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마라톤 네 차례 완주한 영화 프로듀서 김효정

사막에서 찾은 ‘가슴 뛰는 삶’

사진 장성용
사막. 보통 사람에게 사막이란 어떤 이미지일까? 작열하는 태양에 모든 게 타고 말라 버려 텅 빈 땅. 바람 부는 대로 모래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지형을 바꿔 놓는 형체 없는 땅. 이런 사막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낮이면 섭씨 50도 이상 올라가는 사막을 6박 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사막 마라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과 중국의 고비 사막, 남미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열리는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김효정. 33세 여성. 영화 〈행복한 장의사〉 〈킬리만자로〉 〈무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역도산〉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제작에 참여한 프로듀서. 그가 사막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2003년 모로코에 위치한 사하라 사막, 2005년 고비 사막, 2006년 아타카마 사막, 2007년 이집트에 있는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을 마친 그는 오는 11월 남극 마라톤까지 참여하면 ‘그랜드슬램’을 이룬다. 남극 마라톤은 사하라, 아타카마,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모두 완주한 사람에게만 참가 자격을 주는 대회. 이제까지 이 대회에 참가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여성은 전 세계에 단 한 명으로, 그가 완주하면 두 번째 여성이 된다.

처음 책임 프로듀서가 되어 세상에 내놓는 영화 〈트럭〉의 후반작업으로 바쁜 그를 서울 충무로의 영화제작사 싸이더스 FNH의 앞마당으로 불러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휑하니 부는 변덕스러운 봄 날씨였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고 성큼성큼 걸어와 야외 탁자 앞에 앉은 그는 금세 사막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사막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숨 쉬는 땅이자, 코엘료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처럼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해 왔다. 모래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고 한 어린 왕자처럼.

“사막을 처음 경험한 것은 5개월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무사〉를 촬영할 때였습니다. 사막에서 맞은 밤하늘의 은하수.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을 보며 광대한 우주와 직접 대면한 느낌이랄까? 내 마음속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 다음 이야기는 ‘첫눈에 반한 사랑’과 비슷하다. ‘나는 왜 저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속상했고, ‘저곳에 꼭 갈 거야’라고 결심했다. 꿈으로만 간직하기는 싫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나, 사막에 갈 거야”라고 했을 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변했다. 새벽까지 일하거나 사람을 만나고 느지막이 출근하는 게 영화계의 관행. 그런데 그는 새벽 3~4시까지 일하고도 6시 반이면 일어나 수영장에 갔다. 심폐력 등 사막 마라톤에 참여할 체력을 갖추기 위해서였다. 촬영장에서 일할 때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사막 마라톤에서는 자신이 먹을 일주일 치 식량과 짐을 든 배낭을 지고 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막의 추운 밤에 대비하기 위해 겨울에도 일부러 창문을 열고 자고 스트레칭도 꾸준히 했다.

| 2006년 아타카마 사막에서.(위) 사하라 사막의 숨겨진 샘에서.(아래)
2003년 4월, 그는 꿈에 그리던 사막에 발을 디뎠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돈을 모으면 ’같은 여러 이유로 미뤄 두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현실은 혹독했다. 섭씨 55도, 그늘을 찾을 수 없는 곳. 쏟아지는 태양 속에서 무리해 걷고 뛰다 보니 어지럽고 구토가 일어났다. 훈장처럼 물집이 잡히고, 온몸이 부었다. 휑하니 뚫린 사막에서 용변을 보기도 어려웠다. 다른 주자는 일찌감치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혼자 해 저문 어두운 사막을 터벅터벅 걸어가기도 했다.

이때 그에게 동반자가 되어 준 게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였다. 그가 사막으로 떠난다고 하자 〈무사〉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꼭 읽어 보라”고 권한 책이다. 짐 속에 넣어 온 이 책을 그는 사막 마라톤 틈틈이 읽었다. 책의 여백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적어 넣으면서 ‘사막 일기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이 일기장에 “우주가 내 손을 잡아 줄 것이라는 소망, 우주가 내게 던져 줄 선물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거칠 것 없이 저 지평선을 향해! 오아시스를 만나리라!”라고 적었다.

2년 뒤인 2005년 4월 24일, 고비 사막. “고비사막을 밟는 순간… 그… 순간… 가슴이… 터질 것만…”이라고 적었다. 산악지역을 지나는 등 험한 코스로 유명한 이곳에 다녀온 후 병원에 갔더니 “발바닥에 금이 갔다”고 해 깁스를 했다. 그래도 “그냥 안전지대에서 살다 죽은 사람은 모를 거야. 그 태양과 바람을”이라며 흐뭇해했다. 아타카마는 하얗게 펼쳐진 소금 사막. 지형이나 기후가 달과 비슷해 ‘달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을 지나는 코스였다. 혼자 걸을 때면 완전한 정적 속에서 빠지직빠지직 발밑으로 소금덩어리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다. 2007년 10월 말, 그는 다시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으로 갔다. 스물여덟이던 2003년 처음 사막의 심장으로 들어간 그는 사막과 함께 20대에서 30대로 넘어왔다. 그러면서 확고해진 게 있다. “내 마음을 뒤흔드는 그 무언가를 찾아, 인생은 그렇게 저지르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처음 결심에 더욱 힘이 실린 것이다.


오는 11월 남극 마라톤 완주하면 그랜드슬램

남극은 사막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사막’으로 불리는 곳. 한 영화를 마무리하고 다음 영화를 시작하기 전 공백기와 마라톤 기간이 요행히 맞아 사막 마라톤을 네 차례 다녀올 수 있었다는 그. 이번에도 그런 ‘행운’이 오기를, 그래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를 그는 꿈꾼다. 그의 말을 다 듣고도, ‘사막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무리에 고생을 하며 그곳에 가고 싶을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말로 설명이 안 돼요”라고 한다. 그는 “가슴이 너무 떨려서 가야만 했다”고 이유를 말한다. 지프나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사막 언저리만 도는 것이라 내 발로 밟으며 사막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고, 그래서 사막 마라톤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생 동안 사막을 연구한 프랑스 학자 테오도르 모노의 책 《낙타여행》을 보니 사막의 지평선에 주홍빛과 황금빛 선경이 연출되면서 해가 뜨면 “가슴을 파고드는 즐거움, 미세하면서도 강렬하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도취감, 완전무결한 무감각 상태가 된다”고 한다. 또 잉걸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이 사라지면 사막은 깊은 명상에 잠긴다고. “사막이 너무 아름답다”는 김효정 씨. ‘육체가 극한 상태에 몰리면서 정신은 명료해지고, 그 가운데 바라보는 지극한 아름다움 아닐까’ 짐작할 뿐이었다.

그에게 사막은 ‘사람’을 새로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총 여섯 구간으로 나눈 뒤 시간을 합산해 우승자를 가리는 사막 마라톤. 이틀 동안 80km 이상을 논스톱으로 달리는 코스와 42.195km를 달리는 코스를 꼭 거쳐야 하는 이 대회는 코스마다 시간제한이 있어 초과 시 바로 탈락된다. 1박 2일 코스에서 랜턴도 없이 달빛에 의지해 밤 사막을 걸은 적도 있는데, “우주 속에 동그마니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한다. 꼴찌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게 이 대회의 특징. 어둠을 뚫고 마지막 주자가 들어올 때, 그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 이미 도착한 주자들이 지친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한다.

“내 몸 하나 지탱하기 어려운 상태인데도 뒤에 오는 사람은 괜찮은지 뒤돌아봐지더라고요.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그 사람 컨디션이 느껴지고. 그렇게 서로 걱정해 주지요.”


목적지에 도착하면 서로 지치고 상처 난 몸을 돌봐 주기 위해 각종 비방이 동원된다. 사막에서 만난 현지인은 자신이 먹을 차갑고 시원한 물을 아낌없이 내밀기도 했다. “말은 안 통하지만,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전해지지요.” 50대 프랑스 아저씨 둘도 함께 뛰었는데, “친구의 눈이 점점 멀고 있어 완전히 실명하기 전에 함께 사막을 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주로 40~50대 남성들이 사막 마라톤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는 모두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함께 사막을 다녀온 사람들과는 남녀노소를 넘어 친구가 되었고, 만나면 대화가 끝이 없다. 그들을 보며 꼭 만들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묻어 두었던 꿈을 찾아 열정적으로 사는 아버지들을 그리는 영화다.
“그분들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했죠.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지 않을까?’하고. 아버지가 지난해 3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셨거든요.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사막 마라톤 일정이 나오면 먼저 챙겨 주시며 ‘내가 너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사막 마라톤을 시작한 후 일에서든 삶에서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 그의 싸이월드 미니 홈피에 들어갔더니 간판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다.”
… 열사熱砂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200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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