 그저 멋있게, 빨리 달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자동차 레이스는 100m 달리기가 아닙니다. 서킷을 수십 바퀴 돌고서야 승부가 나는 경기죠. 빨리 달리기보다 완주할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예요. 어차피 시속 300km는 넘나들어야 하는 스포츠죠. 경쟁자들도 제가 내는 속도만큼은 달립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가장 빠른 레이서가 되는 거죠.”

그는 “자동차를 타는 것과 세상 사는 것이 다르지 않다”며 말을 이었다.

“기다릴 줄 알고, 절제할 줄 아는 게 답이라면 답일까요? 출발선에 나란히 서 있는 후배들을 보면 모두 자신들이 주인공이 돼 차를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인간과는 달리 차는 기계입니다. 한계가 있어요. 한계를 넘어서려고만 할 게 아니라,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능력을 잃지 않게끔 살살 다독여가며 함께 달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가끔 후배들에게 ‘뜨겁게 끓는 피만큼이나 때론 혈기를 누를 줄 아는 여유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지요. 저 역시 그걸 아는 데 한참 걸렸어요.”

그와 자동차의 첫 인연은 네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삼촌의 차인 ‘브리샤’를 몰고 집 앞 골목을 200m 쯤 달리다 어른들에게 붙잡힌 것이 그의 첫 드라이브다. 그가 자신과 차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초등학교 때 본격적인 운전을 했어요. 아버지 몰래 친구들을 아버지 차에 태우고 울산 시내를 돌아다녔죠. 그때 인기 좋았어요. 하하하. 중·고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당신보다 제가 운전을 더 잘한다며 친척이나 친구 분들과 약주를 하시면 으레 제게 대리운전을 시키셨죠. 또 장거리나 험한 길을 운전할 때면 아예 제게 운전대를 맡기셨을 정도예요. 덕분에 어머니와 많이 싸우셨죠.”

그가 웃더니 자신의 운전 스승은 “버스기사님들”이라며 말을 이었다.

“어릴 때 버스를 타면 내릴 때까지 기사님 운전석 옆 평상처럼 볼록 나온 엔진 위가 제 자리였어요. 거기서 버스기사님한테 핸들 조작이며, 기어 변속, 브레이크 밟는 것까지 꼬치꼬치 물어가며 눈과 귀로 운전을 익혔죠.”


고등학교 중퇴하고 선적 드라이버로 일했죠

2009 슈퍼레이스 슈퍼 6000 2차 시리즈 우승 후.
그렇게 자동차를 좋아하던 김의수의 어릴 적 꿈은 ‘레이서’가 아닌 ‘돈 많이 버는 것’이었단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 같은 걸 쓸 때면 막연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적어 냈어요. 집이 울산에서 포목점을 꽤 크게 해서 부족함 없이 자랐는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고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그런 생각이 더 강했다. 고등학생 김의수에게 학교에 있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국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자퇴했다.

“후회하지 않아요.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때 제 인생을 두고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겠죠. 학교를 그만두고 현대자동차의 수출용 차를 육지에서 배로 옮겨 싣는 선적 드라이버 일을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차를 하루 종일 탈 수 있어 신나게 일했어요. 최소 15년에서 20년 이상 자동차 선적을 한 아저씨들의 운전 솜씨가 정말 놀라웠어요. 회전이며 드리프트, 급가속과 코너링까지 눈 감고도 하시는 거예요. 그분들한테 귀동냥, 눈동냥으로 배운 기술을 지금껏 쓰고 있는 겁니다.”

1991년 김의수는 그의 인생을 바꾼 한 장의 포스터를 보게 된다.

“‘용마컵 레이스’이라는 경기를 집 근처에서 한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친구들과 구경을 갔지요. 메캐한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수십 대의 자동차가 동시에 ‘웅웅웅’ 하는 엔진 음을 내며 흙먼지를 날리는데…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직감적으로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어요. 엔진 울림하고 제 심장이 같이 뛰는 거 있죠.”

1992년 ‘울산용마’라는 작은 레이싱 팀에 들어갔지만 레이서로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모두가 반대했어요. 고등학교를 중퇴할 때도 제 생각을 이해해주셨던 부모님과 친구들이 모두 미쳤다며, 마치 정신 나간 양아치 폭주족 취급했어요. 아버지는 당신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됐다며 ‘다시는 차를 못타게 하겠다’고 집에 있던 모든 차의 키박스를 부수셨죠.”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임을 자처하는 김의수의 고집을 누구도 꺾지 못했다. 1993년 6월, ‘화랑레이싱’이란 팀으로 옮기며 드디어 데뷔한다.

“‘청포대 레이스’라는 작은 지방 대회였어요. 대우 르망을 타고 데뷔했는데, 예선과 결선에서 각각 6등을 했죠. 차를 출발선에 세우면서부터 멀쩡하던 다리가 떨려오더니 클러치를 어떻게 밟았는지 모르겠어요. 출발 깃발이 올라간 후부터는 아무 생각이 없었죠. 사실 그런 긴장감은 첫 레이스를 할 때나 18년이 흐른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두려움이 컸고, 지금은 설렘 같은 느낌이랄까요.”

2009 슈퍼레이스 슈퍼 6000 2차레이스. 제일 앞 검은색 레이싱카가 김의수가 운전하는 차.
1994년, 메이저 대회였던 MBC 그랑프리를 통해 데뷔 1년 만에 첫 우승을 거머쥔다. 이후 그는 대회 이름과 숫자를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만큼 우승 레이스를 펼친다. 특히 2002년부터 2004년, 당시 자동차 레이싱 최고 클래스였던 ‘GT1(출력 500~600마력, 2000cc 이상 무제한 개조 자동차)’ 부분 세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카레이스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그런 그가 아쉬움을 말한다.

“요즘은 우승할 때마다 기쁨보다 허탈감이 먼저 찾아와요. 예전에는 누군가의 꽁무니를 쫓아 결승선을 통과하면 그렇게 분했는데, 이제는 ‘누군가 내 앞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아요.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 제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걸 보면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죠. 라이벌들이 엎치락뒤치락 드라마 같은 레이스를 벌여야 자동차 레이싱이 발전할 수 있고, 선수들 역시 더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데 저라는 존재가 그런 재미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고민스럽고, 미안할 때가 많아요.”

그가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우리나라 차를 가지고, 우리 선수들과 함께, 우리 유니폼을 입고, 외국에 나가 한국인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그런 환상적인 레이스를 펼쳐보는 것이 마지막 목표입니다.”

그의 꿈속에 우리 자동차 레이스는 물론 자동차 산업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진 : 진구
사진제공 : KGTCR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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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 2020-10-24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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