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세코중공업 대표

오토바이로 남미 횡단한 낭만 라이더, 조선소 살리기에 나서다

충청남도 장항 바다 앞에 ‘돈키호테’가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서야 오토바이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의 맛을 알았다
.
1200㏄ 우람한 근육질에 생명을 불어넣는 오토바이 엔진의 떨림은 ‘돈키호테’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정장과 넥타이를 벗어 던진 그는 두툼한 바이크 재킷에 커다란 헬멧을 쓰고 라이더가 되어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넘어 2만km를 종주했고, 일본 열도를 종단했다. 그는 지금, 생존의 기로에 선 조선소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세코중공업 허민(47) 대표의 얘기다.

‘유목민’이라고 칭하는 허민 대표. 어린 시절 그는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만 여덟 곳을 옮겨 다닐 정도로 전국을 돌았고, 20대엔 마도로스가 되어 거친 오대양과 싸웠다. 30대엔 드넓은 바다를 잇는 상선(商船)을 팔았다. 40대에 들어섰을 때 그는 오토바이 세계 일주를 꿈꿨다.

“한곳에 머물지를 못해요. 피가 그런가봐요. 뭔가 펄쩍펄쩍 뛰어야 ‘살아 있구나’ 느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호주로 건너가 외항선을 타며 전 세계 40여 개국을 돌았다. 4년 후 뭍으로 올라온 그는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선박 거래하는 일을 배웠다. 1991년에는 노르웨이의 선박 딜러 회사에 취직해 프로 딜러로 변신했다.

“제게 노르웨이는 특별한 곳입니다. 해운업에서 노르웨이는 최강국 중 하나예요. 나라 전체 인구가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460만 명인 나라가 세계 선박의 10%를 소유하고 있으니까요.”

미친 듯이 일했고, 잘나가는 딜러로 승승장구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00년, 이제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K1마린과 K1해운을 세워 선박 중개와 발주, 매매까지 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KSF선박펀드운용회사 설립에도 참여하며 해운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6년 12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실었다.

“오토바이는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어요. 맨 몸뚱이를 대기에 그대로 노출한 채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앞으로 나가죠. 자연에 몸을 맡기는 게 거친 바다와 싸우며 항해하는 느낌이랄까요.”

왼쪽에서부터 |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세워둔 오토바이. 볼리비아의 라페즈(Lapaz)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페루의 푸노를 지나며 쉬고 있는 허민.
그가 오토바이를 처음 탄 것은 마흔 셋이던 2006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마흔 둘에 20년간 피우던 담배를 딱 끊었어요. 저 스스로도 참 기특하더라고요. 그래서 저 자신한테 무엇을 선물할까 생각하다 ‘오토바이’가 떠올랐어요.”

그날 바로 서울 퇴계로 오토바이 골목을 찾아 배기량 50㏄의 작은 스쿠터를 장만했다.

“50㏄ 이하는 면허증 없이 당장 탈 수 있어 그걸 산 거예요. 그때 신촌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이놈이 참 유용했어요. 길도 안 막히고, 바람 맞으면서 달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렇게 몇 개월을 타자 좀 더 큰 오토바이로 바꾸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도로에도 질서가 있어요. 50㏄ 스쿠터가 ‘건방지게’ 1차선으로 달리면 모두 째려보죠. 도로 가장자리로 다닐 수밖에 없어요. 신호가 바뀌면 먼저 배기량 높은 놈이 튀어나가고, 차례로 중국집, 피자집 배달들이 튀어나가죠. 그 후에야 50㏄들이 나가요. 달릴 때도 우리는 ‘달달달~’ 달리는데 다른 친구들은 ‘슝~’ 하고 날아가더라고요. ‘에잇, 나도 큰 놈 타고, 신나게 달려보련다’ 해서 정식으로 오토바이 면허를 땄고, 50㏄ 스쿠터에서 1200㏄짜리를 타는 라이더로 변신한 거죠.”


워크아웃 진단받은 세코중공업의 구조 요청에 조선소 CEO로 변신

1200㏄의 육중한 오토바이는 잠자던 그의 방랑벽을 깨웠다.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를 구입한 지 한 달 만에 남미 안데스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젊은 시절 외항선을 타면서 아시아・북미・아프리카・유럽까지 다 가봤는데 남미만 못 가봤어요.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바람을 맞고 싶기도 했고요.”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 묻자, 그는 크게 웃었다.

“아니 회사도 있고, 가족도 있는 놈이 진짜 갈 줄 몰랐겠죠. ‘또라이’란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뻥치지 마’란 소리도 들었고요. 장비를 사고, 비행기표까지 끊었는데, 모두들 믿지 않았어요. 아버지 한 분만 ‘거 가믄 달린다 아이가. 그릉게 달림시로 느낀다 아이가. 싸나가 되믄 그런 꿈도 있어야제’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2006년 12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고물 오토바이를 끌고 길을 떠나는 체 게바라처럼 그도 1200㏄ ‘클라우드9’에 태극기를 달고 남미 대륙을 달리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보코타에서 시작해 남미의 끝 우슈아이아까지 달린 후 다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거쳐 돌아오는 2만km가 넘는 거리를 매일 400~700km씩 달렸다. 해발고도 3000~5000m가 넘는 안데스의 비포장도로와 볼리비아의 황무지, 파타고니아의 거친 길은 세계의 거친 바다를 가르던 젊은 시절의 야성을 살려주었다. 하지만 산적과 반정부 게릴라, 마약 갱까지 그를 괴롭히는 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몸이 붕 떠서 날아간 적도 있지만, 그런 건 참을 만하죠. 넘어지고 깨지는 것은 괜찮은데 문득문득 사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어요. 볼리비아에는 우리나라 경상도 크기만 한 ‘우유니’라는 소금사막이 있어요. 가로등도, 지나는 차도 없어 캄캄한 어둠 속을 라이트 하나에 의지해 몇 시간씩 달렸어요. ‘야 이런 데서 산적이나 게릴라를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토바이에 매달고 다니던 칼을 허리춤에 찼습니다.”

100일간의 남미 모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는 “참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며 그곳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제가 찾은 콜롬비아・볼리비아・에콰도르・페루 등지는 빈곤 국가인데,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저까지 행복해지더라고요. 고장 난 오토바이를 수리해주곤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를 수리비로 받으면서도 돈 받는 것을 미안해하더라고요. 간단한 수리인데 기술자들이 잔뜩 모여들어 얼마나 정성을 다하던지. 그들의 순박함이 마치 30년 전 우리네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하고, 행복했어요.”


오토바이 여행을 통해 그는 로맨티스트, 철학자가 됐다. 2009년 중순, 이번에는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횡단하려 했다. 장비를 다시 장만했고, 배표와 비행기표까지 끊었다. 그러나 그의 오토바이 여행은 당분간 미뤄졌다. 워크아웃 진단을 받고 회생의 길을 찾고 있는 조선소를 맡게 된 것. 세코중공업은 선박금융을 하던 시절 인연을 맺은 곳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게 조선업이에요. 설립 3년째인 신생 조선사 세코중공업에게는 넘기 힘든 파도가 덮친 거죠. 금융권으로부터 C등급 신용평가를 받아 워크아웃에 돌입한 세코중공업의 주주들과 투자자들이 저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는데, 물리칠 수 없었어요.”

인터뷰 내내 10분이 멀다하고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때마다 인터뷰가 10분씩, 30분씩 중단됐다. 인터뷰 시간을 빼기도 힘들 만큼 그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보였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말하는 허민. 지금이 자신의 여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며 웃었다.

“예전에는 사업한답시고 강남 술집에서 엄청 돈을 쓰고 다녔는데, 이곳에서 저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회사를 살리겠다고 밤새 불꽃과 싸우며 묵묵히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토바이와 경영의 공통점이 있는가?” 물으니 그가 다시 오토바이 이야기를 꺼낸다.

“‘위험관리’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순간순간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오토바이도, 경영도 제게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사진 : 김선아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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