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앞의 세상을 연주하라》 펴낸 유튜브 스타 임정현

누구에게나 청춘은 불확실한 때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2005년 12월, 동영상전문 사이트 유튜브에 오른 무명의 기타리스트 연주에 세계인이 열광했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제리 창이 편곡한 ‘캐논 변주곡’을 신들린 듯 연주하는, 국적도 나이도 알수 없는 ‘펀투’(funtwo, 인터넷 아이디)라는 연주자에게 쏟아진 관심은 대단했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조회 수는 유튜브 사상 톱5를 기록했다. 이 얼굴 없는 연주자가 6개월 후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임정현. 그는 2007~2008년에 300일간 세계를 돌며 거리연주를 했고, 자신의 세계 도전기를 최근 《네 앞의 세상을 연주하라》라는 책으로 펴냈다. 뉴질랜드 학교로 돌아가는 그를 출국 하루 전날 만났다.

‘자고 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그는 어느 일요일 오후, 몇 달간 연습해온 연주곡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한국의 음악 포털사이트 뮬(www.mule.co.kr)에 올렸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연주한 이 동영상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누군가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빠르고 정확한 연주로 보는 이를 홀리게 만드는 ‘펀투’의 정체는 내내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러다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엉뚱한 사람을 이 동영상의 주인공으로 소개한 글을 보고, ‘펀투’는 그 기자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었다.

〈뉴욕타임스〉, CNN, ABC 방송 등 미국의 유력 신문과 방송은 물론,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각종 공연에서 출연 요청이 빗발쳤다. 작곡가 양방언, 바리톤 김동규, 뮤지컬 배우 박해미와 넷이서 무대에 섰는가 하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튜브 스타 공연’에서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와 나란히 협주를 했다. 그의 연주 동영상 조회 수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2010년 3월 초 현재, 7000만 건을 넘어섰다.

《네 앞의 세상을 연주하라》는 방황하는 20대 청춘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진로의 갈림길에 선 그 스스로를 위한 성찰의 기록이다. 평범한 대학생이 얼떨결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 이후의 행보, 사회라는 무대에 나가기 직전 고뇌와 방황 등이 담겨 있다. 특히 그는 좋아하는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지난 1년간 틈나는 대로 썼다”며 “글을 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는 기타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바이올린・플루트・하모니카 등 여러 악기를 섭렵했던 그는 일찍부터 음악에 애정과 열정이 있었다. 그 시절 그의 우상은 가수 너바나와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기타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막연히 ‘나도 저들처럼 기타를 잘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달 동안 교습을 받은 후 5년간 독학으로 기타 연주를 익혔다. 그는 하나에 빠지면 무섭게 몰입했다. 대만의 기타리스트 제리 창이 자신이 편곡한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는 동영상을 본 그는 하루 4~5시간씩 그 곡을 연습했다. 그 결과 ‘신들린 듯한 연주’가 탄생한 것.

“인터넷을 통해 스타가 됐지만, 많이 괴로웠어요. ‘너는 캐논 작곡자도, 편곡자도 아니면서 왜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들의 영광을 갉아먹느냐?’는 식이었어요. 한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죠.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간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어요. 스타가 되고 싶어서 연주 동영상을 올린 것은 아닌데, 막상 유명해지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은 후 ‘내가 작곡하고 편곡하고, 나 자신의 음악을 해보자’ 결심했지요.”


300일간 4 2개국 다니며 거리연주

세계를 일주하며 거리 공연을 한 임정현.
그 후 대안학교 ‘무한상상’이 기획한 ‘무한상상 대장정’에 선발된 그는 2007년 3월부터 2008년 초까지 300일간 42개국을 누비며 기타를 연주했다. 무인도에서 4박5일간 생활하기도 하고, 터키・두바이・네덜란드・프랑스 등지에서 거리 연주를 하면서 그는 새롭게 태어났다.

“이전 제 성격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탄자니아의 한 유치원에서 일일 교사가 되어 노래를 가르쳤고, 파리에서 거리연주를 할 때는 한 노파가 저를 알아보고 ‘Are you funtwo?’ 하며 신기해하던 기억도 남네요. 세계 여행 후 성격도 바뀌었어요. 의욕적이고 활발해졌죠. 기회를 잡으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에잇, 못할 거야’ 하던 것들이 ‘왜 안돼? 하면 되지’로 바뀌었어요.”

그는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아이였다. 모험이나 신나는 일을 찾아 다니기 보다 눈앞에 주어진 일에 성실한 타입. 공부도 잘했다. 이대부중을 다닐 때는 전교 2등까지 했다. 그러다 이대부고 1학년 재학 중 뉴질랜드 유학을 결심한다. “느긋하게 공부해야 결과가 잘 나오는데, 한국의 수업 방식은 너무 치열했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광활한 대지와 여유로운 교육 방식은 그에게 잘 맞았다. 하지만 이후 끊임없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에 입학,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1년을 마치고 휴학, 한국으로 와서 ‘롤리타’라는 밴드를 결성해 홍대 근처 클럽에서 활동했다. 다시 1년 후인 2005년, 뉴질랜드로 돌아가 복학했지만 공부보다 음악에 빠져 지냈다. 유튜브 동영상도 이때 올린 것. 2006년 다시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세계여행을 떠난다. 잠시 복학했다 다시 휴학하고 책을 쓴 그는 2010년 봄에 다시 복학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온 그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1년 후 졸업이잖아요.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이 토익 점수에 사활을 걸면서 구직전선에 나서는 것을 보면 착잡해요. 음악을 좋아하지만, 음악만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뚜렷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음악도 하면서 전공도 살리고 싶어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일, 예를 들어 유튜브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는 지금 앨범을 준비 중이다. 틈나는 대로 작곡・편곡해 놓은 곡을 연습 중이다. 빠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발매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공대생으로서 ‘테크니컬한 연주’에 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기타리스트로서 ‘혼을 담은 연주’를 위해 노력한다는 임정현. 그는 지금 청춘의 끝자락에 서 있다.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자유와 열정’으로 보이는 행동도 대학 졸업 후에는 ‘방종과 무모함’으로 비칠 수 있다. 1년 후 그는 어디에 서 있을까. 그는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달리기보다 물 흐르듯 살면서 우연히 새로운 기회를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왔다. 그가 잊지 않는 건 단 하나,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사진 : 이창주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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