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명인(名人)으로 선정된 배 농사꾼 이윤현

배나무와 대화 나눌 때 제일 행복합니다

중국 최고의 지혜 대사전이라 불리는 《지전(智典)》을 쓴 저자 렁청진이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의 지혜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음미하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정감과 생명으로 대할 때만이 비로소 중국 지혜의 영혼을 알 수 있으며, 그제야 비로소 그것을 활용해 자신의 인격을 높이면서 훌륭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1921년부터 3대째 배 농사를 지어온 현명농장의 대표 이윤현(63·국립 한국농수산대학 현장교수) 씨는 삶을 통해 터득해온 지혜로 농사를 지어온 진정한 농군이라 할 만하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위치한 그의 농장은 무려 9만2000㎡의 큰 규모로, 명품 배를 생산해 연매출 8억 원을 올린다. 그의 배는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이마트 등 우리나라의 유명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팔릴 뿐 아니라 일본을 비롯해 대만・인도네시아・하와이 등지로도 수출되고 있다. 그는 배 농사를 지으며 개발한 기술로 국내외 특허와 실용신안만 41개를 획득한 벤처 농업인이기도 하다.

“흙은 거짓말을 안 해요. 사랑한 만큼, 베푼 만큼 되돌려줍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단순한 철학이 그를 진정한 농사꾼으로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땅은 술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긍하게 된다.

‘현명농장’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것. 아내 이명자(현명배문화연구소장) 씨는 그와 평생 배 연구를 함께해온 동반자다. 그녀 역시 남편과 함께 한국식품연구원 경영관리사과정, 한농대, 농촌관광대, 벤처농업대학, 한국농촌과학대학 등 10여 군데를 다니며 공부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 “농사짓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배즙, 배고추장, 배조청, 배막걸리 등 배를 이용한 제품을 계속 개발해왔다.
이윤현 씨는 2009년 말,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2009년 대한민국 최고 농업기술 명인(名人)’으로 선정됐다. 이미 농림부 선정 제154호 신지식농업인으로 활동해왔고, 국무총리상을 비롯하여 평생 받은 상만 80건에 이른다. ‘농진청 녹색명예의 전당’에는 그의 손도장이 찍히고, 그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전시된다.

그의 조상이 처음 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1년, 할아버지가 지금의 압구정동에서 배 과수원을 시작하면서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가 대를 이어 그곳에서 1만6000㎡ 규모의 과수원을 운영하다가 화성으로 내려온 것이 1972년이다. 강남이 개발돼 더 이상 배를 키울 수 없게 되면서였다.

“현대아파트 78동이 우리 집과 과수원이 있던 자리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우리 집 논이 있던 자리였어요. 그 땅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수천 억 원이 되었을 거라 하더라고요.”

땅값이 얼마나 오를지 몰라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는 화성으로 옮겨 계속 배 농사를 지은 그때 그 결정에 후회가 없다.

“압구정동에 개발 붐이 불기 시작할 때 떠났으니 땅값이 오를 것이란 사실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어요. 제가 정말 기억하고 싶은 그 땅에 대한 기억은 그게 아니라 어릴 적 풍경입니다. 네 살 때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를 잠시 이웃집에 맡겼다 찾으러 오시면서 참외를 이고 걸어오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강남 개발 붐이 불기 시작하자 한학에 조예가 깊던 동네 할아버지가 그에게 “너는 빠른 시일 내에 압구정동을 떠나라. 떠난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살아라”고 조언했다 한다. 평소 존경하던 어른의 말을 그는 그대로 따랐다. 배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화성에 처음 땅을 마련할 때는 9만2600㎡(약 2만8000평)였는데, 그중 2만6450㎡(약 8000평)가 도로에 편입되면서 규모가 줄었다.

현명농장의 배는 세계 각 곳으로 수출된다.
“이곳 땅을 처음 보러 왔을 때 절반이 배 밭이었어요. 마치 오랫동안 살다 잠시 비워둔 땅처럼 낯이 익었습니다.”

아내가 “우리도 강남에 건물 하나 마련하자”고 말하면 그는 “그렇게 버는 돈은 사회의 좀”이라고 대답했다.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땀 흘려 일하겠다”는 그의 고집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남들은 “압구정동 땅을 조금만 더 가지고 있었어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 텐데”라고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미련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압구정동 배밭을 팔고 화성으로 옮겨 계속 농사지어

그는 1972년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농사관련 기록을 담은 일기를 써왔다.
그가 정성과 애정을 쏟은 대상은 돈이 아니라 땅이요, 그 땅에서 나오는 과실이었다. 현명농장의 배가 ‘명품 배’로 이름을 날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집 배나무는 나와 똑같이 먹어요. 쌀겨・깻묵・콩을 먹이고, 바닷물도 5번 이상 주죠. 바닷물에는 360가지 미네랄이 있는데 작물은 16가지를 흡수한다고 해요. 한 나무에 10ℓ 이상 막걸리도 줘요. 현명농장 배에 대해 ‘뒤돌아보게 하는 맛’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마 막걸리의 뒷맛이 아닐까 싶어요.”

배즙으로 발효한 퇴비도 그가 직접 만든다. 신고 배는 향이 나지 않는데, 현명농장의 배에서는 향기가 난다.

“아카시아 꽃을 따서 추출해 뿌려주고 쑥・미나리・풀 등을 추출해서 뿌려주기도 해요.”

그는 농사 비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배나무와 말을 하세요”라고.

“배나무와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며 과수원 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참 편안해져요.”

그는 새로운 농사법을 끊임없이 실험했다. 재배 시 과일을 각종 농약이나 공해로부터 보호하는 과일 보호용 용지는 2001년에 실용신안과 발명특허, 국제특허를 받았다. 지금은 보편화된 짚 대신 ‘난좌(卵座)’를 응용한 배 포장법도 1980년대 그가 정착시킨 것이다. 배즙뿐 아니라 배고추장, 배조청, 건배, 배막걸리 등 배를 이용한 제품 개발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금은 배와 쌀을 결합시킨 배과자를 개발 중이다.

“과수농업이 위기라고 하지만 전 기회라고 생각해요. 생과 출하만으로는 한계점에 도달했지만, 가공품을 계속 개발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2002년부터 그는 매년 봄에는 배꽃축제, 가을에 배따기축제를 열어 도시인들을 배밭으로 초청한다. 그의 아내는 “우리 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배꽃도 즐기고, 농사짓는 것도 볼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배 밭 음악회도 열린다. 이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농사를 알리고 싶은 바람도 크다. 그는 12년째 국립 한국농수산대학 현장교수로 있다. 농장에는 한농대 실습생들이 일을 배우고 있었다.

“한국 농업의 미래는 2030년까지라고들 해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도는 이미 28%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먹고 살 양식을 외국에 의존하는 형국이지요. 배 농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한국 교민이 중국 산둥성에서 배 농사를 지어 12억 원의 매출을 올려 화제가 됐다. 천혜의 기후 조건에 한국의 선진 배 농사 기술이 접목돼 중국이 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가장 타격을 입을 곳은 바로 한국이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배의 품질을 높이는 ‘명품 배’ 전략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는 중국뿐 아니라 농업 강국인 칠레도 찾아 견학하고 왔다.

안데스 산맥 빙하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물과 자원, 그리고 농부들의 부지런함, 가족적인 분위기 등 배울 것이 많았다고 말한다. 1972년부터 단 하루도 거른 적 없이 농사 일기를 써온 그는 기상청에서 발표한 온도, 습도 등 날씨에 대한 정보부터 농사의 모든 것을 꼼꼼히 적는데, 그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여 농사 계획을 세우는 바탕이 된다. 그가 농사의 ‘명인’이 된 비결은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이 ‘농사 일기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땅과 이야기하는 것, 그 안에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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