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국가대표 윤경신

세계 핸드볼계의 巨星, 한국 핸드볼 살리기에 나서다

203cm, 108kg의 거구, 한국 스포츠계가 탄생시킨 세계 스포츠계의 큰 별 중 한 사람. 하지만 배드민턴 선수 박주봉이 그랬듯 그도 한국보다는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나라 스포츠팬들에게 더 큰 사랑을 받아왔다.

세계 최고의 핸드볼 프로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진출 첫 시즌이던 1996~1997 시즌부터 2001~2002 시즌까지 여섯 시즌 연속 득점왕, 다시 2003~2004 시즌과 2006~2007 시즌 득점왕에 오르며 통산 2751골로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골 기록. 2001~2002시즌 324골로 분데스리가 최초의 단일 시즌 300골 이상 기록한다. 1995년과 1997년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네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득점왕, 2002년 국제핸드볼연맹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득점왕까지…. 그가 그동안 이뤄온 기록들은 한국 핸드볼은 물론, 세계 핸드볼 역사에서도 당분간 깨지기 힘든 전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윤경신(37)의 이야기다.

‘한데볼’이란 별칭만큼 철저히 비인기 스포츠로 통하는 한국 핸드볼.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한국 핸드볼이 배출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바로 윤경신이다.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비던 그가 ‘한데’인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핸드볼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대표 팀에 합류한 그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아시아 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 우승의 견인차가 됐다.

그는 숭인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특별활동으로 핸드볼 반을 선택하며 핸드볼과 첫 인연을 맺었다. “특기적성 교육으로 핸드볼을 시작했는데, 키때문이었는지 인근의 숭덕초등학교 핸드볼 팀에서 ‘선수로 뛸 생각 없느냐’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핸드볼 하고 싶다’는 제 말을 아버지가 받아주시면서 6학년 때 숭덕초등학교로 전학해 핸드볼 선수가 됐어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어린 윤경신이 핸드볼 선수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3 때까지 반대하셨어요. 88올림픽 때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남자팀이 은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핸드볼에서 가능성을 보셨나 봐요.”

203cm의 거구, 그에게 키 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때는 고민거리였는데, 고등학교에 간 후에는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다르다는게 정말 스트레스였어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꽂히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런데 핸드볼에 눈을 뜨면서 큰 키가 오히려 축복이란 생각을 했지요. 2m 넘는 왼손잡이 핸드볼 선수가 상대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그제야 알았거든요.”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열여섯 살에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1년 후 국가대표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의 플로어를 누볐다.

“열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나이 차이가 나는 형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최고 무대를 누빈다는 게 고등학생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체력도 기술도 백전노장 형들이나 상대 선수들보다 처졌던 게 사실이에요.”

- 하지만 국가대표로 첫 출전한 북경 아시안게임은 물론, 이후 내리 세 번의 아시안게임까지 모두 득점왕을 차지하며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지 않았나요?

“운이 좋았죠. 신체적으로 유리한 조건도 한몫했고요. 또래보다 먼저 국가대표가 되면서 좀 더 일찍, 더 나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었고, 형들이나 외국 선수들과 몸을 부딪혀가며 다른 친구들이 경험하지 못한 핸드볼을 접할 수 있었던 게 큰 자산이 되었죠. 이런 경험이 기술적인 부분, 팀플레이 적응력 모두 발전시켜주었어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이룬 ‘깨지지 않는 기록’

2008년 북경올림픽. 예선 3차전 아이슬란드전.
1996년,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1 때, 독일에서 생애 첫 해외 경기를 했습니다. 한국의 플로어와는 너무 달랐어요. 주니어 대회임에도 경기마다 1만~1만50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어요. 이때부터 단 하루도 빼지 않고 독일에서 뛰는 제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는 쾰른에서 40km쯤 떨어진 작은 도시 굼머스바흐에 둥지를 틀었다.

“첫 훈련을 하던 날, 체육관에 1500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왔어요. 무슨 행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도시 사람들이 저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더군요. 핸드볼을 하면서 처음 느낀 감동이었어요.”

그는 자신을 응원해준 굼머스바흐의 팬들을 위해 뛰었다. 만년 하위 팀을 우승 후보로 변모시켰고, 팀 재정을 위해 스스로 후원기업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제 인생의 3분의 1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핸드볼을 같이 한 친구들을 빼면 그곳에 친구가 더 많습니다. 제 인생에 많은 것을 선물해준 제2의 고향이 굼머스바흐예요.”

2009년 핸드볼 슈퍼리그 코리아 챔피언 1차전. 두산 vs 인천도시개발공사.
독일에 진출한 첫 시즌이던 1996~1997 시즌부터 득점왕에 오르더니 이후 여섯 시즌 연속 득점왕을 거머쥐며 분데스리가 공격 부분의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 득점왕은 동료들의 힘이 컸어요. 핸드볼 못지않게 장벽이 높았던 게 언어장벽이었어요.”

“별명이 닉(Nick)”이라며 그가 입을 연다.

“독일말로 ‘고개를 끄덕이다’라는 뜻의 ‘니켄(Nicken)’에서 따온 말이에요. 감독님이 지어줬죠. 자기가 뭐라고 지시하면 제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항상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대요. 그래서 감독님이 저를 이름 대신 ‘닉’이라고 불렀어요. 감독의 지시를 못 알아들을 만큼 언어의 벽이 높았죠. 2~3년이 지나자 언어가 조금씩 자유스러워지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때부터 유럽의 거인 같은 선수들과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6년 그는 굼머스바흐를 떠나 함부르크로 향했다. 팀 재정이 좋지 않아 마지막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자신의 이적료로 굼머스바흐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함부르크로 옮기자마자 그는 첫 시즌을 득점왕으로 시작해, 앞으로 깨지기 힘들다는 분데스리가 최다인 2751골을 넣는 대기록을 남겼다. 그런 그가 2008년 시즌을 마치자 돌연 한국행을 선언했다. 독일 언론과 함부르크 팀에서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 아쉽지 않았나요?

“독일 기자들이 지금도 물어요. ‘한 시즌만 더 뛰어도 3000골이란 기록을 만들 텐데, 왜 한국으로 갔느냐’고. 제가 답하죠. ‘선수로 얼마를 더 뛸지 모르지만 관중에게 부끄럽지 않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때 한국 팬과 한국 핸드볼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고.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는 올 첫 대회인 2010 핸드볼 큰잔치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MVP와 득점왕에 올라 여전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우생순〉 이후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곤 하지만 여자 핸드볼 얘기죠. 남자 핸드볼은 오히려 상대적인 소외감이 커졌다고들 얘기합니다. 남자 핸드볼, 정말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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