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조절 베개로 30개국에서 특허 받은 학생발명가 강태구

사업 실패한 아버지 재기시킨 아들의 발명 아이디어

세계 30개국에서 특허를 받은 베개가 있다.
목디스크·요통·두통 등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 지난해에는 10억 원어치가 팔렸다. 베개를 발명한 사람은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강태구 군. 그가 초등학교 때 낸 아이디어를 아버지 강익 씨가 제품화한 것으로 강군은 올초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수여하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전남 광주에 있는 강태구 군의 집을 찾은 날, 그는 운전면허학원 일정을 취소하고 기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대학(조선대 식품영양학과) 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는 2월을 보낼 법도 한데 운전면허에 한식조리사 자격증 시험까지 준비하느라 그는 고3 때와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발명가와 조리사, 쉽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자 강군은 이렇게 말했다.

“베개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강한 삶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잘 자고, 잘 먹는 게 건강의 기본이잖아요. 잘 자는 일은 베개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이제는 잘 먹는 일을 연구하기 위해 식품영양학과를 선택했어요. 발명은 창의적인 발상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제품화로 이어지려면 전문적이고 폭 넓은 공부가 필수죠. 식품은 ‘발명거리’들이 무궁무진해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 강익 씨는 “태구는 어릴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며, “김대중 정부가 발명과 과학에 재능이 있는 초·중등학생을 선발해 창의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발명꿈나무 제도가 지금의 태구를 만든 것”이라고 거들었다. 강군 역시 “일상의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메모해두었다가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은 그때 훈련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 블록 조립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분해하기를 즐겼던 강군은 과학과 수학에서 특히 재능을 보였다. 발명꿈나무가 된 뒤로는 발명에 빠져 독특한 아이디어를 많이 제출해 지도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컴퓨터 자판연습을 할 수 있도록 키보드의 글자와 숫자를 완전히 가려주는 덮개,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면 라디오 소리도 함께 커지는 가변 스피커 등이 강군의 기억에 남는 작품. 그동안 발명하며 받은 상장과 메달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발명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베개를 발명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랑 여행갔다가 하룻밤을 자게 됐어요. 그런데 숙소 베개가 전부 어른용인 거예요. 높은 베개를 그냥 베고 잤더니 다음 날 목이 뻐근하고, 여기저기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발명 노트에 적었죠. 어른, 아이 모두 편안하게 쓸 수 있도록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베개가 있으면 좋겠다고요.”

평소 아들의 발명 노트를 틈틈이 들여다보던 강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산업용 로봇을 생산하다 실패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에게 아들의 메모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는 “이런 아이템이라면 세계 1등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과학 영재이자 역시 발명 꿈나무였던 큰아들 선구 씨도 베개 사업에 동참했다. 곧 16㎡(5평) 남짓한 허름한 창고에 재봉틀 한 대를 들여놓고 실험실이자 공장(?)을 차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학교 공부에 바쁜 두 아들은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제품화는 아버지와 어머니 조미자 씨가 맡았다. 여러 모양과 방법을 시도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마침내 2.8mm의 얇은 패드 10장을 이용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베개를 만들었다. 나자리(주)라는 회사를 만들고, ‘국민표준베개’라는 이름도 붙였다.


제품이 완성된 후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많아야 하루 5~6개에 불과한 물량이었지만 사용한 고객들로부터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 통증이 크게 줄었다” “수술을 앞두고 있었는데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평이 쏟아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베개의 효과를 거꾸로 고객들이 알려준 것. 주문량이 점점 늘기 시작하면서 번듯한 공장도 마련했다. 아버지 강씨는 “단순히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숙면과 건강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더 나아가 베개가 국민건강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건강식품 개발 위해 식품영양학과 진학

목 부분을 받치는 부분은 조금 높게, 머리 부분은 그보다 낮게 완만한 곡선 형태로 설계된 국민표준베개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목 부분과 머리 부분 양쪽에 얇은 패드를 넣어 자신의 체형에 맞게 높이를 조절하는 것.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어 국내외 특허 등록도 무사히 마쳤다.

키와 몸무게만으로도 ‘몇 장의 패드를 사용하면 적당하다’는, 어느 정도 표준화된 수치가 있지만 목디스크, 만성두통 등 증세에 따라 조절 정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베개를 구입하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4명의 전·현직 의사를 비롯해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10여 명이 현재 국민표준베개의 상담역을 맡고 있다.

강씨는 “고객 대부분이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려온 척추 관련 질환자들”이라며, “몸에 잘 맞는 베개가 척추를 바르게 펴줌으로써 치료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든 베개가 앞으로 건강산업의 하나로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희 베개 덕분에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뿌듯합니다. 무엇보다 아들 덕분에 이렇게 재기에 성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돼 더없이 행복하지요.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좌절을 겪고 있던 저와 우리 가정을 태구가 살렸어요.”

베개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두 아들의 삶도 바꾸었다. 베개를 통해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한 강군은 건강식품 관련 발명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과학자·공학도를 꿈꾸던 큰아들 선구 씨는 대학에서 운동처방을 전공하며 몸의 바른 자세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베개의 효과를 더욱 높여주는 적절한 두께의 매트도 발명해 선구 씨 역시 이와 관련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강군은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생의 생각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제품을 만들어내신 아버지가 우리 형제보다 더 창의적”이라며 웃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그것을 제품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 현실에서 국민표준베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공(功)이라는 것. 발명가 아들과 제조업에서 잔뼈가 굵어 시장을 읽는 눈이 탁월한 아버지, 사업 파트너로 이보다 더 환상적인 조합이 있을까. 식품 분야에서 탄생할 이들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이유다.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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